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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입양에 반대하는 딸바보 아빠
"모든 가족은 특별하다"고 말하는 김지영 시민기자
2018년5월15일 (화) 글:정대희 | 편집: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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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입양 가족의 이야기를 엮은 도서. 이 책을 쓴 저자도 공개 입양 가족이다. ⓒ 정대희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어릴 적 추억이다. 코흘리개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말로 날 골렸다.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출생의 비밀이었다.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울며불며 집을 나와 동네에 있는 '다리 밑'을 돌아다녔다. 어딘가에 진짜 부모가 있다고 여겼다. 데려와 키운 게 아니고 놀리려고 한 말이란 건, 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됐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말, 내겐 흠으로 들렸다.

다른 하나는 글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어느 날이었다. 지역신문의 한 기자가 취재하던 아이를 입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기자가 거룩해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신파극을 찍었다. 나와 상관없는 아주 먼 이야기가 되니 낭만적으로 들렸다.

이런, 내게 그는 벼락같은 소리를 했다. 입양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다고. 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낭만적인 일도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딸을 입양하고 거기에 얽힌 사연을 공개한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뜨끔했다.

그의 따끔한 외침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리포트 '입양을 인터뷰하다'에서도 그랬다. 이 글에서 그는 입양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의 편견을 향해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김지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거룩한 입양은 없다고 말하는 '딸바보 아빠'를 소개한다.

입양을 결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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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를 쓴 김지영 시민기자 ⓒ 정대희

그는 얼굴을 마주하자 두 가지 기억을 꺼냈다. 첫 번째는 아내의 등에 대한 거였다. 지난 2007년 봄, 어느 날이었다.

김지영 시민기자의 아내는 등으로 말했다. 부엌에서 도마질하며, 이런 소리를 했다.

"우리 입양해볼까?" 

등 앞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김지영 시민기자의 대답은 짧았다.

"정말이야?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이게 대화의 끝이었다. 이후 아내는 뭔가를 계속 툭탁거렸다. 그도 하던 일을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9살 된 아들은 웃었다. 그는 입양을 흠으로 여기지 않았다.

대답이 쉬웠던 건, 이런 기억이 있어서다. 김지영 기자가 인생의 봄날을 꿈꿨던 때다. 두 번째 기억이다.

대학 시절이었단다. 흑심을 품고 동아리에 가입했다. 여자 친구를 사귈 속셈으로 들어갔는데, 봉사하러 가게 됐다. 장애아동 시설이었다. 꼬마 숙녀랑 온종일 몸으로 놀았다. 아이는 눈이 아니라 손으로 그의 얼굴을 익혔다. 시각장애 소녀였단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소녀가 물었단다. 언제 다시 오는지. 마음이 짠했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다음 달"이라고 말하고 뒤돌아 차에 올라탔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약속은 까마득히 잊었다. 등이 따끔거렸다.

그때 지키지 못했던 약속은 또 있었다. 먼 훗날, 결혼하면 입양을 하겠다고 했던 다짐이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가슴 한 귀퉁이에 있던 오래된 마음을 꺼냈다. 남들은 말로만 하는 일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딸을 입양하기로 했다. 김지영 기자는 둘째는 딸이길 원했다. 아내도 그랬다.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딸을 원했다.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이어야 했다. 이유는 이랬다.

"난 아들만 다섯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여자 형제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이런 목마름에 딸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낳는다면, 100% 확실할 수 없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런저런 일을 비춰볼 때, 아들일 가능성이 컸다.

바늘 점이라는 게 있다. 어린 시절 재미 삼아 했던 놀이인데, 나와 아내는 아들만 둘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사주도 똑같았다. 형제들도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도 아들을 낳고, 딸이면 자매를 키우고 있었다.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불안했다. 아내가 딸을 입양하자고 했을 때, 내 안에 품고 있던 낭만이 싹을 틔웠다. 그건 딸바보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운명같이 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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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다. ⓒ 김지영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인터넷을 뒤져 집에서 가까운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다음 날, 40km를 달려 진주에 도착했다. 입양 기관의 문이 잠겨 있었다.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다음 날 다시 찾아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여긴, 인연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번엔 부산으로 갔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입양기관이 거기 있었다. 약 140km를 운전해 목적지에 다다랐다. 헛걸음했던 기억이 있기에 떠나기 전, 전화로 상담 약속도 잡았다. 그리고 입양 가족을 신청했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입양자격이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모르는 게 있었다. 아니,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 입양하면, 아이를 고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쇼핑하듯 아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어지고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입양은 '뚝딱'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입양 가족이 되려면, 준비해야 할 서류가 꽤 됐다. 건강검진까지 받아야 했다. 입양기관에서 그가 사는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어떻게 사는지 살림살이를 보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심사가 끝난 뒤에는 연락이 오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김지영 시민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입양 가족을 신청한 지 3개월 만이 어느 날이었다. 입양기관의 "소장님"이었다. 소개할 아이가 있다고 했다. 딸은 입양하겠다는 신청자가 많아 1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뜻밖이었다.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생모는 스물일곱이라고 했다. 처음엔 직접 키울 생각이었지만 산달이 가까워질 무렵, 입양을 보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했다.

