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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광화문 캠핑촌'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40] 블랙리스트 예술 검열에 저항하는 예술운동의 실천과 전망
2017년2월23일 (목) 이원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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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천막 강제철거하는 경찰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지난해 11월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시국선언 뒤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천막을 설치하자 경찰들이 강제철거하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라 분류한 문화예술인들이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4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7449명의 문화예술인들, 289개의 문화예술단체들은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라고 외치며 박근혜 정부의 예술 검열, 문화 행정 파탄,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등을 비판했다.

기자회견 이후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 광장에 개인용 텐트를 설치하려 했다. '박근혜 정부의 퇴진',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상 규명' 등을 위해 광화문 광장을 예술 캠핑촌을 거점화하여 다양한 예술행동을 실천하고 촛불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예술 캠핑 촌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은 실패했다. 많은 수의 경찰 병력들, 견고한 정부의 공권력 앞에서 수 십여 명에 불과한 문화예술인들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한 존재였다. 문화예술인들이 준비한 텐트들은 대부분 파손되어 광화문 광장 구석을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고, 문화예술인들 역시 광화문 광장 곳곳에서 경찰들에게 둘러 싸여 짐짝 취급을 받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반복된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가 마치 '신체화'된 것 같았다. 광화문 광장 곳곳에서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고통과 울부짖음이 한 편의 잔혹극처럼 펼쳐졌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폭력적인 공권력 앞에서 물리적인 힘이 약하고 초라했을 뿐 그 신념과 열정만큼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수 년 동안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인 국정 운영을 비판해 왔고, 그 때문에 반복적인 예술 검열에 시달렸으며,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 등과 같이 수많은 시간들을 거리에서 보내온 사람들, 바로 "블랙리스트들"이 아니던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빼앗긴 텐트와 예술행동의 권리를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밤샘 노숙 캠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광화문 광장을 찾아 온 수많은 촛불시민들, 노동자들과 함께 <광화문 캠핑촌>을 기어코 설치했다. 개인 텐트들로 시작된 <광화문 캠핑촌>은 현장 예술을 온 몸으로 지켜온 예술가들,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권리를 위해 애써온 문화운동가들,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연대가 제법 익숙해진 장기투쟁 노동자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캠핑 운동에 동의하는 촛불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누구도 불과 2개월 후의 대한민국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다. <광화문 캠핑촌>이 박근혜 퇴진을 위한 거대한 공유지(commons)로 공진화하고, 박근혜 정부 몰락의 중심에 블랙리스트 사태가 자리하고, 우리 손으로 김기춘과 조윤선 등을 감옥에 보내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의 사회적 의미들

<광화문 캠핑촌>이 조성된 다음날, 나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새로운 이름으로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이하 예술행동위원회)를 제안했다. 처음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예술 캠핑촌을 거점화하고 좀 더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예술행동을 제안했던 이유는 단순히 박근혜 퇴진과 최순실 등 비선실세들의 처벌에만 있지 않았다.

우리에게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는 광화문 촛불시위 처음부터 마음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우리가 그냥 박근혜 하나 바꾸자는 겁니까?"라는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답 이었다. 이렇게 블랙리스트 사태와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로 시작된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는 '새롭고 대안적인 시민정부의 구성'을 꿈꾸며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어느새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는 진행형이다.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 시행착오와 난처함, 두려움과 설렘 등을 경유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블랙리스트들의 예술행동은 광화문 광장에서 매순간 공진화하고 있다.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예술 행동을 의미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예술 검열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전면화 했다. "예술의 역사는 곧 검열의 역사"라는 말처럼 예술에 대한 국가 권력의 검열은 늘 우리 곁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처럼 예술 검열 문제가 문화예술계를 넘어, 국가 장치 전반에 걸쳐,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 예술 검열의 문제가 국가 권력의 교체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현실화된 적이 있을까? 사실 새누리당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예술 검열은 놀라울 정도로 꾸준하게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예술계는 유신체계에 그 뿌리와 추억을 두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강박적인 예술 검열에 격렬하게 저항해 왔다.

