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3 21:57최종 업데이트 19.12.1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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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담샘, 이육사 선생 알지요?" 출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동료 주임은 '문화 커뮤니티시설 전시계획'을 내보이며 "육사 선생이 '청포도'를 발표한 1939년경 종암동에서 살았대요. 그래서 주민들이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덕분에 사업이 시작되었고 신축 공사가 곧 마무리됩니다. 같이 전시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최인담은 서울 성북구청에서 김광섭, 조지훈처럼 성북동에 살았던 문인을 기리는 '근현대문학기념관' 개관사업을 맡고 있던 터였다. 개관이 되면 간송미술관, 윤이상 집터, 한용운의 심우장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탐방길을 완성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이 사업도 쉽지 않은 터에 '주민 커뮤니티 공간 개설' 작업이 동시에 다가온 것이다.
 
그가 과제를 맡았을 때, 이육사에 대해 아는 바는 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고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필명을 이육사(李陸史)로 하였다는 점, '광야'와 '청포도'가 그의 대표시라는 정도였다.
 
'광야'의 마지막 연,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라는 문장은 고등학교 시절 맑고 선명한 이지미로 다가왔고 '초인'은 누구일까? 그런 질문을 품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육사는 큰 산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과제는 벅찼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육사, 라는 큰 산
 

문화공간 이육사 '교목' 전시실에서 12월 17일 전시를 앞두고 최인담 학예사는 육사를 정성되게 모시느라 잠시도 쉴틈이 없었다. ⓒ 민병래

 
그런데 막상 추진하려니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민들 뜻에 따라 종암동에 공간을 매입했지만 한 층 면적이 겨우 20평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육사의 고향 경북 안동에 있는, 외동따님인 이옥비 여사가 관장으로 있는 이육사 문학관과 알게 모르게 비교가 되었다.
 
인담은 조사차 세 번이나 그곳을 다녀왔다. 청량산과 건지산을 좌우로 거느리고 낙동강이 흐르다가 큰 들판을 뿌려놓은 곳에 원촌마을이 있다. 그곳은 광야의 시상지(詩想地)이기도 했다. 바로 그 터에 세운 이육사문학관! 선생이 남긴 육필원고를 비롯해 1934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신원카드나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 등 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임청각이나 도산서원 등 연계할 수 있는 유적지도 많았다.

이광수, 모윤숙 같은 문인들이 변절하고 일제에 아부할 때, 1944년 차디찬 베이징감옥에서 죽는 날까지 시를 썼던 치열한 삶이나 그가 이룬 웅혼한 시세계를 감안하면 종암동 공간이 육사를 모시기는 너무 좁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민의 바람이 컸다. 사실 구청 민원은 대부분 개발과 편의시설에 관한 거였다. 그런데 종암동 사람들은 동네가 품었던 시인을 기억하고, 그의 유해가 중국 베이징에서 돌아와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힌 것도 기리자고 하니 평수는 작지만 그 뜻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시민 공모 끝에 '문화공간 이육사'라고 지었다.
 
"광야를 대표시로 택하면 '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어떻게 해석할 건가요, 인담샘?"

시나리오 작가의 질문이다. 요즘은 구청 사무실보다 개관을 앞두고 '문화공간 이육사' 1층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일단 개관기념 특별전의 제목은 '식민지에서 길을 잃다. 문학에서 길을 찾다'로 확정했다. 12월 17일 개관일까지 며칠 안 남아 오늘은 늦더라도 세부 주제와 대표시를 정해야만 한다.
 
초인을 찾아서

머릿속에서는 청포도와 절정, 광야가 맴맴 돌고 있었다. 그래서 현대미술작가까지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참이다. 고개 돌려보니 창밖 맞은 편 점포들엔 벌써 등불이 켜졌다. 종암동에 터 잡은 문화공간임을 감안하면 육사가 이곳 62번지에 거주할 때 발표한 '청포도'나 '절정'을 대표시로 택하는 것이 좋지만 이육사의 정신이 오롯이 배어있는 작품은 역시 '광야'이기에 고민이 컸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초인이 해방을 맞은 자아'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맞나요?"
저녁 대신 커피 한잔과 귤 한송이를 앞으로 내미는 인담에게 시나리오 작가의 질문이 계속된다. 전시 그래픽을 담당하는 미술작가도 "초인은 독립군 지도자고 최근 연구 성과는..."하며 의견을 보탰다. 
 

