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9 09:00최종 업데이트 19.03.19 13:28
일본 니가타현에서 열린 2019 사케노진(酒の陣) 축제장엘 갔다. 이 축제는 해마다 3월 두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 나는 2014년,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축제장을 찾아갔다.

2004년에 독일 술 축제 옥토버페스트를 흉내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글쎄 그것은 옥토버페스트의 명성에 기대려는 홍보 전략쯤으로 보인다. 옥토버페스트를 그다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토버페스트는 16일 동안 광장에서 대형 천막을 치고 음악과 함께 '아우성치며' 1리터 맥주잔을 들이켜는데, 사케노진은 2일 동안 일산 킨텍스 같은 박람회장에서 작은 부스들을 채워놓고 '야금야금' 시음 위주로 진행한다. 그래서 사케노진은 상품을 홍보하는 박람회인가 싶은데, 그 안을 들어가 보면 술을 즐기는 축제다.

술을 즐기는 축제
 

이틀 동안 14만명이 방문한 일본 사케노진 행사장 모습. ⓒ 막걸리학교

 
우리 일행은 붐빌 것을 예상해 서둘러서 개장하기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럴수가. 이미 줄은 박람회장 건물 출입문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서 박람회장 공원길을 지나, 야외 입구에서 마라톤 코스의 반환점처럼 돌아, 강변길을 따라 이어졌다. 행사 이름인 사케노진(酒の陣)에 걸맞게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그 길이가 1km가 되었다는데, 맨 뒤가 어딘 줄은 "最後尾(최후미)"라는 표지판을 든 안내인을 보고서야 알았다.

지난해에는 1시간 전에 와서 건물 안에서 기다렸는데, 올해는 30분을 늦었더니 건물 바깥으로 멀리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래도 10시 입장 시간이 되자, 긴 줄이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10시 30분이 되자 손목에 종이띠를 감고서 축제장 안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었다.

행사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마지막 관문 앞에서 행사 안내원들이 입장권을 확인하고 나눠주는, 바닥에 푸른 색 원이 두 개 그려진 '키키쵸코' 시음잔을 하나씩 받았다. 이 술잔을 들고 부스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주량껏 마시는 게 축제의 주요 일정이다.

술 축제, 그것도 한 도시가 성공적인 술 축제를 갖기란 쉽지 않다. 사실 모든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게 술이다. 그래서 술 축제가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진행하면 어려움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과 그 술을 만드는 장인이 중심에 서야 축제가 비로소 구성될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내다 팔지 않는 술이나, 영세한 양조장은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면 잔치가 왜소해지고, 참관객도 줄어든다. 무엇보다는 축제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의 양조인 모임이나 산업은 그 단계에 이르질 못했다.

니가타 사케노진 행사는 니가타 주조장만 참여할 수 있다. 전체 89개 주조장 중 83개가 참가했다. 주최 측에 물어보니 주로 소주에 주력하는 업체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행사가 끝나고 이틀 동안 방문한 사람의 숫자가 발표되었는데 2018년보다 88명이 늘어난 14만1611명이었다.

그 인기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우리가 왜 여기를 찾아왔고 무엇을 보았는가를 말하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성공적인 술 축제의 비결
 

둥근 문양과 선명한 색상으로 차별화를 꾀한 쿠비키주조장의 술. ⓒ 막걸리학교


첫째, 일본 니가타 사케를 한 눈에 모두 볼 수 있다.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주조장들끼리 경쟁하는 관계일 텐데도 잘 뭉친다. 그게 축제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다.

게다가 니가타현은 일본 사케(일본에서는 자신들의 청주를 일본주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일본주를 일본 사케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우월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니가타현에는 89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주조장이 있고, 그 뒤를 2위 나가노현 80개, 3위 효고현 71개가 따르고 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일본 사케 소비량 1위가 니가타현으로 11.8ℓ이고, 2위가 아키다현 9ℓ, 3위가 야마나시현 7.9ℓ로 뒤따르고 있다. 일본 사케 출하량은 효고현과 교토부에 이어 니가타현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 단위로는 유일하게 양조 연구소인 니가타현 양조시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험장은 1930년에 출범했는데, 건물은 주조장연합회의 기부로 지어지고, 인력 운영은 니가타현 청에서 하고 있다. 이곳에서 니가타산 양조벼 코햐쿠만고쿠, 잇본지메, 코시탄레이와 붉은 효모를 개발하여 보급했다. 사케노진 행사장에서도 니가타현 양조시험장이 나와 있어서, 그 활동상을 들을 수 있었다.

둘째, 성공적인 축제의 구성 요소를 살필 수 있다. 방문객이 많아 고민될 정도라고 하니,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할 만하다. 축제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다음에 참여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2020년에는 3월 두 번째주 토요일 14일과 이어진 다음날 15일에 열린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는 16일 동안 진행되는데 끝나는 날짜가 10월 첫 번째 일요일이다.

