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0 13:38최종 업데이트 18.11.27 10:15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쓸려 거리를 몰려다닌다. 11월 17일 늦가을, 서울 불광역 주변에는 북한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그 등산객들 사이를 뚫고 통일로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를 찾아갔다. 서울혁신파크 안에 요리 시설을 갖춘 맛동에서 제9회 전국 가양주 주인 선발대회가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앉아 쌀과 누룩으로 빚은 익명의 약주 50종을 맛보기 시작했다.

50종의 약주 맛보고 평가하기
 

전국 가양주 대회가 열린 서울혁신센터 행사장. ⓒ 막걸리학교



우스갯소리로 술을 마시는데 돈을 준다. 이런 직업이 어디 있는가? 술상무도 아니고 접대하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 누군가 조용히 가져다주는 술을 맛본다. 다만 안주는 없다. 물과 담백한 식빵 정도가 입 지우개로 놓여있다. 사설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쳐져 있어 옆 사람과 대화하면 안 된다.

모든 신경을 후각과 미각에 집중하라고, 잡음도 없고, 자연 채광과 인공광이 결합되어 직사광선도 없고 그늘도 없이 부드럽다. 조용한 공간에서 앉아 50종의 술을 맛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이 무뎌지고 몸도 무거워져 물 속으로 침몰하는 듯하다.

후각과 미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간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지만 즐거운 노동이다. 나의 축적된 후각과 미각이 새로운 맛에 반응하는 시간, 그리고 그것을 수치로 표현하는 작업이 술 품평회 심사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약주를 심사하는 모습. ⓒ 막걸리학교


 
점수는 외관 10점, 향 30점, 맛 30점, 종합 30점으로 100점 만점으로 표시한다. 7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점수를 주고, 그중 최고점과 최저점을 빼고 합산하여 평균 점수를 낸다. 그래서 1등부터 8등을 가리는 심사였다. 오전에 50종에서 16개를 가리고, 오후 결선에서 동점자가 나와 17개 중에서 8개를 순서대로 가려냈다.

술 외관은 10점이다. 술 외관은 재료의 특성을 반영하고, 여과와 무여과의 상태를 반영한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 색은 투명한 물색, 투명한 쌀 미색, 옅은 노란색, 황금색, 짙은 갈색으로 나뉘는데 황금색이 그 중심에 있었다. 쌀과 누룩용 밀에서 비롯된 색깔이다. 약주에 붙은 별칭의 하나가 황금주인데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술 외관은 이물질이 떠다니고 지나치게 탁하고 변색되지 않았다면 점수를 깎을 수가 없다. 눈에 띄는 것은 여과기로 걸러낸, 반짝거린 정도로 투명한 황금빛의 술들이다. 요사이는 작은 필터 여과기를 120만 원이면 살 수 있고, 해외 직구를 하면 그 절반 가격으로도 살 수 있다. 가양주라지만 여과기를 이용하여 걸러내더라도 결격 사유가 되기 어렵고, 정성의 한 축이 되었다.

냉장 보관하여 거듭 옮겨 담아도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는데 그래도 반짝거릴 정도의 맑은 상태를 구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은 술들이 약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여과하면 풍부한 향과 맛을 잃을 수 있으니, 그 투명도와 맛의 조화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심사는 술 외관에서 최고점과 최하점이 3점 이상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엇비슷했고, 그래서 변수가 되지 않았다.

술 향기는 30점이다. 향과 맛을 동일한 점수로 배정했으니 주최 측은 향기를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향기는 맛보다 훨씬 더 진폭이 좁다. 특히 상온에서 발효하는 경우에 향기 성분을 붙들어두기 어렵고, 약재나 과일을 쓰지 않고 제공한 경기미로 빚는 순곡주로 제한했으니 쌀 발효향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향기 성분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효모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테고 전통 누룩만으로 향기 성분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향기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먼저 잔에 코를 넣어 들숨으로 향을 맡고 나서, 다시 잔을 둥글게 흔들어 들숨으로 올라오는 향을 맡는다. 그리고 술을 10㎖ 정도 입안에 머금고 혀를 놀려 입안에 전체에 고루 퍼지게 한 다음에 날숨을 쉬어 향을 맡고 입안에 남는 느낌을 감지한다. 크게 들숨 후각과 날숨 후각으로 향을 평가한다.

약주향에서 어떤 향이 도드라지는 것일까? 주재료인 쌀에서 올라오는 향기가 도드라질 텐데, 첫째가 재료에서 온 곡물향이고 둘째가 발효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일향이다. 곡물향은 쌀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올 수 있다. 특히 생쌀 발효를 하거나, 속성 발효를 한 경우는 쌀향이 잘 묻어난다. 곡물향은 생쌀가루향, 갓 지은 밥내, 쌀겨향, 밀향, 엿기름향, 조청향, 옥수수향, 누룽지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발효 과정에서 올라온 과일향은 은은한 배향, 곶감의 가루분이나 홍시에서 느껴지는 단향, 신선한 사과향, 부드럽게 달콤한 참외향, 자두향, 메론향, 바나나향, 그리고 과숙된 과일에서 느껴지는 듯한 열대 과일 리치향으로 그 강도를 분류할 수 있다.

