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인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네바강이 휘감아 돌고 있는 도시의 강변은 러시아 양식을 한껏 뽐내는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저녁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빛과 함께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인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네바강이 휘감아 돌고 있는 도시의 강변은 러시아 양식을 한껏 뽐내는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저녁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빛과 함께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 이창희


백야였다. 인천의 저녁 하늘을 뒤로하고 도착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밤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8시간을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쪽의 하늘은 아직 태양을 놓치지 않은 채였다. 백야,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했던 동서 냉전시대의 영화얘기가 아니라, 정말 '하얀 밤'이다. 러시아의 첫인상은 네바 강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서쪽의 태양을 품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광경이었다. 드디어 축제의 땅에 도착했다. 영광스러운 '러시아 초행'길은 이제부터 시작인 거다.

러시아 월드컵이 벌써 네 번째 원정 참관인 '월드컵 가족'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풀코보 국제공항에 내렸더니, 입국장은 벌써 목에 팬 아이디를 걸고 서 있는 수많은 축제의 주인공들로 가득하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특이한 것이 월드컵을 참관하는 관람객들의 '증명서'인 팬 아이디를 사전에 발급해서, 각 지역으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물론 '네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라며 여러 번 퇴짜 받아야 했지만, 결국은 사원증을 만들기 위해 찍었던 증명사진으로 최종 통과가 되었다. (휴가를 내고 회사를 떠났음에도, 사원증을 계속 목에 걸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문제의 팬아이디! 계속 사진의 배경이 흰색이 아니다, (흰색으로 만들려고 포토샵을 하면) 포토샵을 너무 많이 했다. 웃었다. 귀가 안 보인다.. 헉헉, 결국은 회사 사원증을 만들려고 찍었던 증명사진을 찾아내어 그걸로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휴가를 나왔는데,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 문제의 팬아이디! 계속 사진의 배경이 흰색이 아니다, (흰색으로 만들려고 포토샵을 하면) 포토샵을 너무 많이 했다. 웃었다. 귀가 안 보인다.. 헉헉, 결국은 회사 사원증을 만들려고 찍었던 증명사진을 찾아내어 그걸로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휴가를 나왔는데,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 이창희


역시, 러시아어를 한 글자도 못 읽는 것이 제일 큰 난관이다. 입국심사를 하는 혼란을 뚫고, 월드컵 팬들을 위해 마련된 게이트를 찾아내야 하는데 안내를 읽을 수가 없다. 그나마, 월드컵 엠블럼과 이번 월드컵의 마스코트인 자비바카의 '그림'을 따라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붙어있는 월드컵 홍보물들이 뭐라고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아마, 환영한다는 얘기일 거야.'

우리가 월드컵의 주인이다! 벌써 월드컵 현장 직관을 네 번째 하고 계시는 '월드컵 가족'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시면서, 저리도 멋진 이벤트를 챙겨오셨어요! 어디서든 눈에 확 들어오는데다가, 이번 축제를 가장 제대로 즐기는 모습, 부러워요!!

▲ 우리가 월드컵의 주인이다! 벌써 월드컵 현장 직관을 네 번째 하고 계시는 '월드컵 가족'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시면서, 저리도 멋진 이벤트를 챙겨오셨어요! 어디서든 눈에 확 들어오는데다가, 이번 축제를 가장 제대로 즐기는 모습, 부러워요!! ⓒ 이창희


입국심사를 기다리면서, 옆에 서 있는 기둥에 장식된, 사람 키만 한 월드컵 엠블럼 위에 쓰인 글씨를 그냥 짐작할 뿐이다. 이번 여행에도 같이 동행하고 있는 월드컵 가족은 어디서나 눈에 띨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족 셋이 뭉쳐 다닐 때는 그야말로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일원이오!'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으니, 나에게도 (중의적으로) 이정표가 되어주기 충분하다. 감사합니다!

