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보면 어느새 답장 쓰게 하는 편지

[서평]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

검토 완료

임윤수()등록 2019.08.23 14:53
편지는 소식이고 사연입니다. 글로 읊조리는 마음이고 생각입니다. 머리 짧게 깎고 입대한 훈련병이 보낸 편지에는 군인이 돼가는 일상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고, 섬마을에 사는 젊은 남녀가 띄우는 편지에는 어느새 바닷가 풍경을 그리게 하는 표현이나 내용이 편지글 구석구석 배어있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편지 글이 담아내는 속뜻은 자연스레 풍겨나는 냄새 같습니다. 편지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 되기도 하고, 글로 연주하는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편지로 담아내는 소식 중에는 꽃피는 봄, 눈 내리는 겨울이 그려내는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도 있고, 누군가가 돌아가셨음을 알리는 서정적 부음도 있습니다.
 
젊은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는 뜨겁습니다. 그리움이 구구절절하기도 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띄우는 편지에는 바닷가 소식이 파도를 치고, 산중에 사는 사람이 띄우는 편지에는 산중 소식이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산새 소리를 닮았고, 계곡물 소리를 닮았고, 이따금 불어오는 솔바람 내음을 닮았습니다.
 
산중에 사는 출가수행자가 띄우는 편지에는 출가수행자의 일상, 기도하고 구도하는 일상이 목탁소리처럼 담겨 있고, 햇살처럼 드러나 있게 마련입니다.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글 정념 스님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9년 8월 22일 / 값 19,000원) ⓒ 불광출판사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글 정념 스님, 펴낸곳 불광출판사)은 40년 전쯤 출가해 오대산 자락을 오가며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 띄운 편지글입니다.
 
스님이 띄운 편지글에는 출가수행자의 삶이 가득합니다. 이슬 맺힌 풀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바짓가랑이에 이슬이 스며듭니다.

시나브로 습이 되어버린 출가수행자의 삶에서나 우러날 이야기들이 편지글 구석구석에 담겨 솔바람처럼 불어오고 물결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오대산만큼이나 크고 무거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비탈 길 만큼이나 읽는 마음을 숨차게 하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겨우 발목쯤 잠길 깊이의 계곡물에서나 들릴법한 이야기, 계곡의 전설 쯤 다 품고 있지만 벌컥벌컥 마셔도 좋을 만큼 맑고 청아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정념 스님이 띄운 편지글에는 청량감이 있습니다. 뭉게구름조차 무시로 내려 앉아 타박타박 걸을 것 같은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그리게 하는 풍경, 산사 처마 끝에 매달려 불어오는 바람에 뎅그렁 거리는 소리로 맞장구쳐주는 풍경소리가 연상되는 글들이 마음에 향불을 피워줍니다.
 
저에게 가장 뿌듯했던 장면은 개막식이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상원사(上院寺) 동종(銅鐘)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각 나라에 수많은 종류의 종이 있지만 한국의 종이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는 바로 상원사 동종입니다. 가장 오래되고 한국종의 모든 특성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을 품은 아름다운 소리로 평화와 화합의 마당을 연 장면은 두고두고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 54쪽-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나뉘어 담긴 편지글에는 고단한 삶 잠시 내려놓고 싶게 하는 안락한 글도 있고, 시들해진 마음 다시 추스르게 하는 호령 같은 글도 있습니다.
 
월정사가 오대산에 있고, 편지글 속에 오대산이 들어 있으니 편지글에서 그려지는 월정사는 정념 스님이 기도와 수행으로 피워 올리려는 깨달음을 뭉툭뭉툭 담아가고 있는 향로향합일지도 모릅니다.
 
색채 진한 불교이야기만 가득한 편지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 스님, 절이라는 선입견 한 꺼풀 거두고 읽다보면 맑게 살고 있는 산승이 비질하는 마음으로 쓴 것 같은 산문일기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는 감동입니다.
 
산에 사는 산승이 편지글로 그려낸 월정사의 사계와 풍광은 사는 이야기이고, 월정사엘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수두룩한 이야기까지 곁들인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느낌은 어느새 월정사를 기웃거리고 있는 마음을 오대산으로 걸음하게 하는 또 다른 손짓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글 정념 스님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9년 8월 22일 / 값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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