이미 2015년 12월에 예고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는 지금 이 순간 예술 검열의 사회화로 인해 스스로 파국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근 100일 동안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행동은 박근혜 정부의 예술 검열을 밝혀내며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파국을 주도했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11월 4일 블랙리스트 시국선언 이후 <광화문 캠핑촌> 활동을 통해 블랙리스트 사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였다.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 검열 문제는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홀대를 받았다. 이에 문화연대를 포함하여 12개 문화예술단체들은 박영수 특검팀에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형법 제324조 강요 및 제314조 제1항 업무방해'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 비서실장,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9명을 고발하였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특검 고발 및 수사 협조 이후 블랙리스트 사태는 특검의 압수수색, 내부 고발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매 시간 눈덩이처럼 불어나갔다. 지금 이 순간 블랙리스트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최순실, 차은택 등 국정 농단 세력들을 처벌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이 처음으로 고발했던 김기춘,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김종덕과 조윤선 등이 감옥에서 예술가를 검열하고 헌법을 유린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지난 2월 9일 대한민국,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대상으로 집단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461명이 참여한 이번 집단 민사소송은 단순히 문화예술인 개개인의 피해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와 문화예술인 집단소송을 계기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반복해 온 "정책으로서의 예술검열 융성", "이념대립의 정책 구조화 및 지원사업 연계" 등의 국가폭력을 문화예술인들 스스로 반드시 해결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이번 <광화문 캠핑촌> 활동은 "공유지(commons)로서의 예술행동"을 둘러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광화문 광장의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 국면에서 기존의 노숙, 농성, 파견예술 방식을 뛰어 넘어 좀 더 다양한 예술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캠핑" 형식의 예술행동을 해보자고 제안했던 나 자신에게조차도 <광화문 캠핑촌>은 하나의 상상 혹은 가능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광화문 캠핑촌>은 형성된 순간부터 매순간 빠르게 재생산되고 공유되며 확장되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 하고 갈등하고 분열하고 재구성하고 공진화했다.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가 새로운, 지속적인 공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개방적이며 자율적인 주체들의 역량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캠핑촌>은 오랜 시간동안 현장 예술행동과 사회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을 출발점으로 "폐쇄적인 관리체계 중심의 운동보다는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커뮤니티 형성"을, "집단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구조보다는 개별적이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상징적이고 위임된 역할보다는 실질적이고 자발적인 실천"을, "당위적이고 형식적인 활동보다는 스스로의 필요와 동기에서 출발한 활동"등을 지향하며 함께 진화해 왔다.

이를 위해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는 형식화된 대표나 집행체계보다는 직접민주주의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캠핑 당사자 주체들 중심의 '촌민 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원탁회의'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였다. 아래 <광화문 캠핑촌>의 주요 활동 목록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이러한 맥락 속에서 참여 주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다양한 예술행동과 시민참여 프로그램들이 구성되고 활성화될 수 있었다.

<광화문 캠핑촌>의 주요 활동들
(2017년 2월 6일 기준)
▪ 2016년 11월 04일 블랙리스트 기자회견 후 노숙농성
▪ 11월 05일 광화문 광장 텐트 설치 및 광화문 캠핑 예술행동 시작
▪ 11월 10일 광화문 캠핑촌 블랙리스트 페스티벌 개최
▪ 11월 12일 풍물단체연합 터밟기 터굿, 마임공연
▪ 11월 13일 검열-성폭행에 항의하는 '검은시장' 블랙마켓
▪ 11월 17일 ~19일 박근혜 퇴진 신나는 롹킹 문화난장 '하야하롹'(1차 3일간)
▪ 11월 19일 <광장신문> 1호 발간
▪ 11월 22일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활동 시작, 박근혜 하야하라~굿
▪ 11월 26일 <광장신문> 2호 발간, '하야하롹'(2차, 전국 9개 도시)
▪ 11월 27일 일과노래 콘서트 <고백>
▪ 11월 29일 광장토론위원회 구성, <광장토론01_박근혜퇴진을 위한 광장의정치와 경로>
▪ 12월 01일~03일 새로운 나라로 가는 길 굿
▪ 12월 03일 '하야하롹'(3차, 전국 7개 도시)
▪ 12월 06일 <광장토론02_진짜 퇴진을 위해광장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 12월 08일 기자회견 '박근혜 즉각 퇴진 및 블랙리스트 관련 구속수사 촉구'(헌법재판소 앞)
▪ 12월 10일 <광장토론03_탄핵 이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광장신문> 3호 발간, 박근혜 즉각 퇴진 퍼레이드
▪ 12월 12일 기자회견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 고발' (특검 사무실 앞)
▪ 12월 13일 <광장토론04_평등한 광장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12월 14일 <양심수를 위한 연대의 밤>(서울구치소)5)
▪ 12월 20일 <광장토론05_탄핵 이후 광장정치의 문화적 의미와 예술운동의 방향>
▪ 12월 24일 도깨비 판굿 강강술래, 즉각퇴진 깃발 퍼포먼스 <궁핍현대무실광장 개관>, 콘서트 <광장의 노래>
▪ 12월 27일 <광장토론06_재벌총수 즉각구속, 재벌해체와 삶의 변화>
▪ 12월 29일 기자회견 <조윤선 사퇴 및 구속수사 기자회견>
▪ 12월 30일 박근혜 정권 열사, 희생자 추모제 <광장을 비추는 별>
▪ 12월 31일 광화문 새날맞이 굿 ▪ 01월 07일 "빼앗긴 극장, 이곳에 세우다, 광장극장 <블랙텐트>" 설치
▪ 01월 10일 <광장토론07-2017 촛불에 바란다>
▪ 01월 11일~12일 <블랙리스트 버스>(세종시 정부청사, 1박2일)
▪ 01월 14일 궁핍현대미술광장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전시회 시작
▪ 01월 16일~20일 블랙텐트 <빨간시> 공연
▪ 01월 21일 <광장토론08_광장정치를 둘러싼 정세와 대응전략>, 공연 <얼쑤 탄핵하세>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 활동은 운영원리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 구체적인 프로그램 측면에서도 공유지로서의 예술행동을 실천해왔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 광장에 몇 주간 방치되어 있었던 다른 시민주체들의 대형 몽골텐트를 전달받아 광장 미술관 <궁핍현대미술광장>과 촛불시민들을 위한 <공유창고>로 재탄생시켰다.