전시준비 토론에 열중하는 최인담 개관특별전 대표 시를 놓고 열띤 토론 중이다. ⓒ 민병래

 
사실 인담은 '근현대문학기념관'과 '문화공간 이육사'를 맡으며 고민이 컸다. 작품에 대한 해석 문제가 난감했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도로서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배경을 보고자 하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도 중요했다. 특히 '이육사 전시'처럼 삶과 시를 통해 그의 독립운동과 문학세계를 함께 보여줘야 할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대표시 선정과 구역배치는 한 번 더 얘기를 하지요." 생각도, 얘기도 쳇바퀴고 허기도 느껴져 일단 회의를 마쳤다. 늦은 저녁 국밥이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구청에 들어가 나머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인담은 일행과 밖으로 나섰다.
 
"어머, 간판에 불이 들어 왔네요"라는 말에 뒤돌아보니 '문화공간 이육사'라는 글자가 옥상에서 빛나고 있었다. 육사의 시처럼 밤하늘에 명징한 글씨들을 보니 인담은 정말 알 수 없는 게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성북구청 학예사, 정확히는 '지방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 되어 육사와 이렇게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날은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 업무 막바지 인수인계를 하던 3월 중순이었다. 퇴근길, 가로수 곳곳에 남아있는 봄볕과 개나리 새순 향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그때 "'우우우웅..."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화면을 살펴보니 2241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혹시나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수신버튼을 밀었다.
 
"네, 정말이요!?" 인담은 풀썩 주저앉았다, 아니 철퍼덕 앉았다. 휴대폰 화면으로 어느새 눈물방울이 번지고 있었다. "준비할 서류가 있어요"라는 말에 서러움인지 기쁨인지 모르는 눈물을 닦으며 몸을 추스렸다. 마음은 조금씩 진정되는데 머리가 바빠졌다. 누구에게 이 소식을 먼저 전해야 할까? 남자친구... 엄마...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냉큼 만나기로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딸 잘했다. 정말 잘 됐다"며 "출근 준비 잘하고 항상 겸손하고 몸 조심하고..."라는 달콤한 당부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18:1의 경쟁률! 성북구청에서 새로 추진하는 근현대문학기념관 개관을 준비하는 학예사 채용에 많은 재원들이 몰려들었다. 의미도 있고 좋은 경력도 쌓을 수 있기에 그런 경쟁률이 무리는 아니었다.
 
학예사의 소명

고향이 전주인 최인담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금산사, 미륵사지 같은 문화재 탐방을 하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학자를 꿈꿨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남동생 둘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2007년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대학원 논문으로 다룬 주제는 '반민특위'였다. 논문 쓸 때 거의 10년을 우왕좌왕했지만 어렵사리 학위를 받았고 학예사 자격증도 얻었다.
 
졸업하고 선배와 인연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고 현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운영하는,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단체다. 연구소 선배들은 인담을 젊은 역사학도로 일으켜주었고 흔들릴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그렇게 인연이 닿았던 때, 마침 연구소가 강북구청으로부터 '근현대사기념관' 개관전과 운영을 위탁받았고 인담은 그곳에 학예사로 파견되었다.
 
'학예사'란 말은 참 빛깔이 좋다. 학문에 예술, 그리고 선비를 더했으니 국화향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예사들의 처지는 말뜻과 다르게 고달프다. 몇몇 국공립박물관을 제외하곤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갤러리나 사설전시관 같은 경우는 단기 계약직에 최저임금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근현대사기념관 입구에서 최인담 학예사는 2016년 이곳에서 학예사로서 첫발을 디뎠다. ⓒ 민병래

      
인담의 학예사 생활도 다르진 않았다. 학예사 생활 3년,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강북구청에서 위탁사업비로 책정된 예산이 빠듯해 생계가 어려웠다. 대책도 없이 "변화를 위해" 2019년 2월 28일로 사직을 했다. 그때 성북구청 학예사채용 공고를 접했고 면접에서 우물대기만 했는데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이날 합격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간 즐겁게 일을 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개관특별전 운영과 기획전시 업무가 전부였는데 이곳 성북구청에서는 근현대문학기념관도 그렇고 문화공간 이육사도 타당성 평가, 예산 확보, 건물 설계 등 행정 전반을 배울 수 있었다.
 
