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09 14:15최종 업데이트 19.04.09 15:38
술을 빚어 음식과 함께 내놓았던 조선의 주막은 언제 사라졌을까? 1935년 일본인들이 쓴 <조선주조사>를 보자.
 
"조선주는 종래 제조장이 많았던 시절엔 제조장이 바로 소매점이고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판매점이 필요하지 않았다. 즉, 1916년경의 조선주 제조장 12만 개는 대부분 주막이었으나, 이후 제조장의 집약 정리에 의해 점차 그 수가 감소했다. 1919년 7만여 개, 1925년 3만여 개, 1930년 이후에는 5천 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주류의 수급을 위해 일반 음식점 말고 제조장 전속의 주류배급소를 각지에 설치할 필요가 생겼고, 1군에 10개에서 20개, 조선 전체에 5천 개에서 6천 개의 특정판매소를 설치했던 것이다."

한반도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던 주막이 1916년경부터 1930년 사이에 급속하게 사라졌고, 이후부터는 전문 양조장이 양조업을 주도하고 주류배급소가 술을 공급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오산장, 오매장터, 그리고 양조장
 

오산 오매장터에 새롭게 자리잡은 양조장 ⓒ 막걸리학교

 
현대에 이르러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도시 외곽으로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면서 도심이 텅 비는 일이 벌어졌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재래 장터 활성화, 구도심 활성화, 도심 재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창업자들을 끌어들여 공간을 살리려는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다.

2016년 소규모주류제조 면허 제도가 생기고 도심에서 양조장을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면서, 장터를 살리는 방법의 하나로 '현대판 주막'을 꿈꾸는 이들이 생겨났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했던 대전 중앙시장 청년구단의 양조장, 그리고 오산 오색시장과 연결된 오매장터에 들어선 양조장도 그런 경우다.


고려시대부터 수원에 속했던 오산은 1941년에는 수원군 오산면, 1949년에는 화성군 오산면이 됐다가, 1989년 화성에서 분리돼 오산시로 승격됐다. 오산장은 예로부터 명성이 높았다. 실학자 이중환이 1753년에 펴낸 <택리지>에는 시장이 3일과 8일 열렸다고 기록됐는데, 그 오일장의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26년 기록을 보아도 경기 남부에서 오산장은 수원장 다음으로 컸고, 곡물과 가축 거래가 활발했던 곳이었다.

원래 오산장의 중심은 오산천과 가까운 오매장터였는데, 지금은 오산역에서 가까운 오색시장으로 옮겨가버렸다. 100년 전 1919년 3월 29일 오산장에서 삼일만세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그 발화지점이 오매장터였다. 이제는 택시 기사들도 오매장터를 잘 모르는 듯하지만, 오매장터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산장의 중심이었다는 자부심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온도 조절이 되는 발효통에서 술이 삭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오서윤씨 ⓒ 막걸리학교

   
나는 소규모 양조장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오산 오매장터 양조장을 찾아갔다. 오산장의 오래된 중심이었던 오매장터를 살리기 위한 사업으로, 장터 토박이 5명과 양조에 뜻을 둔 1명이 만나 세웠다.

양조장은 제조장과 실습장 두 공간으로 나눠졌다. 제조장 외벽은 통유리로 지어서 찜기와 발효통과 분석 장비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온도 관리에는 불리하지만,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듯했다. 제조장 안에서는 오매장터 시계탑과 문화광장이 보였다.

여행 따라나섰다가 '양조장 노예'된 사연

우리는 실습장에 앉아 양조장 결성에 참여한, 양조에 뜻을 둔 오서윤씨로부터 양조장 창업사를 들을 수 있었다.

오서윤씨는 2015년 12월 인문학 독서 모임에서 진행한 서울 북촌 여행에 따라나섰고, 난생 처음 막걸리 빚기 체험까지 참여했다. 그곳에서 장수막걸리말고 다른 막걸리와 전통주도 맛보았다. 오씨는 그날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막걸리도 있다는 걸 배웠다.

2016년 봄부터 오씨는 본격적으로 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직접 빚은 술을 독서 모임 사람들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사는 오산에 양조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오산에도 양조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됐다.

오씨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오산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지역색을 드러내기 좋은 상품으로 막걸리 만한 게 없다고 시청 담당자를 설득했지만,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씨가 개인 공방을 차리기 위해 사무실을 계약할 무렵,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오매장터 살리기에 뜻을 둔 장터 사람들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어진 인연이 현재 오매장터 양조장의 김유훈 대표와 그 친구들이었다. 김 대표와 친구들은 오매장터를 살리고 싶었고, 오씨는 양조장을 만들고 싶었다. 서로 뜻이 일치한 순간이다.