<궁핍현대미술광장>은 전시장으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일정 규모의 안정적인 공유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광화문 캠핑촌>의 공유지 성격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궁핍현대미술광장>의 광장 전시가 시민들의 지지를 받자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광장극장위원회>를 구성하고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조성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블랙리스트 사태를 알렸고 더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캠핑촌>의 일상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저녁 만석이 되어 공연을 보는 사람들보다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블랙텐트>.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예술 검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품에서부터 세월호 유가족 극단들의 공연, 언론 통제와 검열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 공연 레퍼토리 자체에서부터 광장극장으로서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보하였다.

<궁핍현대미술광장>과 <블랙텐트>는 광장에 위치한 하드웨어로서의 미술관, 극장의 가치를 넘어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이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화행정의 공공성, 문화시설의 공유적 가치 등을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으로 제기하는 예술운동의 중요한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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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옥상 화백 ,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무덤' 퍼포먼스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지난해 11월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또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은 광장의 정치를 둘러 싼 새로운 상상력과 관계성을 만들어냈고, 연대의 가치를 확장하였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행동위원회>와 <광화문 캠핑촌> 활동은 블랙리스트 사태, 문화예술계 내의 문제 등으로 제한되지 않았다.

박근혜 퇴진 국면이라는 시대적 사건과 촛불집회의 현장 속에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행동은 개방성과 연대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향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출발하였지만 세월호 진실 규명, 재벌개혁과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문제, 사드 배치 반대 투쟁 등 <광화문 캠핑촌>은 다양한 광화문 촛불시민들의 활동을 위한 공유지이자 플랫폼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광화문 캠핑촌>은 단순한 공간 점거와 농성 운동에 머물지 않고 <광장토론위원회>, <광장신문> 등을 구성하고, 광장의 정치를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광장토론위원회>는 광장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지식인과 연구자,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사회운동가 등이 참여해 광장의 정치를 둘러 싼 다양한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박근혜 퇴진 국면에 대한 정세 분석에서부터 광장 정치의 미래와 대안, 광장 문화의 민감한 쟁점들에 이르기까지, <광장토론위원회>의 '끝나지 않는 광장토론회'는 개방적이고 지속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하게 해냈다. <광장토론위원회>가 광장 정치를 둘러 싼 소통과 연대의 공론장을 제시했다면, <광장신문>은 광장을 가득 채운 다중들과의 새로운 표현과 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1호부터 "박근혜 하야 발표"라는 파격적인 가상 기사로 광장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었던 <광장신문>은 박근혜 하야, 재벌 개혁, 노동자 문제 등 광장 정치의 관심들을 의제화하고 급진화하는 역할을 했다. <광장신문>의 새롭고 혁신적인 표현 방식과 깊이 있는 글쓰기는 역동적인 광장 정치와 광장 문화에 또 다른 깊이와 다양성을 보탰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의 아쉬움 혹은 한계점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은 다양한 성과만큼이나 많은 아쉬움과 한계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이 기존의 문화운동 주체들, 현장 예술운동 주체들의 커뮤니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광화문 캠핑촌>에서 혹한의 추위와 싸우며 박근혜 퇴진 운동과 블랙리스트 사태에 저항해 온 주체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태와 같은 충격적이고 폭발적인 주제 앞에서도 대다수의 문화예술인 들이 적극적인 자기 실천이나 예술적 행동보다 '집회 관객'이나 '시위 평론가'라는 위치에 머물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열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캠핑촌>이나 <예술행동위원회>가 더 많은,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당사자 주체로, 협력의 주체로, 새로운 예술운동의 주체로 호명하고 초대하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예술운동에 대한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의 국면에서 형성된 자율적인 역량을 통해,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가 예술운동의 지평을 넓이기 위한 새로운 기획력과 감수성이 필요한 때다.

