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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팬 뒤 노래하라고, "그곳은 지옥이었다"
[선감도의 비극⑫-2] 성폭행하고, 친구 따귀 때리게 하고
2018년6월28일 (목) 이민선 기자
선감학원은 소년 감화원이란 이름의 강제 수용소였다. 이 수용소는 일제가 '소년 감화'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수용소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운영 됐다. 수용소 안에서는 문을 닫던 해인 82년도까지 강제노동과 폭력 등 온갖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그 사이 수많은 수용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살아남은 일부 수용자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가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과거 이 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선감학원이라는 이름의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 비극을 낱낱이 밝힌다. [편집자말]
⇒ 전편 <반복되는 구타와 기합... 아내는 읽는 것을 포기했다>에서 이어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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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선감학원 신축건물 기공식 기념행사 관련 자료 사진 ⓒ 국가기록원

이렇게 시작된 선감학원 생활은 어린 그에게 지옥이었다. 타고난 성격까지 온순해 더 힘들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Serengeti) 초원의 동물세계 같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곳이 바로 선감학원이기 때문이다.

소년 김영배는 선착장에서 독하게 신고식을 치르느라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3km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허기지고 지친 그를 기다린 것은 불어터져 밀가루 반죽처럼 된 수제비 한 덩어리다. 그나마 먼저 식당에 들어간 덩치 큰 애들이 다 집어 먹어서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불평 따위를 늘어 놓을 수는 없었다. 입만 벙긋하면 주먹이 날아오는 험악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그래서 어린 김영배는 늘 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숙소가 배정되자 신고식이란 게 그를 기다렸다. 어리다고 봐 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하게 괴롭혔다. 기합 주고 때리고, 그러고는 어이없게도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담요를 뒤집어씌워 놓고 여럿이 달려들어 밟아 버리는 '다구리'를 당할 때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힘이 부치는지 긴 한숨을 몰아쉬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난 이런 이야기 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때는 내가(자아, Ego) 없었어요. 몇 년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키만한 곡괭이 자루로 맞았어요. 아이고~ 이거 안 겪어본 사람은 상상도 못해요. 너무 많이 맞아 엉덩이가 부어서 변을 못 본 날도 있어요. 두렵고, 낯설고, 그냥 싫었어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이었어요. 문틈에서 새는 빛을 보는 것도 무서웠고, 문을 여는 순간은 공포 그 자체고요. 그래서 저는 단체생활을 싫어해요. 지금도 사람 모인 곳이 싫어요."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 곳은 검푸른 바다로 사방이 막힌 바다, 선감도였기 때문이다. 임진강이 있는 파주에서 자란 덕에 수영은 곧잘 했지만, 바다를 헤엄쳐 건너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 대신 도망치다 붙잡혀 들어온 아이들 덕(?)에 기합은 원 없이 받았다.

"도망치다 붙잡히면 본때를 보여 준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빠따(몽둥이)를 치고 기합을 주는데, 그것을 보고 있는 자체가 두려운 일이에요. 그 다음에는 단체 기합을 줍니다. 도망치면, 남은 사람이 괴롭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한강철교 시켜 놓고는 그 위를 사장(숙소의 장)이 걸어다니는데, 저처럼 작고 힘없는 아이는 엎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못 버티고 엎어졌다고 또 때리고, 어휴~."

증오하지도 않는데 누군가의 따귀를 때려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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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회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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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을 능숙하게 다루는 김영배 회장. ⓒ 이민선

폭력에도 품격이 있고, 같은 인간으로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그 곳은 그런 윤리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게 맞는 일인데, 그보다 몇 배나 더 고통스러운 게 있었으니, 그것은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때려야 하는 일이었다. 

