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22 15:25최종 업데이트 19.01.23 19:20

구멍떡을 풀고 이화곡을 섞어 비비고 치대다. ⓒ 막걸리학교


술을 빚는다고 말할 때, '빚다'라는 동사는 어디서 왔을까? 술 빚는 공정에 동원되는 동사들은 다음과 같다. 

쌀을 지고, 들고, 푸고, 씻고, 불리고, 찌고, 식히고, 누룩을 띄우고, 말리고, 빻고, 불리고,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리고, 비비고, 치대고, 술밥을 삭히고, 휘젓고, 뒤섞고, 완성된 술을 떠내고, 거르고, 짜고, 담는다.


이 모든 과정을 술을 빚는다고 할 텐데, 왜 빚다가 대표 동사가 됐을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흔 살이 넘은 변호사가 술을 배우러 막걸리학교를 찾아왔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빚다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말했다. 부인이 도자기를 빚는데,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다. 도자기도 빚고, 술도 빚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인간 혼자만의 힘으로 안 되는 작업이란다. 도자기는 불의 힘을, 술은 효모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란다. 빚다에 철학적인 의미를 심어주는 해석이라, 수긍이 되기도 했다.

고려 문헌에도 등장하는 고급 탁주
 

이화주 ⓒ 막걸리학교

 
도자기, 술뿐만이 아니다. 송편도 빚고, 만두도 빚는다고 표현한다. 둘 다 도자기처럼 불의 도움을 받아야 완성된다. 그런데 똑같이 불의 기운을 받는 백설기나 인절미는 빚다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김치나 된장 같은 발효 음식도 모두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완성되는데, 빚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앞의 논리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그런 의문을 문득 이화주를 빚다가 풀 수 있었다.

이화주(梨花酒)는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빚는 특별한 술이다. 이화주의 뜻을 풀면 배꽃술이다. 그런데 배꽃은 들어가지 않는다. 배꽃이 필 무렵에 빚거나, 배꽃이 필 무렵에 누룩을 만들어 빚는 술이다. 쌀가루로만 만들어 술색이 배꽃처럼 희다. 빚는 계절이나 빛깔을 보고 우리 선조들은 고운 이름을 지어놓았다. 이화주는 호기심이 생기는 매력적인 술이라서, 막걸리 빚기 기초 정도를 뗀 사람 중에서 성미 아주 급한 사람들이 어김없이 이 술 빚기에 돌진한다.

이화주는 고려 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고급 탁주다. 고려 고종(1213~1259) 때에 지어진 경기체가 <한림별곡>의 제4장에 이화주가 나온다.
 
황금주, 백자주, 송주, 예주
죽엽주, 이화주, 오가피주
앵무잔, 호박배에 가득 부어
위 권하는 모습 그 어떠하니 잇고
유영 도잠 두 선옹의 유영 도잠 두 선옹의
위 취한 모습 그 어떠하니 잇고
 
이화주는 모든 재료를 가루로 만들어서 가루술이라고 한다. 물을 아주 적게 사용해 요거트처럼 떠먹을 수 있어 죽술, 떠 먹는 술이라고도 부른다. 이화주는 1450년경에 궁중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과 1670년경에 경북 영양 사는 장계향이 한글로 지은 <음식디미방>에 아주 상세하게 빚는 법이 나와 있다. 그 술 빚는 법을 따라 하며 이를 풀어본다.  
 

이화주를 빚기 위해 구멍떡을 만들다. ⓒ 막걸리학교



  

공처럼 만들어 띄운 이화곡. ⓒ 막걸리학교



이화주는 쌀만으로 만든다. 쌀을 주재료로 하고, 발효제인 누룩도 쌀로 만든다. 이화주를 빚기 위해 우선 누룩인 이화곡(梨花曲)을 만들어야 한다. 멥쌀을 하룻밤 물에 불려 두었다가 이튿날 곱게 가루를 내고 체질한 다음에, 뜨거운 물로 반죽해 오리 알 만하게 주먹 만하게 단단하게 뭉친다.

