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26 09:59최종 업데이트 19.02.26 09:59
김영빈님은 데블스TV 크리에이터로 '낚시왕 김낚시' 등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라면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네가 남자니까 참아야지"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세상엔 펑펑 우는 남자도 있고, 남자만 극복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인내심이라곤 제로에 가까운 남자들이 차고 넘치지 않던가. 

철수라는 남자아이가 툭하면 우는 것과 영희라는 여자아이가 털털한 성격을 지닌 것은 성별의 고유함이라기보다 개인의 성격 차에 가깝다. 그러나 앞선 유형의 아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는 두 성별을 다르게 길러낸다.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이분법적 성 역할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성차별적 사고이며, 이것은 일부 가정사로 치부할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선생님과 주변 어른들, 미디어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가 그려본 맨박스 ⓒ 김한별

 
편견은 곧 차별을 낳는다

모든 남성은 사회화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특정한 '남성성'을 주입받는데 이것을 '맨박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다움'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주입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아직도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돼'라는 사고로 자식을 가르친다. 이러한 사고가 반영된 첫 번째 훈련은 특정 행위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나약함, 섬세함, 부드러움 등 소위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남자다움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평가절하하며, 사회는 그러한 개인을 낙오시키도록 독려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쟤는 남자가 비실비실해서 어디다 써먹냐?", "목소리가 계집애 같더라", "남자라면 여자를 보호해야지", "남자는 울면 안 돼" 등 '남성성'의 평균에 합격하지 못하면 누구든 폄하하고 공격할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처럼 '사회 통념'이라 여겨지는 남성성은 무의식과 함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청소년기에 두드러지는 '남자다움'의 충족 요건을 살펴보자. 싸움을 잘하거나, 욕을 잘하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등 폭력성이 짙을수록 집단 내에서 높은 권력을 인정받는다. 이 현상은 가정에서도 도출되는데, 실제로 적지 않은 아버지들이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아들에게 '이겼냐 졌냐'를 물으며 '그냥 얼굴을 확 때려버리지 그랬냐'라는 식의 교육을 한다. 이런 교육방식은 폭력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런 경우도 있다. 같은 반 남자애가 괴롭힌다는 딸의 하소연에 '그 애가 널 좋아해서 그래'라던가, 성희롱을 당했다는 딸에게 '조심 좀 하지 그랬냐'라는 식의 충언을 한다. 아들에게는 폭력의 주체가 되라며 장려하는 반면, 딸에겐 남자의 폭력성을 두둔하며 위축시킨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당시의 남성성을 상징하다시피 한 영화다. ⓒ CJ엔터테인먼트

 
'남자다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것과 여성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은 비슷한 듯 큰 차이를 보인다. 역경이 닥치거나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는 '남자가 나서야 돼', '남자라면 할 수 있어'라며 남성의 주체성을 요구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빠져있어', '뒤에서 서포트 해줘'라며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돌파하려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여성을 마주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 치곤 잘하네." 여성이 우악스럽게 혹은 강단 있게 행동하면 "넌 남자애같이 당돌하다"라며 칭찬하는 이 기형적인 성차별의 구조. 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맨박스를 벗어나야 한다. 남성은 초인이 아니고, 여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맨박스'는 '남자다움'에 갇힌 피해자를 낳음과 동시에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은 남성중심적 시스템의 변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악순환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다. 예컨대, 어떤 남성이 여초 사회에 들어가는 건 '불편한' 수준이지만, 어떤 여성이 남초 사회로 들어가는 건 비교적 높은 확률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외모 품평부터, 카톡방 성희롱, 회식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하는 모습까지. 이미 남성의 시각으로 짜인 판에서 여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일련의 과정들은 여성에게 충분히 곤욕스럽고, 차별적이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성중심적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남성들이 이 구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성들이 바뀌지 않으면 남성 본인들이 가진 부담과 고통도 줄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모든 언어를 의심하고 그 뜻을 재정립해야 한다.

동시에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언어도 똑같이 해체하고 바로 세우자. '여자의 적은 여자', '여자들이 원래 운전을 못 하지', '여자는 사치 부리는 걸 좋아해' 등 '여성성'을 규정하는 프레임은 더 약자의 위치를 가진 여성 집단에게 분풀이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릇된 남성성에서 출발한 위계질서와 혐오문화, 이것으로 짜인 가부장제는 바뀌어야 한다. 성차별에 있어 소수의 '나쁜 남성'을 욕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을 지우는 것 외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맨박스'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 '맨박스'를 강요하는 주변 남성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여성과 약자들을 향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남자들도 지금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책임감을 벗어던질 수 있다.

이제 그 남자다움을 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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