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 14:04최종 업데이트 20.03.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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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이자 가산탕진형 와인애호가 임승수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습득한 와인 즐기는 노하우를 창고대방출하겠습니다.[편집자말]
막 와인의 매력에 빠져들던 시절 얘기다. 십만 원 넘는 비싼 와인을 신줏단지처럼 식탁 위에 고이 모신다. 정화수 떠놓고 무병장수를 빌듯, 치즈 안주 올려놓고 와인이 맛있기를 기원한다. 이내 와인을 입에 머금어 맛과 향을 음미하고 치즈 조각을 차분하게 씹는다. 안주를 치즈 조각으로 간소화해 십만 원 넘는 와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다. 왜일까? 음악에 비유해보자.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재즈 트리오가 있다. 특정 악기 연주자의 기량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악기만 음표를 남발하고 다른 악기는 쉼표 처리된다면, 청중은 재즈 트리오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각 악기가 서로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최고의 연주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도대체 와인과 안주는 어떻게 궁합을 맞춰야 할까? ⓒ Pixabay

 
와인 마시는 행위도 그러하다. 와인, 안주, 사람의 세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최상의 시너지가 나온다. 와인 맛 위주로 즐기겠다며 치즈를 손톱만큼 떼어먹으며 마셔대면 속 버리고 다음 날 머리 아프다. 마트 진열대에 널브러져 있는 저렴이 와인도 제짝 음식을 만나면 종종 충격적인 시너지를 낸다. 도대체 와인과 안주는 어떻게 궁합을 맞춰야 할까?

일반적으로 육류에는 레드 와인,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이 공식처럼 알려져 있다. 간단명료하고 유용한 분류이기는 하나 맹신해서는 곤란하다.

레드 와인의 품종이 얼마나 다양한가.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쉬라, 까르미네르, 산지오베제, 네비올로, 그라나슈 등등. 고기 종류는 어떠한가. 닭, 오리, 돼지, 소, 양, 심지어 사슴에 말고기까지. 상황이 이러한데 육류에는 레드 와인이라고 퉁치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을까.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이라고? 담백한 흰살 생선이 있는가 하면 기름기 가득한 붉은 생선도 있고, 조개류, 대게, 랍스터까지 무궁무진하다. 화이트 와인 품종도 각양각색이다. 안주에 육류와 해산물만 있는가? 버섯도 있고 채소도 있고 과일, 초콜릿도 있다. 여기에 맞는 와인도 다 따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것도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와인에 딱 맞는 음식, 혹은 음식에 딱 맞는 와인을 고르는 일이 과연 칼로 무를 두 조각 내듯 단순하겠는가. 와인과 음식의 궁합(마리아주) 역시 어느 정도 고심이 필요하다.

버섯과 와인, 그 뜨거운 궁합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 2013 이 샤도네이 와인을 버섯 안주와 함께 마셨더니 놀라운 궁합을 보여주었다. ⓒ 임승수

 
때는 2016년 8월 10일, 한여름 더운 날씨라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떠올랐다. 마침 좋은 가격에 구입한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Beringer Private Reserve Chardonnay) 2013이 셀러에 있어서 마시기로 결심했다. 베린저Beringer는 와인 회사명, 프라이빗 리저브Private Reserve는 품질이 좋다는 의미, 샤도네이Chardonnay는 포도 품종이다.

화이트 와인에는 역시 해산물이지! 마트에서 네다섯 개에 만 원 하는 활전복을 사다가 버터를 두른 뜨거운 프라이팬에 5분가량 못살게 군 다음 푹신하면서도 탱탱한 그 모순된 질감을 샤도네이 와인에 곁들여서 야무지게 감상해줄 심산이었다.

여느 때처럼 와인서쳐 앱으로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샤도네이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와인서쳐는 주로 와인의 해외 거래가 검색에 이용되지만, 나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맞출 때에도 사용한다.
 
오잉? 안주로 버섯을 추천하네? 마트에서 해산물을 구입하다가 속는 셈 치고 흙내음 가득한 (비싼 자연송이 말고) 양식 참송이를 추가로 구입했다. 저녁이 되어 와인을 열고 안주를 준비했다. 전복과 샤도네이는 이미 검증한 조합이라 기대만큼 좋았다. 다음으로 참송이 구이와 샤도네이. 함께 마시던 나와 아내는 이 조합에서 맛의 신천지를 경험했다.

참송이 특유의 알싸한 흙냄새에 샤도네이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타닌이 어우러지니 그 상승 효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아내는 화이트 와인과 버섯의 조화가 오묘하다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육류는 레드, 해산물은 화이트라는 단순한 기준에 얽매였다면 이 놀라운 맛과 향의 하모니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와인서쳐에서는 특정 음식과 잘 맞는 와인 품종도 추천하는데, 닭고기와 가장 궁합이 좋은 와인도 샤도네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쉬라 등 다소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을 곁들여도 무난하겠지만, (닭고기나 오리고기같이) 기름진 고기는 역시 깔끔하면서 신맛이 도드라지는 샤도네이가 제격이다. 동일한 이유로 샤도네이는 돼지 삼겹살과도 썩 잘 어울린다.

절대로 피해야 할 조합은 없을까? 있다. 생선회에 화이트 와인을 무작정 붙였다가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비린내 대참사에 직면한다. 들은풍월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 코와 혀가 증인이다.

레드이든 화이트이든 오크통에 숙성한 와인은 생선회의 비린내를 (내 경험상) 대략 8.5배 증폭시킨다. 멀쩡한 음식끼리 만났는데 그렇게 요상한 맛과 향이 생성되니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했다. 생선회에 곁들여 마시려면 오크통에 숙성하지 않는 저렴한 화이트 와인이 좋다.

얼마 전 킴스클럽에서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와인을 세 병에 39,900원에 판매한다는 일급 정보를 취득했다. 뛰어난 가성비로 이름난 로버트 몬다비 와인을 한 병에 13,300원에 살 수 있다니! 할인 끝나기 전에 집에서 가까운 킴스클럽 철산점에 냉큼 뛰어나가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 각각 한 병씩 세 병 샀다.

로버트 몬다비에게 내 혓바닥과 조우할 영광을 주겠노라며 셋 중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골라 와인서쳐로 검색해 보니 Beef and Venison을 안주로 추천한다. Beef는 소고기인데 Venison이 뭔지 몰라 찾아보니 듣도 보도 못한 사슴고기다. 듣보잡은 포기하고 토종 한우는 너무 귀하신 몸이라, 결국 물 건너온 소고기를 미친 할인가로 팔길래 스테이크용 살치살 큰 덩이를 15,000원에 구입했다.

고기의 느끼함을 잡기 위해 언제나처럼 오뚜기 양파절임 소스와 파채를 준비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파채와 와인의 궁합에 우려를 표하는 와인 애호가가 벌써 보인다. 냅둬유! 내 맘대로 살게. 내가 로버트 파커나 잰스시 로빈슨 같은 와인 평론가처럼 초집중 상태에서 와인을 한 올 한 올 깊이 음미해 평가점수 매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먹어보니 뭐 괜찮더구먼.

사연(물 건너온 초특가) 있는 소고기라 맛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굳이 물 건너와 나와 아내 이빨에 씹히는 네 팔자나, 굳이 (한우 놔두고) 물 건어온 너를 씹는 우리 부부 팔자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웬걸? 기대가 없어 그런지 의외로 고기 맛이 괜찮다. 일만 원대 로버트 몬다비와의 궁합이 상당히 훌륭하고. 취기가 오른 탓인지 함께 마시는 아내도 무척 아름답구나. 와인, 안주, 사람 삼위일체! 이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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