<음식디미방>에서는 덩어리를 짚으로 싸고 빈 섬에 담아 더운 구들에 두고 자주 뒤집어주라 했다. 구들이 귀한 요즘은 종이나 나무 상자 안에 전기방석을 깔고, 짚을 넣고 그 안에 뭉친 이화곡을 넣어두면 솜털 같은 곰팡이들이 핀다. 곰팡이는 시간이 지나면 회색이 되고, 검은빛을 띠기도 한다. <산가요록>에서는 7일 뒤에 뒤집어주고 14일을 더 두었다가 21일이 지나면 쓰라고 했다.

완성된 곰팡이는 다 털어내고 깎아내어, 흰색이 드러나게 이화곡을 다듬는다. 이화곡을 반으로 깨보아 속에 옅은 노란색이 보이면 잘 뜬 것이고, 검은 곰팡이가 반점처럼 있으면 안 좋은 것이다. 이화곡은 절구에 넣고 아주 미세하게 빻아서 쓴다.

비비고 짓다, 그래서 빚다

이화곡이 완성되면, 비로소 이화주를 빚을 수 있다. 멥쌀 4㎏, 이화곡 1.2㎏를 준비한다. 도구는 찜솥, 대야, 주걱, 뜰채가 필요하다. 우선 쌀을 물에 2시간 정도 불렸다가, 분쇄기로 빻는다. 이때도 가루는 고울수록 좋은데, 가는 체로 쳐서 고운 가루만을 사용하고 남은 무거리는 버린다.

그다음은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한 다음 구멍떡을 만든다. 구멍떡은 넓적하게 반죽해 가운데 구멍을 뚫는데, 두께가 일정해야 균일하게 익는다. 구멍떡을 팔팔 끓는 물에 넣으면 가라앉았다가 익으면 물 위에 떠오르는데, 이를 뜰채로 건져내서 뜨거울 때 멍울이 없게 주걱으로 풀어주고 대야에 넓게 펴서 식힌다.

반죽이 차게 식으면, 이화곡 가루 1.2㎏를 붓고 섞어준다. 이화곡은 곡물 대비 30%를 쓰는데, <음식디미방>에서는 누룩을 30%를 쓰면 오래 있어도 외지(그르다는 옛 표현) 않고, 20%를 넣으면 오래 두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반죽을 잘게 뜯어 누룩가루에 묻히듯이 하고, 차츰 거듭 비벼 반죽하면서 잘 섞이게 한다. 나는 술밥에 누룩을 섞어 반죽하고 비비는 모습을 보고서, 비로소 빚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제비처럼 떠넣어 이화주를 담은 항아리. ⓒ 막걸리학교



조선 시대 술들은 물을 유난히 적게 넣어 빚는데, 그러면 술덧을 많이 치대고 비벼주어야 한다. 현대 상업 양조에서는 물을 충분히 잡아 손으로 재료를 비비는 일은 없는데, 옛 문헌에 전해오는 술은 되직해 비비는 일이 흔했다. 이화주를 빚는 모습을 보면서, 빚다는 '비비다'와 '짓다'가 결합된 말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됐다.

잘 비벼지고 반죽돼 덩어리진 쌀가루와 누룩가루를 수제비처럼 잘게 뜯어서 항아리에 넣는다. 이때 항아리의 가장자리에 반죽된 것들을 붙이고 그 가운데를 비워둘 정도로 공기 접촉면을 많이 둔다. 이렇게 담아둔 이화주는 일주일이 지나면 맛볼 수 있다. 두세 달 두면 맛이 깊어지고 부드러워진다. 더 오래 두면 농익은 맑은 술이 위로 약간 떠오른다.
 

이화주 ⓒ 막걸리학교

 
이화주는 요거트처럼 떠서 먹는데, 물을 타서 마시기도 한다. 이 술은 먼 길 갈 때 담아주었던, 요깃거리이기도 했다. 요즘은 식사 전이나 후에 내놓거나, 샐러드를 할 때 조금 뿌려서 즐기기도 한다. 이화주는 우리 선조들이 손으로 빚었던 별난 술이자, 술이 빚어졌음을 알게 해주는 귀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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