양조장 공간은 김유훈씨가 제공했다. 그는 장터에서 식품 유통업을 하다가 전업을 생각하던 차였다. 양조장에 뜻을 둔 6명이 2천만 원씩 출자해 1억2천만 원을 모았다. 식품유통 창고를 개조해 양조장을 만들려다가, 아예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양조장을 지었다. 예상보다 돈이 더 들었지만, 건축업을 하는 이가 출자자로 참여하고 있어서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오매장터 양조장의 체험장에서 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막걸리학교

 
오서윤씨가 처음 술을 빚어본 시점이 2015년 12월, 양조장 면허를 받은 게 2017년 11월이다. 양조 기술도, 양조 공간도 없었는데, 2년이 채 안 돼 양조장을 세운 것이다. 그는 비록 과정은 힘들었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집안 식구들은 오씨를 '양조장 노예'라 부른다고 한다. 만약 단순히 돈이 목적이었다면 오씨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술을 통해 문화와 만나고, 양조장을 통해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큰 뜻이 휴일도 잊고 일할 수 있게 한 동력 아니었을까.

2016년 10월 오매장터 법인을 만들어 양조장을 차리기로 한 날로부터 그들은 주변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두었다. 2017년 6월 오산 사회적 경제 창업공모전에 당선됐고, 그해 9월 경기도 따복공동체 공모사업과 예비마을기업에 선정됐고, 2018년 4월 국제요리대회에 나가 전통주 부문에서 농림부 장관상을 받았고, 그해 5월 행정안전부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양조장을 통해 오매장터를 활성화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거듭한 결과 인정을 받았고, 실력도 늘게 됐다. 마을기업들과 협동하게 되면서 장터에도 함께 나가고 서로의 공간에서 제품을 팔아주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양조장 체험장에서는 도자기와 공예품과 커피도 팔고 있다.

사라졌던 주막 문화의 부활

오매장터 양조장은 여성이 혼자서도 힘을 적게 들여 일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쌀을 씻고 찌는 기능이 포함된 찜통을 쓰고, 온도 조절 감지기가 달린 100ℓ 발효통을 사용해 버튼 하나로 발효를 관리한다. 발효가 끝난 뒤에서는 호스와 펌프를 이용해 술을 옮겨 담아 제품을 완성한다. 100ℓ 발효통 6개와 600ℓ 제성통 1개를 갖춘 지역특산주 면허를 낸 작은 양조장이지만, 일이 많고, 보람도 큰 곳이라고 한다.

2018년 6월 첫술로 내놓은 건 요리술. 고기의 잡내나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데 쓰인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일본 스타일의 맛술에 맞서는 제품인데, 운 좋게도 인기를 얻어 지난 추석에 무척 바빴다. 백화점과 슈퍼 70군데에 연이어 요리술을 입점시키는 성과로 이어졌다.

요리술로 종잣돈을 마련한 뒤, 지난 겨울에는 오매백주와 오산막걸리와 증류주 독산까지 만들었다. 술은 오산 쌀을 써서 빚고, 감미료를 쓰지 않아 재료가 지닌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고자 했다. 오산막걸리는 3천 원, 오매백주는 5천 원이다. 통유리벽으로 양조장을 들여다본 이들은, 술 냄새를 맡고 판매장으로 들어온다. 술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전하고, 술을 한 잔 시음할 수 있도록 건네면, 손님들이 지갑을 열어 술을 사게 된다.

오산 오색시장에 중심을 내준 오매장터는 양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건물이 대체로 낡고 길거리도 어두웠으며 분리수거가 잘 안 됐다고 한다. 그런데 양조장이 생긴 뒤로 거리가 밝고 깨끗해져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고. 더러 연세 많은 분들은 지금 양조장 바로 옆이 옛 오산양조장 터라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오매장터 양조장에 만든 오매백주와 오산막걸리 ⓒ 막걸리학교

 
올해 오매장터 양조장은 오산 시티투어와 연계 사업을 진행하길 희망하고 있다. 1인당 1만1천 원을 내고 시티투어 버스를 타면 오산 오색시장에서 내릴 때 7천 원짜리 식사 쿠폰을 돌려주는 식이다. 오매장터가 오색시장과 이어져 있으니, 시티투어 손님을 양조장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보고 싶은 게 그들의 바람이다.

우리는 양조장 내부를 견학하고, 술밥찌기를 하고, 술빚기 체험을 했다. 오산 오색시장에서 사온 옥천 왕족발집의 돼지껍데기 편육과 도씨네 홍어집의 홍어와 티각태각집의 부각을 차려놓고 묵직한 오매백주와 단맛이 은근한 오산막걸리를 맛보았다. 양조장이 생기니 장터의 반찬 가게가 안주가게가 되고, 설렁탕집, 해장국집, 순대국집 들이 술국집으로 보였다.

지역 장터 사람들이 만든 안주에 지역 양조장 술을 곁들여 즐긴다면, 일제 강점기 때 급속하게 사라졌던 주막 문화를 재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비록 오매장터 양조장은 작은 규모이지만, 지역 쌀을 쓰고, 감미료를 넣지 않고, 숙성해 맛을 깊게 하면, 대량 생산하는 시판 막걸리에 맞서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을 생각해 장바구니를 들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서 전통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도 순수한 맛 오산 막걸리가 새롭게 들어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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