<경성부사>에 수록된 "명치 43년(즉 1910년) 촬영" 남대문의 모습이다. 1907년 이래 좌우성첩이 헐어진 이후의 일이라서 전차는 더 이상 홍예를 통과하고 있지 않으나, 통로의 지표는 여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을 에워싼 석축은 대부분 지금도 남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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