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7 13:58최종 업데이트 19.05.07 13:58
새로운 강으로 접어드는구나. 산길을 내려와 개울이 되고 소용돌이치며 시내를 이루더니 너의 인생이 이제 넓은 강물로 흘러드는구나. 바다의 자유로움은 멀지만, 좀 더 넓은 물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야하는 생으로 접어들었구나.

국가라는 조직이 커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되겠지만,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한 것은 아니다. 이제 많은 것이 너의 뜻으로만 이뤄지지 않을 테고, 조직의 상하가 분명하여 힘겨운 일도 많을 텐데. 연봉은 정해졌는데 만족은 할까? 생이 갑갑할 때 맑은 공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학교 갔다가 부모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직장을 갔다가 너의 방으로 돌아가게 될 그 밤과 아침들이 걱정된다.


초파일도 가까워 온다만, 한 생명을 방생하는 심정이랄까. 내가 스무 살 집을 떠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의 나처럼 이제 떠나면 모여 살았던 일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네가 귀담아 들을지 모르겠다만, 네가 가는 앞길을 향해 몇 마디 한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술은 인간 접착제라, 사람을 사귀기에 좋은 음식이다. ⓒ 막걸리학교

 
돈을 탐하지 마라. 그러면 자리가 작아진다. 타인을 섣부르게 진단하지 마라. 그는 쉼없이 변해간다. 마이너스 통장은 너를 마이너스시킬 것이다. 투자는 하되 투기는 하지마라. 투자는 내 돈으로 하지만, 투기는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다.

남자이니 한 여자를 만나겠지, 생명이 다하도록 응원할 엄마라는 여성처럼 소박하지만 귀한 존재를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너도 상대를 그렇게 응원해야겠지. 해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자꾸 말이 무거워지니,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말을 해야겠다. 나는 술 전문가가 아니더냐.

네가 처음 수능을 끝내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친구들끼리 강촌으로 엠티를 갔다왔을 때였지.

"함께 모여 무엇을 했니?"
"술을 마셨어요."
"몇 명이 모였는데?"
"20명 정도요."
"다른 놀이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 방에 20명이 모이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어요. 게임하면서 술 마시는 일밖에요."
"어른들이 해준 게 없구나."


그렇게 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밤으로 술 취해 들어와 토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쓰러져 자기도 했지만, 다행히 술 분해 능력이 좋아 그럭저럭 감당하는 것 같더라.

그렇더라도 공직에 들어서면 상사와 선후배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갈 텐데, 그 속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술자리를 피하지 못하겠지. 술을 즐기면 좋겠지만, 네가 주도하는 자리도 아닐 테니, 술이 야구공처럼 너에게 날아들 일이 잦을 테고, 그것을 너의 몸이 그대로 받아내기에는 버거울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회식 자리에서 펼쳐질 광경을 보자. 들어오는 순서대로 앉는다면 그 조직은 민주적이고, 상석을 유난히 따진다면 권위적이다. 그렇다고 네가 처음부터 가운데 앉는 무례를 범하진 않겠지. 음식이 나오기 전에 술이 먼저 나오게 된다. 비도 오고하니 막걸리를 마시자거나 막걸리집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소주와 맥주가 나올 것이다.

소주와 맥주 중에서 선택할 권리를 주면 낫지만 소주와 맥주를 관행처럼 섞어서 마시는 조직이 많을 것이다. 그때 술을 조제하는 사람은 조직의 치어리더 같은 사람이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정보도 빠르고 말도 많은 사람일 것이다. 첫 잔이 모두 채워지면 이제 건배를 하게 될 테지.

