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3 11:33최종 업데이트 18.10.23 11:41
흰 돌 검은 돌이 겨루듯이 그녀는 술판 위에서 세상과 유쾌하게 겨루고 있다. 그곳에서 두고 싶은 수를 두고,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다.

그녀는 2017년 9월 서울 신림동에 있는 오래된 전통주점을 인수하기로 했다. 일생일대의 좋은 기회일 수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일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인수를 앞두고 포천 산정호수 둘레길을 돌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기로 한 날 억수같이 비가 왔다. 그래도 집을 나섰다. 주점을 운영하는 일은 더 험난할 텐데 폭우 정도를 못 견뎌서야 내가 뭘 할까 싶었다. 산정호수 둘레로 놓인 나무다리 위로 물이 넘실거렸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이 길을 가야 다음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정호수를 내려오는 길에 포천의 작은 양조장 '술빚는 전가네'를 찾아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묵직하고 달디단 동정춘이라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 폭우가 쏟아지는 중에도 그곳을 갔다 왔단 말이죠, 그런 열정이라면 양조장을 하셔야죠"라는 말을 전 대표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돌아와 주점을 계약하고 '술빚는 전가네'보다 더 작은 양조장을 만들었다.

2평 정도 되는 초미니 양조장

2017년 11월에 주점 인테리어를 시작해서, 2018년 2월에 소규모 양조 면허가 나왔다. 양조장 면허는 세무서와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를 차례대로 거쳐 2달 반 만에 나왔다. 그녀는 늦게 나왔다고 여겼는데, 남들은 빨리 나온 거라며 신통해했다.

그녀는 한번 마음먹으면 파고 들어간다. 바둑으로 치면 남들이 보이지 않는 수라 하더라도, 확신을 가지고 간다. 스스로 확신할 때라야 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둑판의 집처럼 두 눈을 뜬 자그마한 양조장 주점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녀가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 주점 '솟대'를 찾아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사거리에서 서울대 방향으로 가니 길가 3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40평 주점 공간에 4인용 탁자가 12개가 있고, 작은 의자를 놓으면 70명까지도 앉을 수 있었다.

이 공간에 가로 2m 세로 3.3m로 2평 정도 되는 초미니 양조장이 있었다. 2016년에 소규모주류제조법이 만들어지면서 발효통 1000ℓ를 갖추면 양조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양조 공간에는 고두밥 찜기, 쌀가루 내는 롤러, 작업 싱크대, 온도 조절이 가능한 100ℓ 발효통 2개, 알코올 측정기, 유량계 그리고 제성통과 여분의 발효통들이 가득 차 있었다.
 

솟대 양조장의 발효실 모습 ⓒ 허시명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 작은 공간에 양조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세상이 변한 것이고, 그 변화된 틈 속으로 그녀가 들어간 것이다. 그녀는 결혼하고 연년생 딸 둘을 낳아 키운 충실한 주부였다.

애들이 세상 틀에 소속되는 것을 유별나게 싫어해서 유치원도 안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산이나 집주변의 명소를 찾아다녔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무언가 일을 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겠다 싶어, 전기기사자격증을 따서 10년 정도 사무 일을 봤다. 그리고 지난해에 그녀가 좋아하는 술을 다루기 위해서 사무 일을 정리하고, 양조장 주점을 차리게 되었다.

그녀가 막걸리를 빚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막걸리 다이어트를 하면서부터였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 막걸리를 구하는데 인공감미료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인공감미료를 싫어해서 된장도 손수 담그고, 사찰 음식도 배웠다. 인공감미료가 없는 막걸리를 찾다가, 막걸리를 직접 빚기로 작정했다. 막걸리학교를 시작으로 술 교육기관을 1년 넘게 다니며 술을 배웠다.

그녀는 막걸리 다이어트법으로 살을 뺐다. 아침은 식구들과 가볍게 식사를 한다. 탄수화물섭취를 줄이기 위하여, 오후 2~3시 약간 허기를 느낄 즈음에 점심 한 끼를 막걸리 한 잔으로 대신한다. 300㎖ 정도 막걸리 한 잔 속에는 150~200㎉가 들어 있다. 성인 여성 1일 권장 칼로리 양이 1900㎉이니 1/10 수준이다. 막걸리를 마시면 포만감이 생겨서 굳이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도 허기지지 않는다. 안주도 있어서 오이와 과일을 먹는다.