비행기는 9시 40분에 도착했지만, 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벗어난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환전을 공항에서 하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을 듣고 공항 환전 창구의 긴 줄에 합류한 시간은 11시였는데, 내 차례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줄은 세상 느긋한 이란 서포터들로 가득 차있다. (6월 15일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로코와 이란의 경기가 열린다.)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는데, 눈앞에 괜히 읽혀버린 청천벽력 같은 공지가 사람을 더 두렵게 만든다.

'우리는 24시간 운영하는 창구입니다만, 11시 30분부터 30분 동안 기술적인 이유로 휴식(Technical break)을 갖습니다.'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제발 11시 반까지 환전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계속 앞에 서 있는 이란 친구들을 (마음으로) 압박했다. 간절한 기도와 주문처럼 내뱉었던 '빨리빨리' 주문이 통했는지, 간신히 기술 휴식 이전의 마지막 2사람에 걸렸다. 아, 다행이다.

경기를 준비하는 팬들로 인산인해!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풀코보국제공항의 티켓카운터입니다. 일찍 문을 닫았을까봐 걱정했는데, 6월 15일의 첫 번쨰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이란과 모로코의 팬들로 인산인해예요. 저도 간신히, 못 받은 티켓을 출력했습니다.

▲ 경기를 준비하는 팬들로 인산인해!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풀코보국제공항의 티켓카운터입니다. 일찍 문을 닫았을까봐 걱정했는데, 6월 15일의 첫 번쨰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이란과 모로코의 팬들로 인산인해예요. 저도 간신히, 못 받은 티켓을 출력했습니다. ⓒ 이창희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이번 월드컵을 위해 미리 구입해 놓은 티켓을 찾을 차례이다. 다행스럽게도 공항의 티켓 수령 창구가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고 있었고, 친절하고 '영어가 능숙하신' 자원봉사자분의 도움을 받아, 상트에서 보게 되는 모로코와 이란 경기를 포함하여 이번 월드컵의 티켓 여섯 장을 모두 받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공항을 벗어날 때까지도, 티켓 수령 창구에도 환전소 앞에도, 통신사 SIM 카드를 사려는 줄도, 갑자기 몰려든 이란과 모로코의 축구팬들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첫날은 '하얀 밤'이 될 모양이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까지 도착했다. 미리 떠난 월드컵 가족들은 1만 원쯤 지불했다는 택시비를 (비슷한 위치임에도) 바가지 때문인지 어리바리 여행객의 불안함을 들켰기 때문인지 4만 원이나 내야 했다. 아니면, 심야의 할증이 붙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더 이상 따져 물을 기력이 없었다. 그래도 호텔은 '내가 예약한 호텔'이 맞았고 밤 1시가 가까워 도착했음에도 방이 취소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출발하기 전에 러시아에 대해 들었던 수많은 '괴담' 중 하나가, 분명히 예약했는데 사라져버린 숙소에 대한 얘기였다.)

백야입니다. 폰탄카 강변의 새벽 1시! 숙소는 네바강의 지류인 폰탄카 강의 옆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물을 사러 수퍼를 찾아가기 위해, 강의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멀리로 아직 푸른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역시, 백야,는 백야 맞네요!

▲ 백야입니다. 폰탄카 강변의 새벽 1시! 숙소는 네바강의 지류인 폰탄카 강의 옆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물을 사러 수퍼를 찾아가기 위해, 강의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멀리로 아직 푸른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역시, 백야,는 백야 맞네요! ⓒ 이창희


상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아니, 공항의 혼돈과 숙소 앞의 좁은 영역을 걸었을 뿐이지만, 차라리 좋은 편이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지는 폰탄카 강 주변의 호텔은 아직도 불야성이었고, 눈앞에 예쁘게 펼쳐진 강의 물결도 극장의 불빛도 초행자의 불안감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2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해가 4시가 되기도 전에 떠버려서, 지금은 6월 15일 아침 8시인데 벌써 한낮의 느낌이다. 밤이 하얀 것에 즐거워했더니, 오늘 하루는 너무도 길어질 모양이다. 오늘은 드디어, 러시아 월드컵 원정의 첫 번째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가야 하는 날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자, 이제 출발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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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월드컵이지! 러시아 월드컵 2018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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