통화가 길어졌다. "소장님"은 갑작스레 전화가 이유를 꺼냈다.

생모가 아이의 입양을 결정하면서 곧바로 양부모가 정해졌다고 했다. 한 목사님의 가정이었단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최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 미만의 영아입양은 관행상 '인우 보증'(친구나 친척, 이웃 등 가까운 사람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을 해야 친자등록이 가능한데, 한 달 안에 입양 가정을 정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고 했다. 이게 얼마 남지 않았다며, "소장님"은 김지영 시민기자에게 입양 의사를 물었단다.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좋다, 싫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이는 주어지는 거고,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그럴 때였다. 일주일 뒤, 그는 아내,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입양하기로 했던 목사님 가정이 미국에 잠시 나가 있는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거였다. 이런 상황을 그는 두 번의 '우연'으로 표현했다. 우연히 반복되면 인연이 된다. 그는 이렇게 운명같이 딸을 얻게 됐다.

배 아파 낳는 거나, 가슴 아파 낳는 거나 똑같았다. 신생아를 맡을 준비로 김지영 시민기자의 가족은 바빠졌다. 딸을 만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당장 젖병부터 사야 했고, 이것저것 살 아이 용품도 많았다. 하루는 시내 큰 마트에 다녀왔다. 볕은 좋은 날엔 천 기저귀를 빨아 말렸다. 9년 전이 아들 출산을 앞두고도 이랬다.

마음도 되살아났다. 아내가 첫 아이를 배고 출산하기까지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이 그대로 온몸을 감쌌다. 한 생명을 얻는 과정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은 '벅차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랬던 가슴이 고장 났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에 떠나기 전, 김지영 시민기자의 가족은 목욕했다. 긴장한 가족의 숨이 새어 나와서일까.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은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을 처음 봤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 차올라 당황스러웠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어리둥절했단다. 이런 감정이 솟아날 거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첫째 아들을 낳았을 땐 가슴 속에서 뭔가 북받쳐 올라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달랐다. 눈앞에 딸이 있는데,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내는 딸아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눈물을 흘렸다. 아들도 신기하지 천진난만하게 동생을 바라봤다. 나는 낯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감정이 날아간 건, 집에 돌아와서다.

아이 우유 먹이고, 드림 시키고, 똥 기저귀 갈고, 엉덩이 씻기고... 이런 일을 하다 보니 하루 만에 낯선 감정이 날아갔다. 그리고 미안함 감정이 솟아올랐다. 딸애한테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가롭게 감정이나 잡고 있을 수 없었다. 육아 전쟁이 시작됐고, 곧 아이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딸바보'가 된 소린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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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입니다. ⓒ 김지영

김소린. 김지영 시민기자가 사랑하게 된 둘째 딸 이름이다. 동양학 박사인 그의 동서가 지어준 이름이다. 사주팔자를 풀이해보니 굉장히 외양적이고 자유분방하고 고집이 센 성격이었단다. 이런 기질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이름이 '소린'이었다. 

소린이는 그를 딸바보 아빠로 만들었다. 한번은 소린이의 애착 인형 토끼의 옆구리가 터졌다. 어딜 가나 이 인형을 끼고 다니는 딸을 위해 개고생을 자처했다. 똑같은 인형을 구하느라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아빠의 힘이 돼주기도 했다. 김지영 시민기자가 시골 생활의 뜨거운 맛을 알게 됐을 때다. 그는 하던 일이 마음대로 안 됐단다.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아보자고 도농공동체 법인을 만들었는데, 마음이 앞섰다. 농장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사업인데, 현실은 냉혹했다. 사람에 상처받고 인생의 쓴맛을 봤다. 좌절감이 몰려왔다. 이때 소린이를 보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됐다.

