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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잔칫날, 감동과 눈물의 날"
[이 사람, 10만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2018년4월27일 (금) 글:김병기 | 편집: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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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김병기

가두에서 흰 갈기 머리칼을 휘날리며 사자처럼 포효했던 '거리의 백발투사'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마른 나뭇가지 같은 양팔에는 주사멍 자국이 퍼렇고, 코에 산소마스크를 걸었지만 눈빛은 그대로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앓아왔던 심장질환이 도져서 수술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병문안차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백기완(86)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백 소장은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금식 탓이기도 했지만, 역사적 순간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 싶었다.

[중환자실에서 남긴 말] 진정한 통일이란...

"할 말이 있어."

오전 10시 면회 시간은 30분.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이 13살 된 백 소장을 무릎에 앉히고 말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기완아, 네가 크면 내 말을 알아들을 거다. 통일이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냐. 일본 제국주의를 비롯한 전 세계 침략자를 한반도뿐만 아니라 이 땅 지구에서 몰아내는 싸움이야. 기완아, 늙은 나에게 '소련의 앞잡이'다, '미국의 앞잡이다'라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끄덕도 안 해. 통일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니라니까. 너희 세대가 오면 통일은 모든 제국주의자와 싸우는 것이라는 말을 동포와 백성들에게 말해다오."

백 소장은 "백범 할아버지가 나에게 이 말을 하면서 우셨어, 위대한 이야기를 남기셨지"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이어 장준하 선생의 이야기를 전했다.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자마자 장준하 선생님이 '씨알의 소리'라는 함석헌 선생의 잡지에 글을 썼어.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통일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통일과 대립되는 동안은 그 실체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이지."

백 소장은 "백범 선생과 장준하 선생은 똑같은 역사적 줄기, 맥락 위에 서서 살다 가셨다"라면서 "남북 실권자들이 만난다고 하는데 잘하는 거지만 통일은 제국주의와 싸우는 양심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말씀, 진정성을 마음에 담고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어려운 병에 걸려서 이렇게 있지만 남쪽 북쪽의 젊은이들이 만난다고 하는데, 그날은 잔칫날이 되어야 해. 감동과 눈물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어. 탁 터놓고 만나야해. 쩨쩨하게 이해득실이나, 여론의 눈치를 볼 게 아니야. 통일보다 더 중요한 여론의 질풍노도가 어디 있어."

백 소장은 "민족문제는 자주적으로 발전하고, 혁기(혁신)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해외 독점자본이 우리의 허리를 뚝 자르고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갈랐다"면서 "이 잘못된 냉전 구조를 구체적으로 뒤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에 대하여] "배짱 갖고 소신대로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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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정택용

백 소장은 자주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 수술을 한 직후에 폐렴이라는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말이 끊기고, 맥락도 엉켰다. 말하다가 졸기도 했다. 심장박동수를 알리는 모니터는 연신 '삑' 소리를 냈다. 의사가 와서 "폐렴 때문에 위험한 상태"라면서 "기침으로 가래를 뱉어내야 하고, 그걸(호흡 운동 기구) 불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 소장은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는 9시간에 걸쳐 5개의 혈관을 심장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기 전인 지난 23일에는 통일문제연구소 활동가 채원희씨에게 전해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요즈음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다가서는 그 태도, 방법 다 환영하고 싶습니다. 생각대로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마디 보태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주체적인 줄기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운동의 그 맥락위에 서있다는 깨우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촛불혁명이 뭐요? 우리 한반도의 참된 평화요, 민주요, 자주통일,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었습니다. 그 맥락위에 서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민중적인 자부심과 민중적인 배짱을 갖고 소신대로 한번 해보시오!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진 않겠지만 그저 병실에서 한마디 남깁니다."

[통일이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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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채원희

백 소장은 그동안 오마이뉴스와 여러 번 인터뷰를 하면서 '통일'이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과거 독재 정권의 모진 고문과 폭력에도 통일문제연구소를 지켜온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백 소장은 지난해 8월 북미 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 전쟁반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백 소장에게 '통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해방이라는 말이 있지. 우리말로 '날래'야. 다시 말해 해방이란 자유야. 사람의 자유, 목숨의 자유, 자연의 자유야. 이런 자유를 온 사회, 온 지구적으로 누리는 게 통일이야. 남쪽과 북쪽이 하나가 되는 것은 일 단계 통일이야. 있는 놈과 없는 놈이 하나가 되면 그건 진짜로는 분열이지.

돈이 우리를 억압하잖아. 돈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매개가 아니라 거꾸로 사람의 주인이 됐어. 우릴 억압하고 있어. 또 돈은 가만있으면 눈처럼 녹아버려. 끊임없이 굴러야 재생산이 되는 구조야. 그 욕구로부터도 해방이 되어야 통일을 할 수 있어. 절집에서 중들은 다 버리자고 하는데 자기 혼자만 버렸지 세상의 온갖 것이 버린 건 아냐. 자기 혼자만 버리지 말고 빼앗은 것도 내 거라는 거짓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그게 참통일이요, 살티(참목숨)의 통일이지."

지난 2016년 7월 백 소장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서 문정현 신부와 댓거리를 할 때에도 통일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

"통일이란 게 뭐야. 죽일 놈들 나쁜 놈들 이놈들 청산하는 것이 통일 아니겠어? 나는 민족통일이란 말은 안 쓰잖아. 민족적인 비극 속에 살았으면서도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 통일이라고 하잖아. 죽일 놈들을 청산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길이지. 통일은 분단 억압착취체제로부터 착취 받은 민중의 해방이야. 그것을 완결하는 게 한반도의 통일이고 전 세계로 완결하는 게 인류의 통일이야. 통일을 이렇게 봐야지."

'통일의 거목'은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거리의 백발투사'는 인공호흡기를 달고서도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붙잡고 외쳤다. 남북 정상들의 만남을 축하하면서도 온전한 통일의 길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백 소장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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