다음으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이 새로운 예술운동 주체들의 등장과 확장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광장 예술의 미학적 실험성과 다양성 역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의 예술행동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충분히 의미 있고 감동적인 예술운동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비판적으로, 성찰적으로 질문해보자. 앞으로의 광장 예술과 예술운동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보자.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는 현장 예술운동, 광장 예술, 사 회적 예술 등의 맥락에서 미학적으로 어떠한 성취를 이루었는가? 최근 광장과 공유지를 매개로 진행되었던 한미FTA 저지와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예술행동, 용산참사 예술행동, 2008년 촛불시위, 세월호 연장전 등의 궤적 속에서 <광화문 캠핑촌> 활동은 어떤 미학적 진화를 이루었는가?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 국면의 폭발하고 있는 광장정치와 문화 속에서 광장 예술은 광장의 다중, 시민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으며 어떠한 관계성을 모색하고 있는가? 사회와 예술을 둘러 싼 다양한 혁신가 그룹과 실험적인 예술가들은 왜 <광화문 캠핑촌>에 참여하지 않는가? 이제는 <광화문 캠핑촌>을 비롯하여 현장 예술운동을 둘러 싼 다양하고 깊이 있는 평론과 토론이 필요한 때다.

그냥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예술운동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예술"을 만들기 위한 비평과 토론 그리고 새로운 협력으로서의 예술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 예술, 광장 예술 등과 관련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축적되고 정형화된 예술운동의 알고리즘을 전면적으로 성찰하고 본질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오래된 관성과 습관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술은 정치를 비롯하여 현실 문제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하고 전통적인 예술가에서부터 "광장 예술, 현장 예술 등이 고생은 많지만 수준이 떨어져서...", "예술을 하려면 광장 같은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등의 고귀하신 엘리트주의자들, 그리고 "예술로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예술로 세상이 바뀌나"와 같은 패배주의로 가득 찬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계는 부패한 국가 권력과 몰락한 예술행정 앞에서도 몸이 무겁고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광화문 캠핑촌>을 비롯하여 현장 예술운동을 지적하고 평론하는 문화예술인들은 많지만 새로운 미학적 실천이나 예술행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문화예술인은 결코 많지 않다. 앞서 언급 한 것처럼 기존 현장 예술운동 주체들의 성찰적 개방성과 수용성도 필요하지만, 기존 현장 예술운동을 낡은 과거 혹은 부채감으로만 인식하며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감각을 잃어버린 주류 예술, 생활예술, 대중문화 주체들의 자기 성찰과 사회적 실천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때다.

누구도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권리를 위해 예술을 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다른 예술가의 권리를 위해 대리 투쟁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예술행정의 몰락 앞에서, 예술을 둘러 싼 사회적 통제와 노동 착취가 심화되고 있는 후기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권리를 위한 예술가 스스로의 각성과 행동 그리고 협력이 중요하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예술행동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광장의 예술은 박근혜 퇴진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아니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다 양한 상상력을 펼쳐내고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는 과정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는 기존 예술의 장르적 노동 형식을 열심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다.

광장을 찾아 온 다중과 만나고 소통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확장하고, 그러한 감각들이 일상으로 확 장되고 축적될 수 있는 미학적 실험이 필요한 때다.

