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7 09:24최종 업데이트 18.11.27 10:01
강원도 화천에서 산천어 생막걸리를 만드는 이창규 대표를 만났다. 그가 만든 산천어 생막걸리는 신선하고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잘 살려 2012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화천주가는 겨울이면 가장 바쁜 막걸리 양조장에 속한다. 겨울 산천어 축제장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리는데, 그들의 추위를 달래주는 소품 중 하나가 산천어 생막걸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보급한 효모를 사용해 신상품 화천 용화산 맑은 동동주를 만들었다. 전통 밀누룩을 써서 누룩향이 짙다. 합성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안정된 단맛과 무게감을 유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 10%로 높인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들었다. 산천어 생막걸리보다는 3배 비싼 상품인데, 그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차별화된 국산 양조효모는 없을까
 

효모의 활동으로 생기는 술덧의 기포.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 막걸리학교

 
현재는 한국식품연구원으로부터 무상으로 효모를 공급받고 있지만, 무상이다 보니 언제 그 공급이 끊길지 두렵다고 했다. 새로운 효모로 술을 빚는다고 홍보하고 싶어도, 이 공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 앞장세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그 효모를 돈 주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그 효모에 매료된 이유는 술 빚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바나나 향과 파인애플 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다.

그는 이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두기 위해서 저온 발효를 하고, 합성 감미료를 넣지 않고 알코올 도수를 높여 상품화하고 있다. 아직은 누룩 향이 강해 발효 과정의 과일향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고 통계 자료를 쌓다 보면 좋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효모는 당을 섭취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와 열량을 생성시키는 미생물이다. 효모가 생성하는 이산화탄소는 빵 반죽을 부풀려 식감을 좋게 하고, 알코올은 그대로 술이 된다. 효모 없이 빵을 만들 수 있지만, 효모 없이 술을 만들 수는 없다.

이렇듯 효모는 술의 필수 요소인데, 효모를 구할 데가 무상으로 공급하는 한국식품연구원밖에 없단 말인가? 나는 한국식품연구원에서 효모를 다루는 김혜련 박사를 만나봤다.

김 박사는 2015년부터 공공 프로젝트로 효모 연구를 했고, 이를 양조장에 무상으로 공급하는 일을 해왔다. 지역에서 수집한 곡물과 누룩에서 863개의 균주를 분리했다. 그중에서 양조 특성이 좋은 효모 10종을 분리해서 양조장 30여 곳에 무상 보급했는데, 화천주가에 전달된 것은 과일 향과 꽃 향이 나는 1번 효모라고 했다.

김 박사에게 왜 효모를 양조장에 무상 보급하는지 물어봤다. 전통주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술 품질의 표준화와 고급화를 하기 위한 차원에서 양조용 우수 효모를 보급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농림부의 전통주 진흥 정책의 하나라고 했다.

큰 양조장은 효모를 자체 배양해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배양하는 기술과 인력을 갖추지 못해서, 프랑스에서 수입한 간편한 분말형 빵 효모를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술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로서도 이 대목이 늘 의문이었다. 효모는 아주 중요한 영역인데, 왜 우리에게는 차별화된 국산 양조효모가 없고, 수입한 빵 효모나 와인 효모만 사용하고 있을까?

1857년에 프랑스 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가 알코올 발효에 효모가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1881년에 칼스버그 맥주회사 연구원인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효모를 분리 추출해 순수 배양에 성공했다. 그 이래로 이름난 양조 회사들은 효모를 앞장세워 차별화된 맛과 향을 구현하고 마케팅하는데, 우리는 왜 잠잠할까?

우리 정보 산업은 일류고 과학 분야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데, 유독 양조 발효 과학 분야는 경쟁하지 않고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을까? 하물며 이웃 나라 일본은 1906년부터 협회 1호 효모라 명명하면서 다양한 효모를 분리하고 공급해 양조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왔는데, 우리는 왜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까? 그게 수상하고 기이해 보였다.

