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4년 넘게 계류 중이던 `후지코시 강제 동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승소했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있기까지 일본의 시민단체인 '후쿠리쿠 연락회'가 물심양면으로 피해자들을 도왔다. 

지난 9일 < YTN 탐사보고서 기록 >에서는 '나카가와와 다카하시' 편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은 청춘을 바쳐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도와온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상암 YTN 사옥에서 해당 회차를 제작한 시철우 YTN 영상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시 영상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YTN 탐사보고서 기록>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YTN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이번 방송이 기나긴 일제 강제 동원 피해 역사를 잘 정리한 것인지, 일본에서 피해자를 도와온 분들의 진심이 시청자 여러분께 잘 전달이 되었는지 반추해보고 있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 등 반인륜적 범죄는 워낙 긴 시간이 흐른 역사이고 자료도 방대해서 제작 기간 내내 무엇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 고민의 깊이가 프로그램에 잘 반영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중입니다."

- 강제 동원 피해자들 돕는 일본인들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일제가 어린 소녀를 일본으로 강제로 끌고 가 군수 공장에서 강제 노동시켰던 문제는 1990년대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 상대로 소송에 나선 사람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기나긴 법정 투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투쟁에 나섰던 피해자와 유족의 역사를 알게 됐고, 기록으로 남기다 보니 일본에서 한국인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었던 일본인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고요.

작년 3월엔 우리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는데, 많은 사람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강제 동원의 역사 현장도 소홀히 관리되고 있었고, 강제 동원 피해자의 80년 가까운 투쟁도 잊히고 있는 상태여서 우리 사회에 드리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를 돕고 있는 분들의 숭고한 진심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접근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2월 24일 '나고야 미쓰비시 소송을 지원하는 회'에서 제작한 연극 '봉선화' 광주 공연이 확정됐고, 1월 25일엔 '후지코시 강제 동원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 선고가 잡히면서 '기록'으로 남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제작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 프롤로그에서 1월 25일 있었던 후지코시 강제 동원 대법원 전후 모습을 보여줬는데 의도가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도 '후지코시 강제 동원 소송'을 지원해온 일본 '호쿠리쿠 연락회' 회원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제 동원 피해자를 일일이 만나며 살뜰히 챙겨왔습니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카가와 미유키 호쿠리쿠 연락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3월에도 한국을 찾아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만나 지원 활동을 이어갔고, 우리 시민단체와 협력해 대법원 선고까지 이끈 장본인입니다. 나카가와가 김정주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2003년 이후 계속된 이들의 활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나카가와와 김정주 할머니의 대화엔 20년 넘는 소송 기간의 애환이 담겨 있었기에 프롤로그로 선택했습니다. 

대법원 선고 직전 준비 과정, 고인이 된 피해자 어르신의 영정을 소중히 챙기는 모습 등에서 이분들의 진심을 시청자분들이 느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대법원이 후지코시 강제 동원 피해자 어르신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아직 직접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나카가와의 생각도 반영한 것입니다."

-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자신의 나라가 강제 동원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분개했다고 해요. 그래서 스스로 매우 부끄러웠고 나부터 반성하지 않으면 일본이라는 나라에 변화는 없다고 생각해서 피해자 지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철우 YTN 영상기자

시철우 YTN 영상기자 ⓒ 이영광

 
- (방송에) 나카가와 미유키씨가 나와요. 30년 동안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도왔다고 하던데. 
"나카가와 미유키 '호쿠리쿠 연락회' 사무국장은 도야마 대학교 학생이던 1992년 '후지코시 1차 소송' 때부터 강제 동원 피해자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회'라는 학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부터 반전 평화 운동에 나섰는데, 도야마 지방재판소에서 증언에 나섰던 고(故) 최복년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일제 강제 동원 문제 해결에 나섰다고 합니다. 나카가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피해자의 삶이 어떤지 살피기도 하고 일본에서 벌어진 재판에 참석한 피해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가족처럼 어르신을 챙겨왔던 사람입니다."

