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부는 3심제도를 원칙으로 한다. 지방법원에서 담당하는 1심 판결에 대해 인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등법원에 항소를 할 수 있다. 항소에 의해 내려진 판결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상고 제도를 통해 대법원에 최종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완벽할 수 없고 항소와 상고 제도를 통한 여러 번의 검증으로 억울한 사람이 발생할 확률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겹의 장치를 마련함에도 억울한 피해자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항소와 상고 과정을 거치고도 끝내 원심판결을 뒤집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아예 항소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자유를 향한 높은 갈망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형기를 채우지 않고 교도소를 벗어나는 '탈옥'이다.

90년대 초반까지 탈옥영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영화는 고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프랭크린 J. 샤프너 감독의 1973년작 <빠삐용>이었다. 하지만 <빠삐용>이 등장한 지 20년이 지난 1994년,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에 의해 탈옥 영화의 교과서는 이 작품으로 교체됐다. 바로 스티븐 킹의 중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자 탈옥 영화의 새로운 교과서로 평가 받는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쇼생크 탈출>은 199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다.

<쇼생크 탈출>은 199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다. ⓒ 더픽쳐스

 
악역부터 대통령, 신까지 연기하는 배우

로버트 드니로나 더스틴 호프먼, 톰 행크스처럼 할리우드에서 소위 '국민 배우'로 불리는 명배우들은 많지만 인종을 떠나서 모건 프리먼처럼 다정다감하면서도 진중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흔히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배우는 대중들에게 특정한 이미지가 고정돼 있으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모건 프리먼은 친근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여느 배우 못지 않은 넓은 연기폭을 자랑한다. 

1960년대부터 배우로 활약한 모건 프리먼은 1989년 <드라이빙 미스데이지>를 통해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50세가 넘은 늦은 나이에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프리먼은 이후 <로빈 훗>, <파워 오브 원>, <용서 받지 못한 자>, <아웃 브레이크>, <세븐>, <딥 임팩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믿음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전체의 내레이션을 맡은 레드 역을 선보인 <쇼생크 탈출>이 개봉한 시기는 1994년이었다.

사실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에서 레드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모건 프리먼을 캐스팅하며 흑인으로 설정이 변했다. 사실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는 주인공 앤디의 행적을 소개하는 해설 역할었지만 모건 프리먼은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팀 로빈스를 제치고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모건 프리먼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컸다는 뜻이다.

<딥 임팩트>에서 미국 대통령을 연기했던 모건 프리먼은 2003년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무려 신을 연기했다(주인공이 스티브 카렐로 바뀐 속편 <에반 올마이티>에서도 신 역은 여전히 모건 프리먼이었다). 그리고 2005년 모건 프리먼은 가난한 여성복서의 삶을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60대 후반의 나이에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남우조연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을 비롯해여러 영화에서 대중들과 호흡하던 모건 프리먼은 지난 2018년 성추행 혐의로 고발 당하며 배우인생에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모건 프리먼은 "내 의도와 달리 불쾌했던 모든 이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히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결국 이는 큰 문제 없이 일단락됐다. 모건 프리먼은 올해도 <킬러의 보디가드2>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유를 향한 희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쇼생크 탈출>은 북미에서 2800만 달러 흥행에 그쳤지만 국내에서는 서울에서만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쇼생크 탈출>은 북미에서 2800만 달러 흥행에 그쳤지만 국내에서는 서울에서만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 더픽쳐스