블랙리스트 예술 검열에 저항하는 예술운동, 그 이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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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 검열 창피하다' 문화예술인이 지난해 10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문화예술 긴급행동 및 기자회견에 참석해 예술검열 반대와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불온한 꿈들을 꾸고 있다. 블랙리스트의 꿈은 언제나 금기와 검열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욱 간절하다. 아니 검열의 상흔에서 멀어지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블랙리스트의 꿈은 때로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지금 블랙리스트로 분류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본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디딤돌을 함께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광장에 모여 꿈을 꾸고 있다.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가 광장에서 캠핑한지 100일이 지났다. 불과 3개월 전의 우리 모두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듯이, 지금 우리의 활동이 3개월 후, 1년 후, 10년 후에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이 새로운 예술운동의 씨앗 혹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

먼저 공유지로서의 예술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더 많은 상상력과 토론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토론과 협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토론과 협력이 필요한 때다. 아니 앞으로 현대 예술은 소통과 협력의 감각이 없이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발산할 수 없다.

예술가, 예술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가장 낡은 미학과 감각의 제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현실 어디에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자리는 없다. <광화문 캠핑촌>을 비롯하여 예술운동의 새로운 영토는 공유지다. 공유지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공유적 감각과 관계 그리고 환경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제는 광장을 비롯해서 도시의 다양한 시공간에서 공유지로서의 예술행동을 구성하고 확장하기 위한 더 많은 상상력과 토론이 필요한 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를 비롯하여 현장 예술 운동, 광장 예술을 둘러 싼 다양한 비평과 대안 모색을 위한 공론장을 형성하고 소통하고 관계해 야 한다. 공유지로서의 예술행동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고 예술(가)와 예술(가) 사이의 협력적 창조성을 복원해야 한다.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예술운동 네트워크 구축 및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 예술운동 스스로 현재의 과정들을 자기 혁신과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예술운동은 문화예술계 내부에서조차 철저하게 분산되고 개별화되고 고립되어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해 예술운동을 주도했던 조직들은 현장 예술가들, 젊은 예술가들에게 신뢰를 잃은 채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고 있다. 새로운 예술운동을 표방했던 신진 조직들은 예술운동을 전개 하고 사회적 가치를 펼쳐보기도 전에 조직을 운영할 역량이 없어 소멸되거나 오직 생존을 위한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제는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부터 낡고 부패한 구조들, 주체들과의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

과거의 예술운동을 내파하고 자율적이고 급진적인 새로운 예술운동의 씨앗들, 협력들을 꾸준하게 만들고 축적해 가야 한다. 이번 <광화문 캠핑촌>과 <예술행동위원회> 활동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퇴진과 적폐 청산을 넘어 새로운 시민정부, 시민권력, 문화예술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통합적이고 통섭적인 예술행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내부에 다양한 커뮤니티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문화예술계 내에서부터 예술운동의 자율성과 급진성 그리고 연대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현장 예술운동의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 생활예술, 문화교육 영역과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둘러 싼 사회적 환경도 변화하였고,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 역시 변화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지속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시는 블랙리스트 예술 검열이 없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대규 모 집회와 시위용 예술행동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 개개인의 삶이 바뀌고, 삶의 공간 곳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상들이 확산되고 연결되고 축적돼야 한다.

새로운 예술운동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광화문 광장의 예술운동이 지역 곳곳의 광장, 동네 곳곳의 공원과 놀이터, 국민과 주민들 개개인의 삶의 영역까지 연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예술운동의 가치와 지향이 지역문화, 생활예술, 문화교육 등과 만나고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직접민주주의와 예술운동이 지역문화, 생활예술, 문화교육 등을 통해 마을민주주의, 동네민주주의로 축적돼야 한다. 삶의 일상 속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문화예술 커뮤니티들이 광장의 예술운동이 되고 지역의 문화민주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예술 운동의 생태계가 사회 곳곳에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에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문화운동, 문화예술분야의 사회적 경제 조직 및 협동조합 운동, 문화귀촌운동 등과 현장 예술운동이 적극적으로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생활친화적인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현장 예술운동의 환경과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예술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운동의 급진화를 위해서는 예술과 노동, 예술과 생태, 예술과 과학기술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예술운동이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미 후기자본주의와 위험사회에서 예술은 불안정 노동, 이주 노동, 생태적 위기 등과 분리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블랙리스트 사태 역시 "지원사업에 의존적인 문화예술생태계",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문화예술기관의 노동 구조", "철저하게 분업화되고 고립화된 문화행정의 노동 구조" 등이 구조적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예술운동의 급진화와 대중화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 사회운동 주체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연대를 통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술운동 스스로 문화예술계 중심의 제한된 의제 설정, 전통적인 전문성으로서의 도구화된 예술운동 방식 등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협력의 가치와 방법론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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