기대했던 바닐라향이나 바나나향은 쉬이 감지하기 어려웠다.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은 단향과 함께 올라오는 홍시향이었다. 홍시향이 감지된 술에 부가점을 주었다. 누룩에서 올라온 치즈향, 버섯향 등은 몇몇 술에서 옅게 느껴졌다.

더러 특별한 향온곡이나 내분비전곡을 사용한 출품작도 있었지만, 심사한 50개의 술 중에서 누룩향이 지나쳐서 거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서 나는 희망 하나를 보았다. 여태까지는 양조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누룩향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지 않고, 균일한 맛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잡균의 집합체라며 외면했는데, 그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기 충분한 술맛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쌀과 누룩만으로 만든 순수한 곡주들이라서, 부재료에서 올라오는 풀잎향, 꽃향, 약재향, 견과류향 등이 배제되어 있었기에, 심사 과정이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함께 심사했던 삼해주 기능보유자인 권희자 선생은 요사이는 누룩을 법제하여 잡내를 날리고, 또 다양한 누룩 제조자들이 등장하면서 누룩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했다.

술 맛에 배정된 점수가 30점이다. 맛은 종합 평점 30점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승부를 결정짓는 기준이다. 상업 양조장들이 참여하는 대회에서는 상품화된 술들이 나오니, 음용하기 좋은 알코올 도수로 조절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대략 일반 약주들은 13%, 전통민속주 계통의 약주는 16%에서 알코올 도수가 결정된다. 도수가 높은 것이 아무래도 품평회에서는 유리하다. 시음량이 10~50㎖ 밖에 되지 않기에 농도 짙은 술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가양주 대회에 출품되는 술들이 음용하기 편한 술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는 18% 안팎의 원주 중심으로 나온다. 막걸리나 탁주 부문도 원주에 가깝게 내다보니 막걸리의 본분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차라리 약주로 제한하니 원주로 나오더라도 평가할 만했고, 제품화의 발판도 되니 좋았다.

쌀과 누룩으로 빚는 약주의 새로운 가능성 발견

심사를 하면 사람이 까다로워진다. 변호사보다 판사가 더 까다롭고, 판사보다 검사가 더 까다로운 건 직업상 어쩔 수 없다. 품평회장에서 술을 심사하다보니, 검사 업무의 까다로움과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맛의 장점을 찾아 변호하기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려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맛은 알코올 농도에 따른 균형감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단맛, 쓴맛, 신맛이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조화로운 경지를 구현한다면 최고다. 무겁고 날카롭게 달아 다른 맛을 해치거나, 진하게 써서 이마를 찡그리게 하거나, 신맛이 오래 돌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거나, 간장 맛이 지나쳐 느끼하게 여겨지거나, 그렇지만 않는다면 좋겠다. 편안하고 향기롭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라면 좋겠다. 한쪽 맛을 도드라지게 하여, 맛의 개성을 추구하는 것도 취할 수 있는 한 방법이지만, 그렇다면 품평회의 입상을 탐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 고정미


출품한 술들은 대체로 곡물 대비 물의 비율을 낮춘 농담금 기법으로 빚어 단맛이 강하게 돌고, 도수가 높아 쓴맛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았다. 제법 숙성을 시켜 깊은 맛을 내지만, 간장향이 도는 술도 있었다. 이제는 출품을 겨냥해서 미리미리 술 담는 이들도 생겨났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가양주 품평회 심사를 하면서, 쌀과 누룩으로 빚는 약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좋은 재료를 선별하여 정성들여 빚고, 이를 정갈하게 여과하여, 일정 시간 숙성시키면 인상적인 약주를 어렵지 않게 빚을 수 있다.

우리 약주 시장은 약재의 기능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맛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백국균을 파종한 흩임누룩이나 당화력 좋은 개량 누룩에 의존하면서 맛이 엷어져서 그 존재감이 약해진 상태이다. 이번 출품작들이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술들이지만, 전통 누룩을 이용한 쌀술로도 경쟁력있는 술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품평회는 오후 3시에 끝났고, 오후 5시에 현장에서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모두 8명의 입상자를 냈는데, 이제 갓 술 빚기를 시작한 이들이라 놀라움도 컸고 기쁨도 컸다. 음식을 만든다는 것과 술을 만든다는 것을 굳이 구분하자면, 술은 원재료인 쌀과 누룩과 물의 선별에서부터 관여해야 원하는 술맛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술에 굳이 제 이름을 붙이는 이유도, 그 지배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배력이 클수록 성취감도 크고, 그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좋다. 술은 내 이름을 붙이기 좋은 음식이다.
 

올해 가양주 대회 수상자들과 전년도 수상자들이 함께 했다.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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