누가 공급할 것인가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분리하여 보급하고 있는 효모로 만들어진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혜련 박사. ⓒ 막걸리학교

 
김혜련 박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국내 효모 산업이 허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얼마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양조장에 효모를 보급하는 회사는 송천효모, 충무발효 두 곳이 있지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제조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고 그 회사들더러 효모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성화된 국산 효모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공공 자원화하는 것은 고속도로를 내는 일처럼 공적 시스템이 가동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농림부가 나서고, 국내 유일의 식품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식품연구원이 나서는 것은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모양새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는 분리한 효모 10가지에 번호와 기탁 번호를 달아두었다. 1번 효모의 기탁 번호는 'KCTC12288BP'이며 사카로마이세스 세르비제(Sacahromyces Cerevisiae)에 속한다. 양조장에 보급한 10종 중에 1번, 2번, 9번, 10번이 인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10번 효모의 특성을 살펴보면 고알코올 생성을 잘하고 단 향과 과일 향을 낸다고 한다.

양조장 30곳에 액상 효모 334병, 36개 업체에 건조 효모를 보급했고 그 중 다섯 군데 양조장에서 새 술을 내놓았다. 그 술들은 장성주조 '홍길동 막걸리', 화천주가의 '화천 용화산 맑은 동동주', 청산녹수의 '사미인주', 남도탁주의 '정고집 옛날 생동동주', 청송양조장의 '청송 주왕 사과막걸리'다. 이쯤 되면 효모 산업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셈이다. 다음 문제는 이를 더 확산·보급하는 일이다.

한국식품연구소에서는 효모 생산업체를 선정해 기술 이전을 하고 싶지만, 이를 받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아직 없다고 한다. 양조장 입장에서는 수입산 분말 효모의 값이 싸고 구하기도 쉬운 데다가, 효모로 술을 차별화시켜본 경험이 없기에 관망 상태다. 공급업체의 입장에서는 시설 투자비는 많이 드는데 판로가 보이지 않고, 또 한 번 공급된 효모를 양조장에서 자체 배양해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쯤이면 진퇴양난처럼 보인다.

하지만 출구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효모의 보급을 촉진시키는 일은 '차별화된 효모를 사용했더니 술맛이 특별하고, 매출이 올랐다'는 입소문이 나면 된다. 일본의 경우는 국립양조시험소에서 품평회를 개최하고, 그 품평회에 좋은 평가를 받은 양조장의 효모를 순수 배양·보급하면서 오늘날 일본 청주가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과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누가 차별화된 효모를 지속해서 공급할 것인가다. 그래서 효모 산업은 국가가 나서고 공공기관이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식품연구원의 사업은 향후 5개 업체만 중점 지원되고, 희망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무상 공급 사업은 2018년 말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효모 산업이라는 문이 살짝 열렸다가, 안타깝게도 황급히 닫히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한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분리하여 보급하고 있는 액상효모와 씨누룩들. ⓒ 막걸리학교

 
따져보자면, 정부 기관의 노력을 독려하고 호응하지 못한 양조업체들의 무관심도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큰 양조장들이 나서서 분리 배양한 효모를 공개하고 나누기를 기대할 형편도 못 된다.

칼스버그 연구소에서는 자체 분리한 효모를 사카로마이세스 칼스베르겐시스(Sacahromyces Carlsbergensis)로 등재시키고, 효모 배양법을 무상으로 보급했다. 일본의 청주회사 월계관은 1906년에 자체 효모를 협회 2호로 등록하여 다른 양조장과 공유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자부심을 가지고 그 사실을 자랑하고, 회사 홍보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부러울 따름이다.

효모는 발효 산업의 중요한 지표다. 효모 산업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주체는 주세를 걷고 있는 정부가 될 수 있고, 양조장 협의회가 될 수 있고, 앞서가는 양조장이 될 수 있고, 헌신적인 양조업자가 될 수 있다.

앞서 나열한 네 군데에서 뒤로 갈수록 그 어려움은 커지고 속도도 느려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 어찌 보면 한국식품연구원은 균주를 분리하고 명명하고 보급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개별 양조장들이 이들을 분양받아 자체 배양하여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효모를 분리 배양하는 데 필요한 장비인 멸균기, 배양기, 무균작업대를 1천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각개약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국산 효모를 특화하고 차별화할 때, 한국의 술 산업은 비로소 발효 과학의 큰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이 4년 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성과가 우리 술 산업의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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