"내일 만나서 결정하자"는 인사를 뒤로 하고 인담은 구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조금씩 일렁인다. 눈에 안 띄면 아쉬울까 봐 군고구마·호떡 장수가 드문드문 보인다. 첫눈 소식까지 있으면 더 좋으련만... 인담은 버스에서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육사는 광야를 언제 썼을까? 시상(詩想)은 허허 들판 고향 원촌마을에서 얻고, 북경의 차디찬 감옥 안에서 추위에 부르튼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마분지에 꾹꾹 눌러써 완성했을까? 그래서 유해와 함께 '광야'는 돌아와 해방 후에나 발표되었던 걸까?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이육사 일제는 이처럼 독립운동가의 정면 측면사진을 만들어 검속과 사찰에 활용했다. ⓒ 최인담 제공

       
인담을 실은 성북구청행 버스는 저녁 어둠을 안은 탓인지 발걸음이 더뎠다. 맞은 편 차들도 어둠을 안고 꾸물댔다. 그는 더욱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목놓아 부르고 싶었던 조국해방'을 '천고의 뒤'로 미뤄야 하는 슬픔에 육사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불꽃같은 항일의지와 웅혼한 시세계를 간직하고도 죽음 앞으로 끌려가야 할 때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눈앞에 그려졌던 걸까?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 아픔에 그렇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문장을 길어올린 걸까?'
   
"이번 정거장은 성북구청입니다"라는 안내방송에 인담은 흠칫 놀랐다. 요즘 육사의 삶과 시를 곱씹다가 정거장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서둘러 내린 인담은 7층 문화관광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불과 6개월 남짓이었지만 벌써 정이 많이 들었다. 인담은 자리에 앉아 잔무 처리는 미뤄두고 다시 육사 시집을 꺼내 들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사무실엔 정적뿐, 어둠 한가운데서 탁상 등을 올리고 '광야' 한 구절을 나직하게 입에 올려본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인담의 낭송이 조용한 사무실을 조심스레 가로질러 창문에 '똑'하고 부딪힌다. 인담은 한번 숨을 가다듬고 다음 구절을 읊조려본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창밖에는 겨울 어둠을 헤치고 성북동 별빛과 종암동 달빛이 가만가만 다가와 인담의 어깨를 맑게 비춰주고 다사롭게 어루만진다. 인담의 낭송은 그치지 않고 밤늦도록 이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
 
1. '문화공간 이육사'의 개관기념 특별전 '식민지에서 길을 잃다, 문학으로 길을 찾다'의 개관은 17일에 진행될 예정이고 대표시는 '절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식민지민중의 아픔을 잘 대변한 시라는 판단에서입니다.
 
2. 1945년 12월 17일은 해방후 '자유'에 이육사 선생의 유고시가 발표된 날입니다. 이 날을 기려 개관일을 잡았습니다.
 
3. 최인담 학예사는 수유리 근현대사기념관에서도 좋은 분들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었지만 이곳 성북에서도 그에게 큰 도움을 준 분들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끝없는 열정이 인상적인 성북선잠박물관 오민주 학예사, 성북구청의 1호 학예사이며 따뜻한 이성을 가진 김지은 학예사, 굳은 일 마다 않고 살뜰히 챙겨주시는 전서령 학예사, 그리고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아낌없이 나눠준 국립한국문학관 최혜화 학예사, 또 인담의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구청 문화기획팀 동료들..."입니다.
 
4. 민족문제연구소는 최인담 학예사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선배와 연구원들이 독립운동하는 느낌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이나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우는 과정은 그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아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학예사 최인담 프로필>

2016.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2016. 3. 근현대사기념관 재직
2019. 3. <선생님, 3.1운동이 뭐예요?> <선생님, 대한민국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공저
2019. 5.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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