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 넷플릭스

 
바야흐로 지휘자 전성시대(?)가 영화, 드라마, OTT 업계에 도래했다. 여성 지휘자를 소재로 삼은 영화 <타르>, 지난 여름 개봉된 프랑스 영화 <마에스트로>, 곧 방영될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등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이야기로 채워진 작품들이 등장했고 선보일 예정이다. 6일 CGV 단독 개봉, 20일 OTT를 통해 소개되는 넷플릭스 신작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미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했던 지휘자 겸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을 일생을 담고 있다. 영화 <워터 프론트>의 음악,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 장본인이면서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빈 필하모닉과 런던 필 등 세계 유수의 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춘 번스타인은 20세기 미국 클래식계의 스타 음악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남긴 업적을 고려한다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음악가 번스타인의 성공기를 그렸을 법한 첫 인상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뚜껑을 연 작품의 내용은 당초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함 많고 손가락질 받아도 마땅한 '결점 많은 인간' 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1922~1978)의 복잡한 결혼 생활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연 겸 감독, 각본 작업까지 겸한 <아메리칸 스나이퍼>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는 왜 이와 같은 이야기 설계를 택한 것일까?

패기 넘치던 청년 음악인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 넷플릭스

 
영화의 첫 장면은 노년의 지휘자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 분)의 방송 인터뷰로 채워졌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하면서 이내 화면은 20대 패기 넘치던 청년 음악인의 이야기가 흑백 영상을 통해 그려진다. 1943년 당시 뉴욕 필 상임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의 병환으로 인해 공연 당일 급하게 리허설도 없이 대타로 나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이를 계기로 번스타인은 주목 받는 지휘자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 작곡에도 재능을 보이면서 뮤지컬 작업에도 손을 대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친 그의 앞에 한 여성이 등장한다. 여동생 셜리의 소개로 칠레 이민자 2세이자 신인 배우였던 펠리시아(캐리 멀리건 분)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이내 결혼까지 도달했다. 

남편은 음악가로, 아내는 TV와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비는 배우로 승승장구하며 유명인 가족으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지만 번스타인에겐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 와중에도 번스타인은 수시로 남성들과 외도에 빠졌고 자연스레 부부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음악인 대신 '부부' 이야기에 더 큰 비중​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 넷플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리시아는 모든 것을 인내하고 꿋꿋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총망 받던 배우에서 자녀와 남편 뒤치다꺼리에 모든 것을 헌신한 펠리시아의 노력에도 아랑곳 없이 번스타인은 여전히 남성들과의 추문에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 일이 번스타인과 펠리시아에게 찾아온다. 

​지휘자, 작곡가라는 직업 특성상 수시로 각종 무대와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전달하는 장엄한 분위기의 클래식 음악이 2시간 넘게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채우지만 영화는 번스타인의 음악적 성취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존경 받은 인물이었지만 뒤로는 남성과의 불륜에 심취한 번스타인의 이중성, 그리고 아내 팰리시아의 이야기에 더 큰 비중을 기울인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사실상 펠리시아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만큼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이들 부부의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구성은 '클래식 음악 영화'만을 기대하고 휴대폰 속 재생 버튼을 클릭했을 구독자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법한 위험한 시도처럼 보여진다. 브래들리 쿠퍼 감독은 뻔할 수도 있는 유명인 이야기의 전개 대신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거장의 뒷이야기를 통해 이것 역시 인생의 한 장면임을 일깨워준다. 

캐리 멀리건의 강력한 존재감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 넷플릭스

 
​번스타인의 사생활에 크게 중심을 뒀지만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음악 영화로서의 미덕을 모조리 배제하진 않았다. 뮤지컬 시퀀스의 차용과 오케스트라 협연 장면의 활용을 통해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영상 속으로 흡입시킨다. 생전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워터 프론트> <온 더 타운> 등의 작업물 뿐만 아니라 말러, 베토벤 등 그 시절 자주 다뤘던 악곡들을 한자리에 소환하는 미덕도 발휘한다. 

20대 청년부터 칠순의 노인까지 다양한 시대를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는 탁월한 분장의 도움을 빌어 실제 번스타인의 외모, 억양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다. 앞서 소개한 연출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차별화를 도모했다. 극중 시대에 맞춰 흑백, 35mm와 4:3 TV 컬러 화면 등 수시로 변화하는 스크린 비율로 그 당시를 좀 더 사실감 넘치게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녹여냈다. ​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펠리시아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의 강력한 존재감이다. 극의 중반 이후에선 주인공 번스타인을 압도할 만큼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펼쳐 <언 에듀케이션> <위대한 개츠비> 등 기존 대표작을 뛰어 넘는 열연을 펼친다. 영상 및 빼어난 음악과 더불어 OTT 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감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마에스트로번스타인 레너드번스타인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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