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9 09:50최종 업데이트 19.02.19 09:51
박정훈님은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빨간소금)의 저자입니다.[편집자말]
"초코칩프라페샷하나만추가해주시고요모카시럽네번헤이즐넛세번초코시럽두번휘핑크림세바퀴만얹어주세요."

나는 이 문장을 옮겨 적기 위해 가수 쌈디의 알바몬 광고를 10번 돌려봤고, 전직 스타벅스 알바였던 애인의 감수를 받았다. 초코칩프라페는 초코칩라떼로 잘못된 검색을 하고서야 정확한 이름을 알아냈다. 곧이어 쌈디가 "봤어? 알바도 능력이야~아. 알바를 RESPECT."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키야아~'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채널을 돌리고 조금 있으니 좀 더 충격적인 광고가 나왔다. 스카이캐슬에서 차민혁 역으로 열연한 김병철이 "일일일일일"을 외치자, 알바를 하던 가수 전소미는 "아니 그건 님 생각이고!"라고 외친다. 그리고 뒤이어 "약속한 시간만 딱!, 약속한 일만 딱! 알바는 딱 알바답게."
 
알바에 대한 두 가지 철학
 

가수 쌈디가 등장한 알바몬 광고 ⓒ 알바몬 유튜브

  

가수 전소미가 등장한 알바천국 광고 ⓒ 알바천국 유튜브

 
쌈디가 나온 다른 알바몬 광고에는 알바를 하는 편의점 알바가 자신의 직업을 '무직'으로 선택하는 모습이 나온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드는 상황이 있을까? 이는 알바 노동자에 대한 사장님들의 근로기준법 위반과 손님의 갑질을 정당하게 만드는 근원적 원인이기도 하다.

또 알바는 변변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를 당해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최근 들어온 온라인 상담 중에는 알바노동자를 고용한 사장이 10일간은 교육 기간이라며 임금을 주지 않았고, 이후에는 시급 4500원을 주고 일을 시킨 사건이 있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는 일을 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불확신과 주변의 부정적 반응이야말로 제도와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2018년 청년 68만명이 평균 5972원을 받고 일을 했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쌈디가 일침을 가해버린다. "알바도 직업이야~"

전소미의 '알바는 딱 알바답게'는 전복적이다. 아마 이 기사를 읽는 일부의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서 '핸드폰만 보는', '말도 없이 그만두는' 불성실한 알바에 대한 토로와 비난을 댓글로 쓸 것 같다. 전소미는 이에 대해 최저임금 일자리니깐, 최저임금만큼만 딱 일하겠다는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은 최저로 주면서 일은 최고로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인데, 이는 우리의 노동윤리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만화가 윤서인은 '200만 원을 주는 사람에겐 300만 원어치 일을 해서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내 가치가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생각하고,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사람이 하게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임금은 줄고 고용은 줄어버린다.

대한민국의 노동시간과 저임금노동자 비율이 OECD 1등인 이유도 이 노동윤리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기업에 영혼을 팔아 야근과 주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식들의 원망을 들으면서도 가족은 부양했던 가장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근속연수는 5.1년. 비정규직은 2년, 대기업도 12년이다. 이미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알바와 별다르지 않게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면서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있다. 알바를 직업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불안정한 일자리를 견딜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시발점일 수 있다.
 
알바에겐 이름이 필요 없을까?  

이보다 앞서 알바계를 흔들었던 광고는 뭐니 뭐니 해도 2015년 가수 혜리가 '뭉쳐야 갑이당, 알바당'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알바들이 플래카드 들고 북을 치며 요란한 행진을 벌이면서 데모를 했다. 사실 이는 TV 밖 현실에서 벌어졌던 알바노조, 청년유니온이 벌였던 집회와 시위의 반영이었다.

인력중개업체에서 이런 광고를 버젓이 TV광고에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TV안에 있을 뿐, TV밖 세상이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 글을 읽은 독자들부터 '알바주제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악플을 달 가능성이 높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노력도 하지 않고' '쉬운 일만' '공장으로 가라' 악플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혜리도, 쌈디도, 전소미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이유다.

알바와 관련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있다. tvN의 커피프렌즈다. 유연석, 손호준, 최지우, 양세종 네명의 연예인이 제주도의 감귤농장에서 카페를 운영하는데 매일 1명의 알바를 고용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네 명은 자신의 이름이 있는 명찰이 있는데, 알바 하러 온 사람에게는 이름 대신 알바생이라는 명찰만 주어진다. 한 번은 백종원이 일일 알바를 하러 왔는데, 그의 가슴에도 어김없이 알바생이 붙었다.
 

tVN<커피 프렌즈>에 출연한 백종원씨, 그는 이름이 아닌 '알바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일했다 ⓒ 커피프렌즈

 
사람들은 알바는 어떤 사람이든 무슨 일을 하든 쉽게 구할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름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이 누구든 어떤 일을 하든 설사 그 유명한 백종원이든 어느 까페의 이름 없는 알바든 상관없이 똑같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권'이라고 부른다.

'알바를 RESPECT!'는 기업의 카피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읊조리고 내뱉는 우리의 언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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