해마다 몇 월 몇 번째 금요일이나 토요일을 명시하면, 다음해 축제가 열릴 시기를 알 수 있다. 우리 술 축제는 올해 언제 열리는지 잘 모르고 홍보되어 있지 않아서 기다릴 수가 없다. 사케노진은 15회의 짧은 이력이지만 주조장들이 연대하여 진행하고, 니가타현과 니가타시가 적절히 협력하여 지역 최대의 축제로 성장했다.

술 축제장에 유통 회사 사람이나 홍보 전문 인력이 투입되는 게 아니라, 생산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소비자를 만나고 있었다. 주조장 장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독 부스도 있고, 세미나 행사도 예약을 받아 진행한다. 사람이 많아 턱없이 부족하지만 안주를 구매하여 시음할 수 있는 탁자도 있고, 술을 직접 구매하여 택배로 보낼 수도 있으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이벤트 무대도 있다. 시음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주조장 부스 주변으로 다채로운 행사와 안주 판매점이 있었다.
 

시간대별로 주조장 장인들과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 막걸리학교

 
셋째, 일본 사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3월이니 갓 짜낸 신주나 생주를 맛볼 수 있다. 일본 상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한정판이나 계절 한정판도 보인다. 심지어는 사케노진 축제 한정판까지 나와 있다. 이날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 하나는, 여과하지 않고 살균하지 않고 물을 더하지 않은 '무여과생원주' 상품이었다. 유통 기간이 짧고, 대량 생산하기 어려운 상품을 이 축제장에서 쉽게 맛볼 수 있었다.

니가타 사케의 큰 특징은 단맛이나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고 담백한 맛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단맛 나는 술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여간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양조장들의 차별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엇비슷한 맛들이 많았다. 그게 역설적이게도 술 맛에 까다로운 마니아들을 축제장 끌어모으는 동력이기도 하다.

일본 사케는 8개로 분류된 특정 명칭주가 있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일반주(一般酒)로 분류한다. 일본 전체 평균 특정 명칭주의 생산량은 34%인데, 니가타 사케 중에서 특정 명칭주의 생산량은 66.8%나 된다. 니가타현이 다른 지역보다는 특정 명칭주의 생산량이 많고, 니가타 양조벼를 사용하면서 고급지게 차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니가타 술맛이 담백하기에 주조장 별로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노력들도 많이 보인다. 혼술 문화에 걸맞게 200㎖ 작은 술병이 많고, 여성이나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알코올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사케나 과일 신맛이 도는 사케도 있고, 아예 여성 전용 사케도 나와 있다. 매실이나 감귤과 결합시킨 사케, 막걸리처럼 탁한 사케, 무알코올 감주들도 보였다. 6년을 묵힌 사케 720㎖가 2만원 밖에 하지 않아서 놀랍기도 했다.
 

가난했던 시절의 술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는 마루빈 제품. ⓒ 막걸리학교

 
넷째, 다양한 디자인과 포장과 서비스를 볼 수 있다. 주조장 사람들은 유니폼을 입고 술을 따라준다. 가난했던 시절의 술을 만들었다고 하여 貧(빈)자를 붙이고 아무 문양도 없이 내놓은 술, 만화로 귀엽게 포장한 술, 문자없이 단순한 이미지만으로 구성한 쿠비키 주조의 디자인, 최초로 캔에 일본 사케를 담았다는 키쿠스이 주조의 캔 제품, 설국으로 알려진 니가타의 눈 이미지를 살려 흰 병에 담은 하카이산 주조의 제품들이 있다. 술맛의 차이는 미세한데, 디자인은 천차만별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에서 디자인 요소가 크게 다가오는 자리이기도 했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니가타 청주를 무한대로 마실 수 있다. 이날 시음할 수 있는 술이 500여 종이었으니, 주당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실제 그 술을 다 받아 마시지도 못하고, 또 10㎖씩이니 다 마셔야 놀랄 만한 양은 아니지만, 한 자리에서 니가타의 청주를 모두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요소다.

나는 니가타의 술 축제를 올 때마다 20명 정도와 함께 동행했는데, 그 절반은 순수하게 술 맛을 즐기기 위한 이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술의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양조인들이었다.

그런데 사케노진 축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몰리다보니, 점잖게 주조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맛볼 수가 없다. 아수라장 속에서, 술잔을 내밀면서 10㎖씩 얻어 마셔야 하니, 좀 초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내밀면 또 술을 따라주지만, 충분히 차분히 술을 맛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흥미를 잃고 한 두 시간 만에 행사장 밖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이 때문이었는지, 사케노진 주최 측에서는 2020년부터 일신(一新)하겠다는 안내문을 곳곳에 붙여두었다. 지금까지는 입장권을 사면 무제한으로 맛볼 수 있었는데, 내년부터는 입장권에 시음회수권을 붙여서, 한 잔 마실 때마다 시음권을 내고 마시게 할 것이라고 한다. 원하는 대로 마시다보니 술에 취한 사람이 많고 행사장이 너무 붐벼서 제대로 맛을 즐기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입장권 없이 들어가서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만들겠다고 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제 무제한 술 마시기가 아니라, 한 잔에 한 장의 회수권을 받겠다는 것이다. 행사장의 혼잡과 과음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니, 행복한 고민이다. 그리고 내년의 변화를 올해 미리 홍보하여, 준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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