 
요즘엔 친구와 동반입대도 할 수 있지만 군대에 가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을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더도 말고 일주일만 함께 고생하면 훈련병들 사이에는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군대에서는 이를 '전우애'라는 그럴 듯한 말로 미화시킨다). 군대와는 다르지만 교도소의 죄수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동질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쇼생크 탈출>에서는 이들이 동질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들어온 앤디(팀 로빈스 분)는 보그스(마크 롤스톤 분)를 비롯한 동료들의 텃세에 고생한다. 그러던 중 옥상 작업에서 우연히 간수장 해들리(클랜시 브라운 분)가 동생의 유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편법을 통한 세금 면제 방법을 알려 준다. 그리고 앤디는 동료들에게 교도소 옥상에서 맥주 3병씩 마시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동료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은 죄의 크기에 상관없이 대부분 자유를 갈망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밖에서 살았던 날보다 교도소에서 살았던 날이 더 많았던 교도소 도서관 사서 브룩스(고 제임스 휘트모어 분)는 50년 복역 끝에 가석방돼 자유를 얻지만 바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워낙 길었던 수감 생활로 인해 교도소의 삶에 완전히 길들여진 것이다. 결국 브룩스는 숙소에서 목을 매달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한국에서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쇼생크 탈출>의 원제는 <The Shawshank Redemption>이다. 'Redemption'은 기독교적인 의미로 '속죄'와 '구원'을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탈옥'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제목을 바꾸지 않았으면 흥행이 힘들었겠지만). 실제 영화에서도 탈옥 장면은 후반 20분 정도에 불과하고 런닝타임의 대부분은 쇼생크 교도소 내에서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 <쇼생크 탈출>이 앤디의 탈옥 장면을 허술하게 묘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앤디는 여성배우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 뒤에서 20년 동안 조각용 쇠망치로 구멍을 뚫는 집요함을 선보인 끝에 탈옥에 성공했다. 교도소를 탈출한 앤디가 상의를 벗고 빗물을 마시며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은 <쇼생크 탈출>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실제로 이 장면은 2002년 한국의 코미디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차승원에 의해 오마주(?)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네티즌 평점 9.6, 네이버 관객 평점 9.38이 말해 주듯 <쇼생크 탈출>은 90년대 이후 탈옥을 소재로 한 명작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21년 만에 국내에서 재개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명성에 비해 <쇼생크 탈출>은 상복이 없었던 대표적인 영화로 꼽힌다. 실제로 <쇼생크 탈출>은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포레스트 검프>에 밀려 단 한 개의 트로피도 얻지 못했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교도소장과 구속되는 간수장
 
 쇼생크 교도소의 죄수들은 앤디 덕분에 시원한 맥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쇼생크 교도소의 죄수들은 앤디 덕분에 시원한 맥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 더픽쳐스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웬트워스 밀러 분)는 건축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자신의 능력을 살려 폭스리버 교도소장의 건축물 모형 제작에 도움을 준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금과 재테크에 관한 지식들로 교도소 내 간부들의 세무사를 자청했다. 그리고 앤디의 능력을 가장 가까이서 활용한 인물이 바로 쇼생크 교도소의 노튼 소장이었다.

노튼 소장은 겉으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알고 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죄수들을 탄압하고 앤디를 이용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부패한 인간이다. 앤디의 무죄 사실을 증언하겠다는 토미(길 벨로우스 분)를 살해할 정도로 악독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탈옥한 앤디에 의해 그 동안 쌓아둔 불법 자금을 모두 빼앗기고 비리까지 세상에 알려진다. 노튼 소장은 <패치 아담스>, <퍼펙트 스톰>, <아르고> 등에 출연했던 배우 밥 건튼이 연기했다.

쇼생크 교도소 내에서 처음으로 앤디의 도움을 받은 인물은 간수장 해들리였다. 큰 덩치와 강한 카리스마로 죄수들에게 악명이 높던 해들리는 앤디에게 세금 없이 동생의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들은 후 앤디의 뒤를 봐주게 된다. 앤디를 괴롭히던 보그스를 혼내준 인물도 해들리였다. 하지만 노튼 소장의 지시로 토미를 살해하고 끝내 구속 당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에 의하면 해들리는 끌려 가면서 여자아이처럼 흐느꼈다고 한다.

해들리 간수장 역의 클랜시 브라운은 192cm의 장신으로 <하이랜더>, <스타쉽 트루퍼스>,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 등 주로 스케일이 큰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배우다. 하지만 의외로 <레고 베트맨> <인어공주2>, <스펜타큘러 스파이더맨>, <스폰지밥3D>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던 반전경력을 가진 배우이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쇼생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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