굶으면서 다이어트를 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나면 스트레스를 받고, 충동적으로 먹을 것을 찾게 된다. 그런데 막걸리 다이어트를 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몸 기운이 넘칠 때 마시는 낮술은 양(陽)과 양(陽)이 만나서인지, 취기가 빨리 오르고 생각보다 많이 마셔지지 않는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가볍게 하고, 밤으로는 결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 6㎏을 줄였다.
 

솟대 양조장 주점에서 생산하는 술들 ⓒ 허시명

 
그녀가 양조장 주점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또 있다. 여성이 주점을 운영하면 거칠다고 여기거나 술집 여자쯤으로 여기는 편견이 존재한다. 남자 손님이 많고 취객들을 상대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내서 손님을 상대하고 싶었다.

실제 직접 만든 술을 손님에게 추천하고 설명하니,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전문가의 느낌을 줄 수 있어 좋았다. 뭐랄까? 손님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술집 여자라는 애매한 캐릭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사연을 말하면 젊은 여성들도 그녀를 부러워하고 양조장 주점을 차리고 싶어 한다.

그녀는 솟대 막걸리 8도, 첫사랑 13도, 솟대 원주 15도, 약주 춘향 13도를 만들고 있다. 이중에서 첫사랑 13도는 손님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양조 면허가 나온 2월에 옛 문헌에 전해오는 호산춘 방식으로 실험주를 빚어 손님들에게 시음을 시켜드렸다. 손님들이 마시더니 좋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좋은가요? 물으니 맛이 특별하고 향이 너무 좋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라고 물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했다. 옛날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라고 다시 물으니, 첫사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술이 향기롭고 달콤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가 보다. 우연히도 손님들에게 몇 차례 더 첫사랑이라는 답을 듣고서, 그녀는 이 술 이름을 첫사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3층 주점, 장사가 되겠냐고? 그보다 좋은 것 
 

솟대 양조장 주점을 창업한 조윤서씨 ⓒ 허시명

 
솟대 양조장 주점은 3층에 있다. 비록 신림동 번화한 상권이라고는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녀가 이 주점을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에, 3층이어서 반대하는 이가 많았다. 지나가는 손님이 우연히 들어오는 일은 없다. 서울의 대중적인 술인 장수막걸리나 참이슬을 찾는 손님은 솟대 계단을 올라오지 않는다.

예전 단골들은 주점 색깔이 달라지자 2개월 만에 떨어졌다. 6개월이 지나자 주요 손님이 30대 직장 여성들로 바뀌었다. 이들은 요란하지 않게 마음 편하게, 많이는 아니지만 특별한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 금요일이면 12개 탁자 중에서 10개는 여성들이 차지하고, 음악을 크게 틀지 않아도 될 만큼 조용조용하다.

남자들 두셋이 찾아와 술을 마시면, 잠시 대화가 끊겨 침묵이 도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손님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첫사랑 술을 권하고, 첫사랑 이름이 생겨난 사연을 들려준다. 그러면 옆 탁자에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녀는 기꺼이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는 거잖아요" 하면서, 첫사랑 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밝으면서 가볍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딱딱하지 않다. 그녀에게 술은 자신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친구이자 동반자다. 솟대는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새벽 2시에 일이 끝난다.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 운동하고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잠시 쪽잠을 잤다가 오전 11시에 직접 장을 보고, 오후 2시면 주점으로 출근한다. 오늘은 어떤 손님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손님이 이 술맛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가보고 싶어 이 길에 섰다. 가보고 싶은 길을 가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손을 뺄 수가 없고, 판을 접을 수가 없다. 사활이 걸려있지만, 망설이면서도 한 수를 놓는다. 묘수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바둑처럼 생도 한 수 삐끗하면 다 무너질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길을 다 알지는 못한다. 계속 공격적인 수를 두면, 아무리 철벽이라고 흔들린다. 내가 당당히 움직이면, 상대방이 움찔하고 세상이 움직인다. 그 움찔한 틈 속으로 산들바람처럼 스며들고 때로 소나기처럼 파고든다.

그녀는 술이라는 판 위에서 세상과 상대하고 있다. 그 상대는 손님이 되기도 하고 때로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바둑을 두지 못한다. 그녀의 두 딸은 20살과 19살이 되었고, 바둑 기사가 되었다. 작은 딸은 17살에 최연소로 프로 여자 바둑 기사가 되어 프로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딸들도 그녀를 닮아, 공격 일변도다. 한번 꽂히면 파고들고, 밀고 들어간다. 양조장 주점 솟대를 이끄는 공격수, 그녀의 이름은 조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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