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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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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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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

나라 망한 무렵에 태어나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억울하여 용문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나라 되찾는 3ㆍ1혁명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등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제와 싸우면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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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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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5화2008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운암 김성숙 평전 55회] 부록

    정부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운암 김성숙 선생을 선정하고 추모하였다.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다음은 정부가 기술한 자료이다.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 법 명 : 태...
    19.09.23 16:45 ㅣ 김삼웅(solwar)
  • 54화71살로 서거, 뒤늦게 건국공로훈장 추서

    [운암 김성숙 평전 54회] 71살의 짧지않은 생애이지만 고난과 형극의 삶이었다

    고난의 생애였다.19살에 출가한 이래 어느 한 때라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남들처럼 승려생활로 시종하면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었고, 중국에 가서도 명문대학에 자리잡고 눌러앉을 수도 있었다. 중국의 엘리트 여성과 결혼하...
    19.09.22 13:04 ㅣ 김삼웅(solwar)
  • 53화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한 이유

    [운암 김성숙 평전 53회] 오로지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자

    김성숙은 '일기'에도 썼듯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생애 처음으로 '내집'을 마련하여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집이라야 성동구 구이동의 통사당 재정부장 구익균의 집마당 한 모퉁이에 건평 11평의 방 두 칸짜리였다. 동지ㆍ후...
    19.09.21 16:53 ㅣ 김삼웅(solwar)
  • 52화우리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나라

    [운암 김성숙 평전 52회] "아직은 논공행상할 때가 아니다"

    1964년 6월 1일5ㆍ16부터 금일까지 꼭 16일간은 천식이 극도로 발작하여 그야말로 사선에서 헤매고 있었으므로 일기도 쓸 수 없었다. 4, 5일전 다행히 아미노피린 혈관주사를 맞고 특효를 보게 되어 지금은 천식이 떨어진 모양인데 ...
    19.09.20 15:21 ㅣ 김삼웅(solwar)
  • 51화50년 동안 안정된 생활 못하고 악전고투의 생애 살아

    [운암 김성숙 평전 51회] "나의 유일한 명분은 민족국가의 독립과 민주체제의 확립과 행복된 사회의 건설이었다"

    1964년 1월 27일 월요일따스하고 맑음.항산의 요구가 있어 약력을 정리하였는데 나의 70평생의 행로란 실로 고난의 생활이었고 형극의 행정(行程)이었다.나는 유소년 시에 중시하(重侍下)에서 자라날 때가 가장 행복했었고 19...
    19.09.19 15:44 ㅣ 김삼웅(solwar)
  • 50화쌀은 되박으로 사다먹은 처지에도 불구하고

    [운암 김성숙 평전 50회] "내가 자진 표창을 청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1964년 1월 2일 목요일비교적 따스하고 맑음.피우정 일을 논의하기 위해 조신(早晨)에 정릉으로 배도원 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장건상 선생님 댁에 들려 신년인사를 하였다. 장 선생은 신년에 82 고령이지만 아직도 정정하...
    19.09.18 15:26 ㅣ 김삼웅(solwar)
  • 49화'혁명일기'에 어떤 사연 담겼나

    [운암 김성숙 평전 49회] 1964년 1월 초하룻날부터 1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어떤 계기였는지, 김성숙은 1964년 1월 초하룻날부터 1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독립운동가 특히 의열단 계열에서는 여간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자칫 일제나 밀정들의 손에 들어가 동지들의 연루를 막기 위해서였...
    19.09.17 17:35 ㅣ 김삼웅(solwar)
  • 48화'정치활동정화법'에 묶이고 보수야당 참여

    [운암 김성숙 평전 48회] 김성숙은 극단보다는 통합과 연대를 중시해 실천해 왔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집단은 1962년 3월 16일 '정치활동정화법'(정정법)이란 것을 제정했다. 구정치인 및 군내 반대파의 손발을 묶기 위해 마련한 악법이었다.이 조치로 무려 4,374명의 정치활동이 봉쇄되었다. 명단에 오...
    19.09.16 16:47 ㅣ 김삼웅(solwar)
  • 47화5ㆍ16 쿠데타로 또 투옥된 김성숙

    [운암 김성숙 평전 47회] 1961년 4월에 결성된 '백범시해진상규명위'는 곧 불어닥친 5ㆍ16쿠데타로 활동을 접어야 했다

    김성숙은 4월혁명 후 정치활동만 한 것이 아니었다. 1949년 6월 이승만 세력에 의해 암살된 백범 김구선생 시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백범시해 진상규명위)에 참여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적폐 청산작업에도 발벗고 나섰다. 1961년 4월에 결...
    19.09.15 15:18 ㅣ 김삼웅(solwar)
  • 46화'민자통' 의장단으로 민족통일운동 이끌어