공조직은 리더가 분명하니 건배사를 할 텐데, 건배사는 30초 리더십을 보여주는 찰나다. 조직원들에게 그날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건배사를 하면 융통성있고 자애로운 리더이고, 해학적인 건배사를 하면 여유가 넘치고 낭만적인 리더이고, 건배사를 거절하면 자신의 자리를 무겁게 생각하거나 격식을 싫어하는 리더다. 건배도 없고 건배사도 없다면 많이 느슨하고 산만한 조직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겠지. 그날 술 마시는 양은 옆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주당파는 술을 급히 마시고 잔을 자주 돌리는 사람이니,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오늘 술을 적게 마시고 싶다면 주당 옆이나 앞자리에 앉지 마라.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 주변에 앉게 된다면 그를 잘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가 술잔을 비우고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순간에 술을 따라주는 것이다.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그 술잔이 돌아다니고 급기야 너에게 올 것이다. 참 이상하다만 우리는 스스로 술잔을 채우는 습관들이 되어 있지 않다. 술을 선물이나 하사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 술잔을 주고받는 것을 인정을 주고받는 것으로 여긴다. 여럿이 있는 속에서 스스로 술잔을 채우는 것을, 좀 초라하고 쓸쓸한 외톨이의 행위로 보는 경향도 있다. 자작하면 삼대가 재수가 없다고 말하거나, 자작하려 들면 바로 옆에서 술병이나 술잔을 부축해준다. 손으로 잔을 들고 술을 받는 문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나도 유럽인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줄 때 낯설더라. 내가 막걸리를 따라주는데 술잔에 손도 대지 않는 거야, "너 따라봐, 나는 지켜볼 테니!" 그런 표정 같아서 내 스스로 깜짝 놀랐어. 그들은 와인잔을 그대로 놓아두고 와인을 따르는 문화인 걸… 마치 우리의 찻잔처럼 말이야. 어떻든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술잔을 돌리는 문화도 줄어들 것이다.

술잔을 돌리는 것은 비위생적이고 불결하다. 상사라도 술잔을 건네면, 당당히 "제 잔으로 받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머뭇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라. 네 술잔에 술이 적게 남아 있으면 술을 마시고 받고, 잔이 가득차 있으면 절반쯤 물컵에 따라내서 마시고서 받는 것이 좋겠다. 술잔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입에 술을 대고서 술잔을 내려놓아라. 물론 상대의 빈 잔을 채워주는 예의는 잊지 말아야 한다.

술잔 돌리기가 싫다면  

술 잘 마시는 사람의 술잔이 적게 돌아다니게 하려면, 그들을 외롭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는 결코 자작하지는 않을 테니, 외로우면 술잔을 비우고 공세적으로 술잔을 돌릴 것이다. 그의 술잔이 입술에 닿을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그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다. 말을 시키는 방법은 그가 아주 좋아하는 화두를 꺼내는 것이다.

그가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 등산을 좋아하면 등산 이야기를 꺼내서 질문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이 많아지고 술이 줄어든다. 술자리에서 입이 하는 일은 말하거나 술 마시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말을 많이 시킬 줄 안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큰 기술이고, 술자리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니, 잘 활용해보아라.

다만 술자리에서 금해야 할 주제는 종교, 정치, 주식에 관한 말이다. 그 주제가 길어지다보면 편이 갈라지고, 감정이 갈라지게 된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길어져서 견디기 어렵다 싶으면 화장실을 다녀오고, 돌아올 때는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된다.

업무 관계로 일반 기업인과 공직자가 만나는 경우를 보면, 공직자의 나이가 더 어린 경우가 많다. 기업은 과장이나 대표가 나오고, 공직자는 주무관이나 사무관이 나오는 경우들이다. 물론 드문 자리이겠지만, 술을 함께 하더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

공직자가 업무는 얌전하게 보는데 술에 취하니 반말이 나오고 제 뜻대로 하려드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내 심정이 어떤 줄 아니? "망했구나 망했어. 스트레스가 크구나.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을 다스리겠는가. 망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큰일을 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서더라.

공직자들끼리도 바라보는 시선이 어찌 다르겠냐. 편하게 마시는 듯하지만, 거울로 얼굴을 보고 술로 마음을 본단다. 술에 비친 네 마음이 맑기를 바란다.
 

술 맛과 향을 알면, 술자리가 훨씬 풍성해진다. ⓒ 막걸리학교

 
술자리만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나 중요하니 체력을 길러라. 장수의 병권처럼 술병을 잡고 술자리를 리드하는 사람은 체력이 좋기도 하거니와 앞으로 조직을 리드할 가능성도 높다. 허약한 사람이 술을 좋아하기 어렵고, 리더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우연히 네가 다닌 고등학교도 그랬다만 체육 선생님이 교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체력이 좋고, 사람 만나는 것이 잦고, 또 체육선수들을 이끌고 외부로 나가 수상까지 하면 승진 점수도 더해져서 또래보다 승진이 빠르지.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 눈에 띄고 승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어찌 공직에 나가서 숨어있기를 바라겠냐. 술자리는 중요한 소통의 자리이다. 술 잘 마신 사람이 승진을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외는 좀 있지. 은행처럼 여신도 수신도 모두 영업이라 영업 능력이 업무 평가의 절대 지표가 되는 곳에서는 술을 잘 마시는 것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녁으로 사적인 자리를 더 만들려고 하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적인 자리를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데, 많은 거래의 시작은 인간적인 공감대 쌓기에서 시작되니 아무래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맥 관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긴다. 그래서 은행 지점장들은 술 깨나 하는 전술가들이다.

