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왜 '무지한 스승'이 필요할까?

서평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등록 2018.05.28 11:40수정 2018.05.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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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표지)인공지능 시대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 ⓒ 안준철


"중세의 신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몰락하고 신기술과 자본에 종속되었다면 21세기의 미래는 과연 어떤 기술과 철학이 세상을 지배할까? 그 시대의 교육은 어떤 풍경일까? 2030년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학교가 그 시대에도 존재해야 할까? 아니 존재할 수 있을까?"

<토론의 전사>, <질문이 있는 교실> 등 새로운 교육 담론과 실천 방안으로 민주주의와 소통을 향한, 토론, 질문, 글쓰기 수업을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해온 유동걸 교사가 최근에 펴낸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한결하늘) 서문에서 제기하는 물음이다.

이 진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물론 학교가 그 시대에도 존재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어쩌면 기존의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는 서울대를 다섯 명 보냈네, 열 명 보냈네 하면서.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사교육도 여전히 성행할 것이고, 아마도 지방 학교에서는 형용모순의 강제적 자율학습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때도 우리 어른들은 지금처럼 "교육은 미래다!" 라고 외치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먼 미래로 유예시키는 일을 지속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혼잣말을 하듯 대답을 해놓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평소 우리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비관적이었나? 내 나름대로는 변명을 할 수도 있겠다. 2030년이면 불과 12년 뒤다. 12년 전의 우리나라 교육과 지금의 교육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태 전쯤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사라지고,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도입된 바 있다. 그리고 혁신학교의 현장 실천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정도다. 하지만 이조차 교육계 일각에서는 원상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드세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의 학력을 떨어뜨린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학력의 의미는 12년 전이나 12년 후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각 지방 명문고와 명문고 아님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도 여전히 서울대 합격률이다. 정작 중요한 다른 교육적 가치나 실천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학교 현장에서의 이런 저런 변화와 실천이 있었음에도 우리 교육이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이며, 한국의 학교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OECD 가입국 중 여전히 꼴찌 수준인 이유이기도 하다.

유동걸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은 이런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일종의 돌직구로 읽힌다. 우선, 이 책 제목에 붙어 있는 '무지한 스승'이라는 개념이 문제적이다. "무지한 스승이라니?" 하며 뜨악한 표정을 짓거나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교사라면 당연히 자기가 먼저 배워서 알게 된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이 기본 상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은 자기가 모르는 내용도 가르친다. 그래서 무지한 스승인 것이다. '무지한 스승'이 제기하는 보편적 가르침의 원리는 다음 세 가지이다.

"모든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다. 무지한 스승은 아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고 모르는 것도 가르친다. 모두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다? 유 교사도 "그런 인식을 갖기는 쉽지 않다."고 시인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앞에 분명히 지적으로 차이가 나 보이는 두 사람이 지적으로 평등하다고. 한 학생은 전교 1등이고 다른 학생은 꼴찌인데도?" 하지만 반전의 순간이 온다. 언젠가 처가에 갔다가 노인대학을 다니는 장모님의 글을 읽은 것이다. 그때의 감동을 유 교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노인대학에서 소식지에 실린 장모님의 글은 너무 평범하다. 하지만 삶은 누구보다 진실하고 뜨겁다. 모든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간명한 진리를 위해 긴 글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나보다는 적어도 몇 배는 따뜻하고 깊다."

유동걸의 <미래학교와 무지한 스승>은 두 편의 영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먼저, <하늘이 기다려>라는 영화는 이슬람 테러 단체인 아이에스(IS·이슬람국가)가 유럽 청소년들을 어떻게 자기 조직으로 끌어들이는가를 보여준다. 저자가 이 영화에서 차용하는 장면은 주로 수업 장면이다. 선생님이 앞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주인공 멜라니는 동화 속 왕자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 청년에게 빠져 휴대폰 속의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느라 눈길을 놓지 못한다.

같은 프랑스 영화지만 <다가오는 것들> 속의 수업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 영화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주인공 나탈리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진리는 논쟁 가능한 것인가?"
학생을 하나 지명하자, 그 학생이
"진리를 논의 못할 이유가 뭐죠?"라고 반박한다.
"그럼 진리 확립이 가능한 분야는? 하고 묻는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그건 논쟁의 여지가 있지요."

유 교사는 소개한 두 수업 풍경이 미래 교육의 양면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아이에스(IS)로의 탈주' 혹은 '오래된 철학 교육과 토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인류를 움직여나가는 과학 기술 문명은 분명 비약적인 발전과 혁명에 이르겠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사고의 소통이 없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이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책에는 앞에서 소개한 두 편의 영화 말고도 <억셉티드>, <디벨레>, <쿵푸 팬더> 등 많은 영화들이 언급된다. 유 교사가 평소 학교에서 실험하고 정착시킨 토론 수업과 연관이 있는 영화들로 보인다. 영화 <억셉티드>의 주인공은 서류를 넣은 곳마다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게인즈 바틀비'다. 그는 지역 대학인 하몬 대학의 불합격 통지서와 자기 신분증의 '융합'을 통해 가짜 대학합격증을 만든다. 가짜 서류로 실망한 부모님을 위로하려던 계획은 부모님의 학교 방문으로 인해 현실이 된다. 다급한 바틀비는 대학에 떨어진 친구들과 함께 주변의 버려진 정신병원 건물을 진짜 학교처럼 개조해서 학교(비인가)의 운영자가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식 대학을 가보지도 못한 바틀비는 대학의 사명과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하몬 대학을 방문하지만 교수들의 지루한 강의와 성적에 목매인 학생들을 보면서 실망을 넘어 절망적인 교육현실을 목도한다. 그렇다면 자기가 만든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여기서 질문(!)이 시작된다. 배움을 찾아 대학으로 몰려든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데?"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이 대학을 찾아온 학생들이다. 학교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얼핏 한 편의 코미디 영화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실상과 너무 유사하다는 것이 유 교사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다.

<미래 학교와 무지한 스승>은 제목 앞에 '인공지능 시대의'라는 말이 붙어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단연 '창의성'이다. 하지만 그 창의성이 개인의 고독한 분투보다는 협업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이 유 교사의 주장이다. 창의력, 협력, 문제 해결력을 세상을 더 낫게 바꾸거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좋은데 취직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현상이다. 이런 경우, 창의성 교육이란 결국 '또 다른 틀을'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학교와 무지한 스승>은 서문과 1부 '미래학교', 2부 '무지한 스승-되기', '에필로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근대 학교와 미래학교', '바틀비, 필기하지 않는 인간', '창의성과 협력의 대결', '복잡계를 아시나요?', '잉여성과 다양성', '공유지의 비극에서 공유지의 희극'으로, '디벨레와 독재교육', '의사결정의 정치적 자유와 보이텔스바흐 협약'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제 2부는 '선생, 교사, 스승, 그리고 무지한 스승', '무지한 스승과 쿵푸 팬더3', '마을의 탄생과 새로운 학교들', '니체와 춤을' '허상과의 싸움', '차이와 반복의 고유성', '들뢰즈와 랑시에르의 합, 무지한 스승-되기' 등 다양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이런 내용들이 딱히 미래학교와 관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작금의 대한민국 교육을 돌아보게 하고 미래 교육을 고민하기 위한 시작점에서 절실하고 중요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심임섭(복잡성교육연구소 소장)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영화와 고전, 그리고 탈근대적 복잡계 개념들을 넘나들면서 마치 춤을 추듯이 리듬을 타면서 '무지한 스승'의 교육적 개념을 펼쳐간 필자의 내공이 놀랍다."고 적고 있다. 유동걸 교사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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