    [운암 김성숙 평전 46회] 4월혁명기에 혁신계를 이끌며 다시 한번 민족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세평은 4월혁명 후 진보혁신계의 분열상에서 비롯되었다. 고질적인 파벌현상이 재발한 것이다.혁신계의 분열상은 당장 김성숙에게도 피해로 닥쳤다. 사회대중당은 원내정당을 지향하...
    19.09.14 18:51 ㅣ 김삼웅(solwar)
  • 45화사회대중당의 혁신적인 정강정책 입안에 관여해

    [운암 김성숙 평전 45회] "지금 우리의 민주혁명은 종결된 것이 아니고 시작된 것이다"

    김성숙은 정치위원으로 선임되어 사회대중당 창당에 참여하는 한편 '창당선언문'과 '정강정책' 등의 입안에 능력을 발휘하였다. 1. 통일 및 외교1)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를 통하여 평화적ㆍ민주적 국토통일을 달성.2) ...
    19.09.13 19:01 ㅣ 김삼웅(solwar)
  • 44화4월혁명 맞아 사회대중당에 적극 참여

    [운암 김성숙 평전 44회] 사회대중당 '창당선언문'과 '정강정책' 등의 입안에 능력을 발휘해

    이승만의 권력욕망 앞에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는 허상에 불과했다.80이 넘은 고령인데도 그의 권력욕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아첨배들로 채워진 모든 국가기관은 사기업체로 전락되었다. 그 중심에 경찰이 자리잡았다. 박정희가 중앙...
    19.09.12 16:34 ㅣ 김삼웅(solwar)
  • 43화중국에서 아들 셋이 찾아왔으나 이승만에 의해 추방 당해

    [운암 김성숙 평전 43회] 김성숙이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의 외교행각을 비판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인식되었다

    감옥에서 환갑을 보낸 김성숙은 6개월여 만에 옥문을 나섰으나 몸과 맘이 말이 아니었다.진보정치의 리더였던 조봉암은 처형당하고 함께 혁신정치의 길을 추구했던 많은 동지들이 수감되었다. 그나마 자신은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
    19.09.11 16:01 ㅣ 김삼웅(solwar)
  • 42화날조된 사건으로 6개월 투옥, 무죄판결

    [운암 김성숙 평전 42회] 혁신정치를 구현하려던 활동이 감옥행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운명

    진보당추진위에서 이탈한 서상일과 김성숙ㆍ박기출ㆍ이동화ㆍ고정훈ㆍ신숙 등은 1957년 10월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김성숙은 정치위원으로 피선되고, 혁신세력 대동통일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통합운동에 나섰다. 진보당과 민주혁...
    19.09.10 15:51 ㅣ 김삼웅(solwar)
  • 41화진보세력의 분열 속에 민주혁신당 창당에 함께하다

    [운암 김성숙 평전 41회] 김성숙은 그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진보당 본류와는 길을 달리하고, 민주혁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이승만정권 시대 진보ㆍ혁신계에 몸담은 독립운동가들은 일종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보수야당에 참여한 사람들은 덜 했으나 진보ㆍ혁신쪽은 심한 탄압으로 목숨을 잃거나 극심한 곤경을 겪어야 했다. ...
    19.09.09 15:20 ㅣ 김삼웅(solwar)
  • 40화발췌개헌에 이어 사사오입 개헌

    [운암 김성숙 평전 40회] 이승만의 권력욕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승만의 권력욕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았기에 그래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킬 줄 기대했던 것이 허망한 꿈이었다.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는 헌법이나 제도는 한낱 장식물로 취급할 뿐이었다. 불과 2...
    19.09.08 13:00 ㅣ 김삼웅(solwar)
  • 39화이승만 국가안보 망치고 권력욕만

    [운암 김성숙 평전 39회] 발췌개헌은 순전히 이승만의 권력연장을 위한 사실상 친위쿠데타였다

    '국가안보'를 1차적인 책무로 하는 대통령 이승만은 그 책무를 소홀히 했다.여기저기에서 북한군의 남침 조짐이 있었음에도 엉터리 국방장관의 "각하의 명령만 있으면 북진하여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는 따위의...
    19.09.07 15:31 ㅣ 김삼웅(solwar)
  • 38화제2대 총선 출마 낙선, 부산에서 투옥

    [운암 김성숙 평전 38회] 일제, 미군정에 이어 3번째 옥고였다

    미군정 3년이 끝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미국의 단정정책에 재빨리 편승한 이승만이 권력을 장악했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지 23년 만에 해방된 나라의 최고통치자로 뽑혔다. 그의 집권은 정통 독립운동가...
    19.09.06 17:52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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