술을 적게 마시면서도 술자리를 주도하는 경우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때로 술을 못 마시면서 술자리를 주도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런 비범한 사람을 알고 있지. 물론 그는 술자리를 끝까지 지킨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는 얼마나 무료한 시간을 건너왔을까? 싶지만 그게 아니더라. 취하면 사람들이 말이 많아지는 것처럼 그는 술자리에서 말이 많다. 명백하게 술자리를 즐기고 사람을 즐길 줄 아는 존재다.

그의 최강의 무기는 술 이야기를 많이 안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가장 튀지 않는 게 술 이야기다. 다른 화두를 나누다가도 수시로 술 이야기로 돌아와도 된다. 말 많은 그는 막걸리는 유통 기간이 10일이지만 냉장 보관하면 100일이 지나도 맛이 좋다는 것을 알고, 소주는 소주 회사에서 만들지 않고, 주정 회사에서 만들어 공급해준 에탄올을 숯으로 냄새를 탈취하고 예닐곱까지 감미료를 넣어서, 소비자 가격의 절반 정도에 출고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비맥주를 두산이 다국적기업 AB인베브에 팔았고, AB인베브는 사모펀드 회사에 2조 3천억 원에 팔았다가 6조 원이 넘는 돈으로 다시 인수해서 지금에 이르렀고, 자본 게임을 하는 AB인베브가 세계 맥주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고 그래서 한국 기술자를 키우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짐작까지 주저리주저리 술자리에서 풀어놓는 사람이지. 술 맛과 향까지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를 술을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지. 그는 취한 사람을 거두어 택시를 태워 보내 주기까지 하니, 그가 어찌 리더라 하지 않을 수 있겠냐.

그렇게까지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만, 술자리가 거나해지면, 조용히 물러나는 것도 지혜롭다. 통상 1차는 함께 하지만 2차에 가서 자리가 길어지면, 핸드폰을 하며 자리를 피하듯이 조용히 물러나도 결례가 아니다. 물론 가까운 동료에게 먼저 일어났다고 문자 하나 남겨주는 예의 정도는 있어야 된다. 술 취해 어디로 갔는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다.

취한 밤보다는 이야기가 많은 밤을 더 많이 보내길
 

내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술을 마셔야 한다. ⓒ 막걸리학교

 
지금 이 글을 읽을 때면 현충원을 지나 연수원에 들어가 있겠구나. 아들아, 공직 생활의 첫발을 잘 떼기를 바란다. 공공기관들이 지방에 많이 흩어져 있으니 이제 지방으로 떠나는 너의 앞길에 취한 밤보다는 이야기가 많은 밤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숙취 음료는 술 마시기 전에 하나 마셔두고, 결코 약과 함께 술을 마시지는 마라. 빈 속에 술을 들이붓지 말고, 달걀이나 우유라도 한잔 마셔 위벽을 감싸주고 술자리에 임해라. 술자리에서는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양치질을 하고 술이 좀 깬 상태에서 잠들어라. 술 취해서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가지 말 일이며, 가더라도 술 깬 다음날 아침에 가라. 술 마시고 느껴지는 허기는 진정한 배고픔이 아니니, 대신 꿀물을 한 잔 해라.

한 마디만 더 보태면 술에서도 공사(公私)가 있다. 술과 개인이 맞설 때는 조심해야하지만, 술은 주세를 거두고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발효식품이며, 강대국이 국가전략 상품으로 홍보하고 국빈의 만찬에 건배주로 올리는 기물인 줄도 알아라. 무턱대고 술 탓만 하지 말고, 술 문화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생각해라. 술과 차, 반찬과 안주의 경계가 무너지며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술을 잘 마시면서 술의 정책은 하나도 검토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젊은 날 술을 잘 마시면, 나이 들어서까지도 즐길 수 있다. 세상에는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으니, 술로 몸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술 마시고 도원결의하여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지만, 술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술은 인간 접착제라 인간을 사귀고 조직을 빨리 이해하는 가늠자로 삼아야지 그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 너의 공직 생활이 당당하고 명랑하고 어질고 슬기롭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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