이렇게 애정을 쏟아 키운 소린이가 12살이 됐다. 한때는 아빠가 '까꿍' 하면 웃었는데, 이젠 TV 브라운관에 아이돌이 나오면 즐거워하는 소녀가 됐다. 좋아하는 남자애도 생겨, 친구들끼리 모이면 그 녀석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가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와의 전쟁도 시작됐단다. 둘은 사사건건 말다툼에 걸핏하면 부딪힌단다. 어이가 없는 건, 이러다가 어느 순간 보면, 둘이 부둥켜안고 자고 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치열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란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린이가 주는 행복은 이로 말할 수 없다.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낙이다. 보통의 잣대로 보면, 모범생도 아니고 뛰어난 자질을 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아이지만 내겐 항상 특별한 존재고 자식이다. 딸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상에 거룩한 입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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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시민기자는 '목수'라는 직업을 잠시 내려놓고 최근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입양을 가로막는 '입양특례법 철회' 등 관련 업무를 하기 위해서다. ⓒ 정대희

공개입양을 선택한 김지영 시민기자. 그는 비밀입양을 거부한 이유를 자신의 저서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저 '비밀'이란 단어가 주는 은밀한 느낌이 싫었을 뿐이다. 세상에 드러내선 안 되는 금기어처럼 가려져 있다는 점이 개운치 않았다. 밝게 자라야 할 생명이 출발부터 뭔가를 감춰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공개입양은 단순히 입양을 만천하에 알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는 입양에 대해 너무 몰랐다. 공개입양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척박했던 시대적 한계도 물론 영향을 미쳤지만, 세상은 좀처럼 입양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찾고자 직접 나섰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요즘 '목수'가 아닌 '사무국장'이란 직함을 달고 일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수원에 있는 전국입양가족연대다. 그는 최근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입양특례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입양자격을 돈으로 따져서다. 가령 내가 소린이를 다시 입양한다고 치자. 연봉 5000만 원은 되어야 하고 집은 방이 3개 있어야 한다. 아파트면 24평이 넘어야 한다. 심지어 아이큐 검사도 하고 음주운전 경력이 있어도 입양이 불가능하다. 이러니 '돈 있는 집만 입양한다'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거다.

경제적 조건만 까다롭게 한 게 아니다. 재산과 건강, 직업 등 입증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24가지나 된다. 영혼까지 탈탈 터는 거다. 지난 2011년 입양특례법 통과 후 어땠나. 국가가 입양에 개입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나 우리나라 입양률이 1/4 토막 났다.  

까놓고 말해서, 나 같은 일용직에 경차 타는 사람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거냐.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냐. 경제적 자격만 보면,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만 입양할 수 있는데, 최근 조양호 일가와 재벌 2세, 3세의 갑질 논란을 봐라. 자식을 잘 키웠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양육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가슴은 따뜻한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입양할 수 없다면, 올바른 입양 정책이 아니다. 개정안을 보면, 입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한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거다. 이게 제일 먼저 돼야 한다."

-어떤 법이 마련되어야 하나?
"아이들은 시설이 아니라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혼모가 있다. 말 못 할 이유로 입양을 보내야 한다면, 이게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낙태를 하던 가, 아이를 유기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떤가. 베이비박스에 간 아이들을 보자. 대부분 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엄마, 아빠와 손잡고 여행 가는 게 아니고 선생님 손잡고 단체로 다니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크게 된다.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진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가정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인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수천 명의 아이의 운명이 달라졌다. 이건,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일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해야 한다."

-입양 가족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가?
"특별한 가정으로 본다는 거다. 사람들은 입양 가족이나 다문화 가정을 보편적 가정으로 보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닮았다. 하지만 내가 겪고 만나온 입양 가족의 공통점은 보통의 가정과 다를 바 없다는 거다.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거나 부모가 느끼는 감정은 같다. 가족으로 교감하는 차이는 없다.

이런대도 사람들은 입양 가족이라고 하면, 대단하게 여기고 거룩하게 바라본다. 동정의 시선으로 측은지심으로 아이를 대한다. 하지만 가족은 저마다 고유한 냄새와 분위기가 있다. 이건, 사람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다. 모두가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어서다.

그래서다. 입양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동정받을 이유도 없다. 귀농 생활의 낭만을 꿈꾸는 것처럼, 선의로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왜냐, 보통의 모든 사람은, 가족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0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 김지영 시민기자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떠올랐다. 거기엔 길 글과 함께 인터넷 주소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입양"을 막는 "입양특례법 개정"을 "철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지난달 19일, 종료된 이 청원에 6,831명이 동참했다.

난 바란다. 거룩한 입양에 반대하는 김지영 시민기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퍼지길. 그래서다. 아래 영상을 클릭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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