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이주여성의 절규..."그 결혼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한국어 한마디 모른 채 한국으로 '시집' 보내진 일본인 여성 "남성 사진 한장 달랑 받고 강요 당한 한국행… 지옥 가기 싫어 갔던 한국 시댁이 진짜 지옥이었다"

검토 완료

박광홍(marine7687)등록 2019.12.17 10:27
"한국으로 시집 가지 않는다면 너와 너의 가족은 지옥에 가게 될 것."


고바야시 하나코(小林花子,가명·48)씨는 22년 전 결혼과 한국행을 강요 당하던 상황을 생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어 한마디 할 줄 모르고 남편이 될 사람에 대해서는 사진 한장 받았을 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 조차 없었지만, 그가 출석하던 통일교(現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고바야시 씨에게 한국으로 가서 결혼하고 살 것을 요구했다. 통일교는 문선명(1920. 2. 20.~2012. 9. 3.)을 창시자로 하는 신흥 종교로, 인종 간의 융합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을 교리로 내걸고서 신자들 간의 국제결혼을 추진해왔다.


재한 일본인 고바야시 씨는 통일교에서 추진한 국제결혼 사업에 따라 1997년 일본을 터나 경기도 모 지역에 정착했다. 최근 이혼과 일본 귀국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상처 가득한 과거를 회상했다.


고바야시 씨는 처음 결혼을 강요 당하던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 다짜고짜 결혼해야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에 정착해야만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통일교 측에서는 '한일관계를 위한 신의 뜻'이라며 그에게 한국행을 종용했다. 고바야시 씨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신의 뜻을 거부하면 그와 그의 가족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까지 들어왔다. 결국 그는 가족들의 만류마저 뿌리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통일교 측에서는 그에게 결혼비용으로 1400만원을 요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인 남편 측이 통일교에서 요구받은 돈은 그 1/10인 140만원 정도였다. 고바야시 씨는 신의 뜻에 순명하면 지옥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야 말로 지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 몇년간은 통일교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새벽에 배달하는 일을 했다. 임금은 없었다. 한국어를 할 줄 몰라 남편과 기본적인 의사소통마저 불가했지만 그는 늘 화를 냈다. 최근 몇년전까지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부모 부양과 가사노동은 물론 경제활동까지 외국인인 내가 감내해야 했다." 고바야시 씨는 한국에서 견뎌낸 시간들을 덤덤히 회고했다. 한국에서 살아내기 위해 과로 중에도 힘겹게 한국어를 독학했던 그는 이제 여느 한국인 못지 않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통일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여전히 많은 일본인 여성들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한국어 구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화가 되지 않아 기본적인 인간적 교감마저 불가한 상황에서, 의무적인 '부부관계'가 강요되면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 무거운 소외감 속에서도 가사노동과 경제활동까지 감내해야한다.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저소득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는 일도 다반사다. 실제로 2012년 8월 21일 강원도 춘천에서는, 통일교 국제결혼 후 17년간 무직 상태로 음주와 폭력을 일삼던 한국인 남편 A씨를 일본인 아내 B씨가 살해한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평소 B씨가 식당과 가정부 일로 일하고 받는 임금으로 매월 생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몇번이나 교회에 상담을 하고 어려운 상황에 대해 호소했었지만 교회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바야시 씨 역시 평소 남편으로부터 욕설과 모욕을 감내해야했다. 남편은 고바야시 씨의 부모까지 욕했지만 고바야시 씨는 그에 대해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흥분한 남편으로부터 수차례 폭행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이국의 땅에서 그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고바야시 씨 역시 교회에 호소해보았으나 교회측에서는 남편을 면담하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히려 자신의 폭력을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남편의 박대는 더욱 심해졌다.


"종교가 배우자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라면 결혼이 어려웠을 남성들도 자동적으로 아내를 얻게 된다. 사실상 결혼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남편의 상태가 좋지 않고 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여성으로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신의 뜻에 의한 결혼이기에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었던 고바야시 씨는, 남편이 폭행 끝에 부엌에서 칼까지 뽑아드는 것을 보고 일본으로 도망쳤다.


"남편은 내가 자기 말에 말대꾸를 하면 흥분하기 일쑤였다. 그날은 부엌에서 칼까지 뽑아들기에 정말 죽는구나 싶었다. 남편 역시 자녀들에게 '그날 너희 엄마를 죽일 뻔했다'고 말했다고 하니, 정말 생명이 위험했던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남편이 협의이혼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혼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폭행 당했던 증거들을 모아두지 않은 탓에 관련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길거리에서 통일교의 포교단을 처음 만났던 그때가 원망스럽다. 나는 통일교에 속아 청춘을 잃었다. 나는 한국 남편에게 한사람의 존엄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제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지금도 나와 같은 처지로 한국에서 지내는 일본인 여성이 6000명 정도는 된다." 현재 일본 고향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지금도 길에서 통일교 회관을 마주하면 끔찍했던 과거가 떠올라 몸서리를 친다.


"사랑해서 결혼해도 싸우고 이별하기도 하는데, 사랑없는 결혼은 오죽하겠어요. 게다가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한국에 사는 동안 통일교를 통해 한국에 온 일본인 여성 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지에서 사실상 매매혼으로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국어가 서툴러도 모두 존엄한 인격이 있는 인간인데, 그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힘겹게 사는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일본에서 '통일교 피해자'의 법적구제를 돕고 있는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일본 여성이 통일교에 의해 결혼하였다가 알코올 중독 등 남성의 귀책사유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여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사례는 50여 건에 달한다.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는 "피해자들은 교회에서 지정한 상대자를 거부하면 자기나 조상의 구원의 길이 막히고, 병에 걸리거나 다치고 또는 죽게 된다고 한다든가, 사후에 지옥에 가게 된다는 등의 생각으로 고민하여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이는 일본국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사례"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러한 사례들로 통일교에서 추진된 국제결혼을 일반화하여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일본측가정연합ㆍ가정교육국은 "축복가정(통일교 내 결혼가정)의 이혼율은 1.7%, 특히 한국ㆍ조선인(북한인 및 조선적 재일교포) 배우자를 만났을 때의 이혼율은 1.3%로 이는 일본이나 한국의 일반가정 이혼율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송고합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