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08 08:55최종 업데이트 19.01.08 08:57
홍승은님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작가입니다.[편집자말]
"제가 해병대 나왔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정말 재밌었어요. 아, 하루는 비가 엄청 많이 내렸거든요. 비 오면 다음 날 땅에 지렁이가 올라오잖아요. 오후에 삽질하다가 제가 지렁이를 들고 소리쳤어요. 이거 먹을 사람? 그러니까 후임들이 망설이지도 않고 저요, 저요 라고 달려드는 거예요. 크하하하학."

분명 소개팅 자리였는데, 그는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 500cc 한 잔이 전부였으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추태 부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의 말은 오히려 자기 어필에 가까웠다. 껄껄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고, 물론 지렁이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심드렁한 내 태도에 서운했는지 의기소침한 얼굴로 그가 물었다. 뭐 불편한 거 있으세요? 나도 물었다. "지금 가혹행위를 자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비슷한 당혹감을 느낀 적은 여러 번이었다. 20대 중반,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과 썸을 타고 있었다. 다섯 번쯤 만났을 때, 그가 두툼한 물건을 들고나왔다. 군 시절 앨범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영웅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자신이 얼마나 권력이 있었고, 생활이 얼마나 고됐는지, 휴가 나와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깔아"라고 위협했던 과거와 심지어 학창시절 자신이 지역에서 잘 나가는 일진이었다는 사실도 구구절절 말했다. 겸허한 성찰이면 모를까, 폭력을 깔쌈한 훈장 정도로 여기는 태도에 절망했다. 아, 왜 지난 네 번의 만남에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내 둔한 안목을 원망하며 미련 없이 그와의 썸을 정리했다.
 

ⓒ pixabay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을 요구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자랑을 하고, 그만큼 누군가의 자랑을 들으며 산다. 어떤 자랑을 들을 때는 진심으로 그가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어떤 자랑은 이게 자랑인가 아리송하거나 심지어 불쾌해지기도 한다. 가령,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따 먹었는지'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던 옆 학교 학생들이나 원나잇 한 여자들의 성기 사진을 수집한다던 어떤 애의 자랑처럼.

'남자다움'을 성기와 폭력쯤으로 해석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경악스럽지만, 새롭지는 않다. 워낙 뻔하고 흔한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말처럼 익숙한 자기 서사는 고정관념을 전제한다. "자기 삶을 익숙한 줄거리 형식에 끼워 넣으려 마음먹고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젠더에 기초한 기대들은 우리의 관심을 더욱 왜곡한다. 남성들에게는 영웅적 서사를 요구하고 여성들에게는 사랑과 애착의 서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175p)

폭력은 어떻게 트로피가 되었을까? '군대는 나와야 사람 되지', '사회생활은 원래 그래'와 같은 말이 허용되는 문화에서 폭력은 폭력이 아니게 된다. 폭력은 문제 상황이 아니라 자연, 본성, 심지어 자격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력 문화에서 고통 또한 고통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피해자의 고통이 클수록 가해자의 존재감은 커진다.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라는 거들먹거림으로 말이다. 또한, 이 기괴한 전시에는 배제되는 사람이 꼭 존재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는 흔한 말 이면에는 여러 이유로 군대를 통과하지 않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배제가 담겨 있다. 더불어 '군 생활의 빡셈' 정도에 따라 위계가 나뉘는데, 오죽하면 '우리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야'라는 말이 군대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다. 자신이 얼마나 고강도의 폭력과 부정의를 견디고 그것에 참여했는지가 남성성의 인정으로 여겨지는 것. 자주 봐왔지만, 여전히 기묘하다.

살면서 내게 군대 얘기를 가장 많이 들려준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의 자랑 역시 비슷한 레퍼토리로 흘렀다. 아빠가 군대에서 꽤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영웅담, 집에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해주는 엄마를 주위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해서 우리 집은 천국이라고 불렸었다는 자랑 같은 것들. 그때마다 나와 동생은 아빠의 말을 끊고 반박했다.

아빠.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 폭력이 자랑이야? 게으름이 자랑이야? 엄마가 밥할 때 한 번이라도 함께 했어? 사랑하는 사람을 막 대하고 부려먹는 게 무슨 자랑이야.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나, 추켜세워 준다고 좋아하는 아빠도 다 반성해야 해. 그렇게 가정적인 게 좋으면 본인들이 아내한테 좀 살뜰하게 해보지!

신기한 점은 우리의 반박에 아빠가 점점 수긍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딸이 페미니스트가 되고부터 야금야금 관련 책을 읽은 아빠는 조금씩 업데이트되고 있다. 가사노동을 맡는 양이 늘고, 명령이 아닌 소통을, 말하기보다 들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폭력을 가부장이나 군인의 역할이 아니라 폭력 그 자체로 인지하게 된 점이다. 제대로 인식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니까. 그런 아빠의 모습이 신기해서 물었다.

"아빠,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걸 옛날에는 왜 그랬어?"
"나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어. 옛날에 내 동기 중에는 자기 아들이 엄마한테 반항한다고 반쯤 죽여 놓았다고 당당하게 떠들던 애들이 있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바보 취급했지. 폭력적일수록 인정받고. 그러니까 아빠도 그랬지 뭐. 사실 나도 군대가 잘 맞지 않았어. 원래 꿈은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거였어."


아빠가 책방을 꿈꿨다니. 눈에 번쩍 뜨여서 그날 밤늦게까지 아빠의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빠는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닌, 책과 사람을 좋아하고 주위를 돌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책방지기였다. 나는 과거 아빠의 잘 나가던 이야기보다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바라게 되었다. 뻔한 자랑이 아닌, 다른 식의 자랑을 듣고 싶다고.

우리에게는 다른 서사가 필요하다. 그 서사는 어떻게 가능할까? 누스바움은 말한다. "당신이 아주 자유롭게, 비전통적이고 엉망진창인(모든 의미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됐을 경우에만 서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라."(176p)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다정과 섬세함과 연대와 돌봄을 자랑으로 삼으면, 누구나 지루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매혹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예순을 바라보는 아빠도 다시 시작하는 중이니, 모두가 달성 가능한 새해 계획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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