"서로 따귀를 때리게 하는 게 제일 잔인해요. 마주보게 하고는 때리라고 하고, 살살 때리면 그 짓을 시킨 놈이 달려들어 한방 날리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서로 원수처럼 피가 터지도록 내려치게 돼요. 친구끼리 서로 따귀를 때려야 할 경우도 있었는데, 어휴~ 그럴 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이 말을 할 때 그의 입에서 "때려죽일 놈의 새끼"란 말이 새어 나왔다. 자기도 모르게 새 나온 것 같았다. 성폭력도 '따귀' 못지않게 잔인한 기억이다.

"가자마자 당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보복 당할까봐 반항도 못하고. 짐승만도 못한 짓이죠. 매로 모든 게 다스려지는 곳이니 어휴~. 이 말은 창피해서 집사람한테도 못했어요. 이거 잊히지도 않아요. 한 번 당하면 몸과 마음이 다 피폐해집니다."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도 폭력으로 인한 고통만큼이나 컸다. 식당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를 뒤져도 배고픔을 달랠 수 없어, 흙까지 파먹어야 했다. 여느 흙과 달리 입에 넣으면 초콜릿처럼 쫀득한 흙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너무 많이 파먹어 항문이 막혀, 그 곳을 파낸 녀석도 있다"는 믿기 힘든 말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지옥 같은 세월을 뒤로 하고, 그는 입소한 지 5년만인 1968년 가을에 안양에 있는 '직업 보도소'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기대감을 안고 갔지만, 그곳은 그저 그런 육지에 있는 고아원일 뿐이었다. 1년여 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이 고아원을 탈출한다.

그 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배운 것 없고 기댈 데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두닦이, 식당 배달원 같은 허드렛일이나, 광부 같은 험한 일뿐이었다. 그의 젊은 날을 그는 '비쩍 마른 나뭇잎'으로 비유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가 보이지 않아 늘 불면에 시달렸어요. 배운 것도 없고 기댈 데도 없었으니, 바람만 불면 어디론가 날아갈 수밖에 없는 비쩍 마른 나뭇잎 같은 신세였던 것이죠."

그러나 그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다. 식당에서 배달을 하며 중장비 학원을 다녀 1년 만에 자격증을 땄고, 그 기술로 가정을 지켰다. 성실함 하나만을 믿고 결혼을 해준 착한 아내를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잘 자라 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는 "좋은 아빠라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일을 되물림 하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64살이니 오래 사는 편, 선감학원 출신 단명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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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엔 죽음의 흔적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땅에 묻힌 자국이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풀이 푸성하게 자란 여기가 소년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 정대희

이제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다. 선감학원에서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선감학원 사건 진상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아래 선감학원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 나이 64살. 선감학원 출신치고는 오래 산 편입니다. 거기 출신들이 대체로 단명합니다.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죽은 사람이 많아요. 힘겨운 노후를 보내는 이들도 많고요. 이제 제 목표는 함께 고생한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탄원서도 낸 것인데, 그때는 마음으로 호소하면 받아 주리라 믿었어요. 그런데 공직사회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서야 그 사람들 움직이게 하려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친 거죠."

선감학원 특별법은, 진선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참여로 국회 차원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가 인권위원회도 선감학원의 비극이 국가폭력이라며 특별법을 만들어 정부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인권위원회는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에서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감화령이라는 법령에 근거하여 식민지를 통치하는 조선총독부가 직접 그 설치와 운영에도 관여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인권위원회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정권에까지 그 운영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강제수용, 구금, 격리, 강제노동, 폭력, 실종 및 사망, 인간사냥, 노예화 등 중대한 인권범죄가 이루어졌다"며 "국가범죄이자 인권침해라 규정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20여 년간 선감학원 진실을 파헤쳐 온 정진각 안산 지역사회연구소장은 지난 21일 오후 기자와 한 통화에서 "선감학원의 강제수용과 감금 등은 국가의 영향력 아래 부랑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인권범죄다. 국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국가자료를 조사 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자 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사는 피해자가 많다. 그래서 아직도 회원이 50명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들이 이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 그들이 당당하게 세상에 나오게 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위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김 회장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에 따라 붙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펀딩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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