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 08:37최종 업데이트 20.05.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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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娘娘)의 사전적 의미는 "제왕이나 귀족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18세 유권자를 가리켜 '낭랑 18세'에 비유하는 신문 칼럼들이 적지 않다. 약속이나 한 듯, 여기서 낭랑은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가 난다'는 뜻의 낭랑(朗朗)이라고 풀이하면서 18세가 '청량하고 명랑한 젊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오역(誤譯)이다.

'낭랑 18세'를 노래한 가수 백난아의 다른 히트곡들이 '아리랑 낭랑(娘娘)' '봄바람 낭랑(娘娘)'인 걸로 보아, '낭랑'은 '왕비나 귀족의 아내'를 일컫는 말에서 '미혼의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바뀌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고리 고름 말아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18세"로 시작하는 노래의 2절이 "팔짱을 끼고 돌부리 차며 무엇을 기다리나 총각 20세"인 걸 봐도 낭랑은 그저 젊은 '아가씨'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신문에 글줄깨나 쓰는, 배운 분들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오독을 했을까? 이들 눈에는 18세란 나이가 그저 '밝고 명랑하고 풋풋한' 시기로 채색되어 보이는 걸까? 나이 든 세대가 지나간 자신의 젊음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품는 걸 탓할 수야 없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18세의 현실을 자신들의 낭만적 추억으로 치환하는 것은 부당하고 기만적이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최근 11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삶의 만족도 최하위, 행복지수 최하위를 기록하는 나라에서, 입시경쟁과 취업난, 각자도생의 치열한 경쟁에 떠밀려 전망 없는 '노오력'을 강요받는 청소년들은 2020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코로나 여파로 부쩍 한산해진 서울 성수동의 공유오피스 건물 라운지에서 지난 3월 18일 '양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청소년활동가를 만났다. 밝은 브라운과 그린색으로 머리 염색을 하고 입술에 피어싱을 한 그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지난 2019년 12월 패스트트랙으로 선거연령 인하안이 통과되면서 참정권을 얻게 된 만 18세 유권자 56만 명 중의 한 사람, 탈학교 청소년으로 청소년참정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2002년생 여성, 본명은 정유정(18)이다.

강남8학군 엄친아에서 탈학교 청소년 활동가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말씨(오른쪽). ⓒ 재단법인 와글


- 안녕하세요?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되죠? 양말님? 양말 활동가님?
"네, 양말님... 대개 그렇게 불려요."
 
- 양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냥 발에 신는 양말?
"저도 이거 엄청 후회하고 있는데요. (웃음) 아, 좀 본새 나는 이름을 지었어야 했는데 얼떨결에 만들어서... 처음에 '아수나로'란 청소년운동단체 가입할 때 불리고 싶은 이름을 적으라길래 별생각 없이 '양말'이라고 적었는데, 그 이름이 이렇게 계속 불리게 될 줄 몰랐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람들이 좀 있어 보이는 이유를 갖다 붙이라고 하던데, '발마저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하하하, 근데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 어쨌든 기억하긴 좋아요. (웃음) 올해 만18세로 유권자가 되셨죠?
"네. 2002년 2월생이에요. 청소년참정권운동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난번(2016년) 지방선거 때는 농성까지 해도 안 됐어요. 이번엔 될까, 안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진짜로 통과되었다고 하니까 얼떨떨하면서도 기뻤어요. 이번 18살 생일파티도 친구들이랑 성대하게 했어요. (웃음)"
 
- 탈학교 청소년활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언제 학교를 그만두셨어요?
"2018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4월에 자퇴했고요, 1년 있다가 복학했는데 다시 자퇴했어요. 1학년 1학기를 다 마치지 못했죠."
 
- 그럼 공식 학력이 중졸?
"중졸이죠. 이번 5월에 검정고시를 보려고요. 중졸로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그냥 살아도 상관 없겠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편의점 알바도 '연령 불문, 학력 불문, 고졸 이상' 구한다고 나와요. 그게 무슨 학력 불문이에요?"
 
- 그러게요. (웃음) 탈학교 청소년에 대해서 일반인이 가지는 선입관이 있어요. 탈학교 청소년을 비행청소년과 비슷한 범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학교를 왜 그만뒀냐는 질문을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제 사생활을 너무 궁금해 해요. 솔직히 학교생활이 별 의미 없고 재미 없었단 것 말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자꾸 물으니까 저도 뭔가 이유를 갖다 대야 할 것 같잖아요.

설명하기 귀찮아서 '학교생활이 잘 맞지 않아서요'라고 얘길 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구나' 하고, '대인관계가 좀 피곤해서요' 하면 '아, 친구 없었구나' 해요. '학업이 힘들어서요' 하면 '아, 쟤 공부 못했구나' 하고, '저, 정시 준비하려고요' 하면 '쟤 진짜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려고 나왔구나' 하죠.

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꾸 뭔가를 덧붙여서 생각해요.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진실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에요. 뭘 자꾸 덧붙여서 생각하지만 않으면 돼요."
 
- 대학은 갈 거예요?

"올해 경험 삼아 한번 보고 내년에 다시 수능 보려고요."
 
- 고등학교 자퇴한 사람이 대학엔 왜 가요?
"네?"
 
양말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다.
 
- 제 질문이 이상한가요?
"고등학교 자퇴한 거랑 대학 안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고등학교는 재미 없어서 자퇴했고, 대학교는 재미 있을 것 같아서요. 재미 없어도 학사 따놓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예전에 열심히 공부한 게 아깝기도 하고요."
 
그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성적과 학력에 목을 매진 않지만, '필요하면 갈 수도 있지, 학교 들어가고 말고가 뭐 그리 대수냐?'는 투였다. 중학교 때까지 그는 "두꺼운 안경 쓰고 립스틱 한번 발라보지 않은" 모범생이었다고 했다. 소위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성적도 좋은 편이어서 주변에선 특목고를 가라고 권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그마저도 그가 기대하던 학교는 아니었다.
 
- 성적 좋은 모범생으로 지냈다면서 학교에 대해서 내심 불만이 많았나 봐요.
"중2 때부턴가, 학교 교칙이 너무 싫었어요. 무릎 밑으로 치마를 내려야 하고, 머리는 파마도 염색도 안 되는데 검은색 염색은 괜찮고. 학교 가면 선도부가 두 줄로 쫙 서서 훑어보고. 선생님들은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기회를 편파적으로 줬지요.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중3 말에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어요."
 
- 어떤 대자보요?
"선생님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 있어요. '홍석천은 나쁜 사람이다', '남자 선생님 앞에서는 브라가 비치지 않는 옷을 입어라' 같은 얘기들에 너무 화가 났는데, 어차피 졸업도 얼마 안 남았겠다, 사람들한테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이게 잘못된 거였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느끼게 하고 싶었죠."
 
교실의 정치화가 뭐 어때서요?
 
2016년 말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양말은 중2였다. 그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의 회원이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서로 다른 배경,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섞여 있었지만 언니, 오빠 호칭을 쓰지 않으면서 누구든 수평적으로 대하는 문화가 퍽 인상적이었다. 2017년 9월, 촛불청소년과 여러 인권단체들이 모여 '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양말도 청소년참정권운동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 청소년참정권운동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로 했다가 취소된 사례들이 많아요. 발의는 됐지만 부결된 경우도 있고 발의하기로 했다가 흐지부지 무산된 경우도 있고요. 제 동료활동가는 '청소년은 표가 안 돼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대요. 우리가 참정권이 없으니 굉장히 무력해지더라고요."
 
- 이제 18세 참정권이 보장되었으니 목표를 이룬 건가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투표 연령이 한 살 낮춰진 것 말곤 변한 게 없어요. 정당 가입도 안 되고, 선거운동하면 교실이 정치판 된다고 교실에서 못하게 하고. 청소년참정권을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 예를 들면?
"정당 가입 연령 폐지요. 피선거권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보고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나이를 25살 이상으로 규정한 것도 무척 애매한 것 같아요. 그만한 나이면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을 거라는 가정인데, 경험이 많다고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 반대 경우도 많고요. 선거권하고 피선거권은 같은 연령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청소년참정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있죠.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된다든가...
"탈학교 청소년은 애초부터 배제하고,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된다고 난리예요. 얘들은 미숙해서 부모 따라 투표할 거다. 제 인터뷰에 달리는 댓글들 보면 저런 똑똑한 친구는 투표권 줘도 되는데 보통 애들은 안 돼... 이런 의견도 있고."
 
- 그런 주장이 왜 문제죠?

"교실의 정치화라는 말 자체가 청소년을 기만하는 용어예요. 탄핵 시국에도 청소년들이 열심히 촛불 들고 함께 했단 말이에요. 청소년, 학생들도 다 정치적인 존재예요. 그런 맥락 싹 지워버리고, 50년 뒤에 책을 봤는데 '2019년 12월 27일 패스트트랙이 통과된 이후 청소년들이 정치를 시작했다' 이렇게 기록되면 어떻게 해요? (웃음) 우리한텐 더 정치적일 수 있는 장이 필요해요. 학교 허락 없이는 대자보도 못 붙이게 하고 암암리에 탄압하는데, 우리가 좀 더 나대고 설칠 수 있는 공간, 문제가 있으면 공론화하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교실의 정치화, 전 환영합니다."
 

지난 2017년 2월 20일, 제16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며 두었던 투표함 모형. ⓒ 정대희


-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게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죠. 그런데 실제로 청소년 가운데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많지 않나요?
"직장인들이 생활고에 바빠서 정치에 관심 없다고 그들을 탓하진 않잖아요. 가장 약한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패스트트랙으로 국회가 대치하고 있을 때도 민생법안부터 처리하자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18세 선거권이 제게는 가장 절박한 민생법안인데, 그들이 말하는 민중에 나는 없더라고요. 2등 시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참정권이 필요한데, 참정권도 주지 않으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건 모순이죠. 청소년을 미래로 유예된 존재라고 보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 학교에서 모의투표도 금지되고, 선거 앞두고 급하게라도 유권자 교육을 시키자고 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유야무야 되었어요.
"민주시민교육은 언제나 시급했어요. 그런데 그게 꼭 모의투표나 학교 유권자 교육을 통해서 되어야 하나요? 저는 성인이란 말 대신 비청소년들이란 용어를 쓰는데요..."
 
- 비청소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장애인/비장애인 하듯이, 청소년/비청소년이라...
"성인이란 말이 성숙했단 뜻인데, 나이 든다고 다 성숙해지나요? 성인과 미성년자로 구분하는 건 청소년을 언제나 미성숙하고 부족한 존재로 규정하는 시각이죠."
 
- 일리가 있어요. (웃음) 계속하세요.
"비청(소년)들이 첫 투표한다고 대학교에 모의투표소를 설치하지는 않잖아요. 한 살 어리다고 투표 전에 교육해야 한다는 태도가 잘못된 거죠.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학생들 화장품을 압수해 가는 현실에서, 자꾸만 뭘 가르치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할 기회를 보장하고, 직접 해볼 수 있게 해야죠. 30명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떠드는 게 민주시민교육인가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시위에도 참여하고 기사 읽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런 게 진짜 교육이죠. 민주시민다운 대접을 먼저 해주는 게 진짜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비청소년들의 착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진순 와글 이사장(왼쪽)과 양말씨(오른쪽). ