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후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아스날

2004년 이후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아스날 ⓒ 위키피디아


지난 수요일 밤(현지 시각) 아스날은 하위권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3대0으로 격파했다. 지난 세 경기에서 1무 2패를 기록하면서 어느덧 5위까지 내려앉은 아스날로서는 한숨을 돌렸다.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마지노선인 4위 맨체스터 시티와의 간격은 승점 4점 차로 가시권에 있지만 4위권 진입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해 이맘 때 선두 레스터 시티와 2위 토트넘 홋스퍼를 강하게 압박하던 3위 아스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적어도 4위 안에는 진입했던 벵거의 아스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변하지 않는 벵거

   고착화된 벵거의 전술

고착화된 벵거의 전술 ⓒ 위키피디아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의 실패를 딛고 우승을 다짐했던 아스날이지만 또 한 번 실패한 시즌으로 귀결이 되고 있다. 아스날의 반복된 실패에는 감독 아르센 벵거의 일관된 전술에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올 시즌 벵거의 아스날은 주로 4-2-3-1 전형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성공적이었다.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전형적인 공격수인 올리비에 지루 대신 작지만 빠르고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는 알렉시스 산체스를 배치했다. 산체스를 중심으로 전방 압박을 강하게 시도해 쏠쏠한 효과를 봤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산체스의 체력은 여전했지만 외질·월콧 등 다른 2선 자원들의 체력은 압박 축구를 매 경기 구사하기엔 버거웠다. 체력과 기동력보다는 패스와 기술에 장점이 있는 선수들에게 압박 축구는 구현하기 어려운 전술이었다. 벵거식 전방 압박은 금세 상대에게 공략 당했다. 아스날은 12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상대의 압박에 90분 내내 밀리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시점부터 선수들의 체력은 하락세였고 상대팀도 맞춤 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벵거만 그대로였다.

리그 개막 이후 4개월간 선발 라인과 전술에 변화를 주지 않던 벵거는 16·17라운드에서 에버튼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에게 연달아 패배하면서 사실상 우승과 멀어진다. 이 두 경기에서 아스날 선수들은 지쳐있었고 상대의 압박에 쉽게 공을 내줬다. 중원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아스날은 상대에 공격에 휘둘리며 끌려 다니기만 했다.

2연패를 당하고서야 벵거는 변화를 선택한다. 압박보다는 점유율을 높이고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의 빠르고 세밀한 패스로 상대를 궤멸시키는 기존의 전술로의 회귀였다. 변화를 시도한 점은 긍정적이었지만 아스날의 패스 축구는 상대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전술이었다. 아스날의 패스 축구에 맞서 상대팀은 수비적인 전술로 아스날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상대의 밀집수비를 공략하기 위해 후반 막바지에 투입된 장신 지루가 아스날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지만, 지루의 교체 투입을 통한 공격 전술도 금방 상대에게 막혔다.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전술을 들고 나오는 아스날에게 순위 싸움은 험난하기만 하다. 당장 리그 4위를 두고 경쟁하는 리버풀·맨시티·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쟁 팀과의 다섯 경기에서 고작 승점 2점(2무 3패)을 챙기는 데 그친 아스날이다.

야망이 부족한 아스날

아스날의 중심인 산체스와 외질은 아스날이 우승에 대한 의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두 선수 모두 각각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며 '월드클래스' 선수임이 증명된 선수다. 매년 이적시장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아스날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팬들은 두 선수의 영입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난 시즌에는 필드 플레이어 대신 골키퍼 체흐 한 명을 영입하는 데 그친 아스날은 올 시즌에는 한 명의 '월드클래스' 선수도 영입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시즌 레스터 시티의 돌풍의 주역인 제이미 바디는 아스날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고, 기대를 모았던 나폴리의 대형 공격수 곤잘로 이과인의 영입은 유벤투스에게 밀려 실패했다.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인 그라니트 자카를 영입했지만 성공작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

영입만큼이나 선수들도 우승을 향한 야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20라운드 본머스와의 경기가 대표적이다.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성공시킨 지루는 경기를 빠르게 진행시키기 보다 본인의 동점골에 걸맞은 셀러브레이션을 하기에 바빴다. 우승 경쟁을 위해 승점 3점이 간절했던 아스날이었지만 지루와 그를 축하하러 간 가브리엘에게 승리에 대한 열망은 부족해 보였다.

   다음 시즌 산체스는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다음 시즌 산체스는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 위키피디아


실패가 지속되면서 우승에 대한 야망이 있는 선수들은 지쳐가고 있다. 팀이 뚜렷한 정체성을 잃은 채 한 경기 한 경기 소화하기에 급급해지자 주축 선수들은 구단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아스날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산체스의 이적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질도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계속된 실패로 실망감이 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올 시즌에도 어김없이 리그 우승과 멀어진 벵거에게 팬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아스날이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 10년이 넘은 현실을 팬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스날이 벵거와 함께 가면 우승은 어렵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팬들에 직접적이고 거센 사퇴 요구에도 아스날 수뇌부들은 벵거의 재계약을 원하는 눈치다. 물론 벵거를 대신할 능력있는 감독은 전 세계에 몇 없고 벵거만큼 아스날 축구를 이해하는 감독은 전무하다. 또한 벵거는 아스날의 재정적 어려움을 현명한 운영으로 해결해냈고 항상 리그 상위권에 팀을 위치시켰다.

하지만 아스날은 벵거와의 이별의 '골든타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팬들은 이미 벵거를 신뢰하지 않고 선수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어느 시즌보다 더욱 비참하게 탈락했고 경기력도 예전만 못하다. 고구마를 먹듯 답답한 시즌의 연속이다. 야망이 부족한 답답한 클럽에게 사이다 같은 유능한 감독과 '월드클래스' 선수는 그림의 떡이다. 결단이 시기가 늦어질수록 아스날은 성공과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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