- <후지코시 20년사>에 강제 동원 사실이 적혀 있는 거잖아요. 후지코시란 기업은 강제 동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걸까요?
"후지코시가 1953년 펴낸 <후지코시 20년사>에는 후지코시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일하는지 꼼꼼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너무 꼼꼼하다 보니 부끄러운 역사도 자랑스럽게 기록을 해놓았더라고요. 게다가 거짓말까지 보태서. 후지코시는 1944년 일제로부터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으로 지정됐습니다. 한국에서 어린 소녀를 강제로 끌고 와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임금을 주지 않으며 강제 노동을 시켰는데,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한 강제 동원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1089명의 어린 소녀를 강제 동원한 건데, 후지코시는 이를 '여성에게 직업 개방'으로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몇 명을 데려왔는지 상세하게 기록한 도표 아래, '후지코시는 일찍부터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왔다'라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의식의 반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인도적 범죄를 여성 일자리 창출로 포장한 후지코시는 역시 일본 군국주의의 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후지코시는 어떤 기업인가요?
"후지코시는 1920년대 일본 도야마에서 설립된 공구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공업용 톱과 같은 공구가 후지코시 한국 법인을 통해 수입됐었는데, 현재 한국 법인은 철수한 상황입니다. 후지코시는 방송에도 나온 것처럼 후지코시라는 이름보다 '나치'라는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나치'는 1928년 진수된 일본 순양함 이름입니다. 후지코시는 일본에서 '욱일 문양에 군함을 넣은 마크가 새겨진 톱' 하면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잘 알려진 중견기업으로 아직도 '나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지코시 강제 동원 소송을 이끌고 있는 '호쿠리쿠 연락회' 회원들은 '나치'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나치'를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후지코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전쟁 광풍으로 몰고 갔던 쇼와 일왕의 군국주의를 아직도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 나치를 언급하셨는데 우리가 아는 나치인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의 '나치'와 공교롭게 발음이 같을 뿐입니다. 후지코시가 상표로 사용하고 있는 '나치'는 1928년도에 진수된 일본 순양함 이름입니다."

- 후쿠리쿠 연락회란 단체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호쿠리쿠 연락회는 1992년 한국인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내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이자 태평양전쟁한국인희생자유족회를 이끌었던 고(故) 김경석 회장이 후지코시 강제 동원 문제를 알고 도야마를 찾은 이후 도야마 인근에 살고 있던 일본인과 재일한국인이 모여 조직했습니다. 무라야마 가즈히로 고문이 중심 역할을 했고,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을 비롯한 일본인 회원이 주축이 되어 지금껏 한국인 피해자를 돕고 있습니다."

- 일본인들이 강제 동원 내용을 담은 연극 '봉선화'를 선보였는데요. 
"연극 '봉선화'는 2003년과 2022년 단 두 차례 일본 시민에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강제 동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이 '나카가와와 다카하시' 편에 나오는 다카하시 마코토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원들입니다. 일본에서 제기된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 동원 피해배상 소송이 한창이던 2003년,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이 사죄와 배상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일본 시민에게 이 사건을 소상히 알리고 지지를 얻기 위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 광주광역시에서 '봉선화' 연극을 했는데요.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상상 이상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취재진의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하지만 열정적인 무대를 바라 본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날 느낀 뭉클한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나카 도시오 연출이 '이 연극은 일본에서 일본인이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공부하고 주변 일본인들에게 사실을 열심히 알리고 있다는 것을 광주 시민에게 보고'하는 연극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광주에서 선보인 이 연극은 단순히 '보고' 수준이 아닌, 눈앞에 실재하는 역사였습니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 문제를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로 눈앞에서 생생히 그리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몰입도가 정말 높았던 것 같습니다."

- '강제 동원 피해자를 돕는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물으셨던데.
"제작진의 진심을 담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역사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 정의를 다시 세우는 데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활발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문제를 지나간 날의 일로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면 안 됩니다. 실체적 진실을 담대하게 마주하고 부끄러운 것은 제대로 알고 고쳐야 하고, 반성할 것은 통렬하게 반성하며 지키고 계승할 것은 소중히 가꿔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알아야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방송이 시청자 여러분께 이런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드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록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고 기록한 결과물은 그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중요한 역할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탐사 보고서 기록>도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새로운 기록을 써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다음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철우 YTN탐사보고서기록 강제동원 후지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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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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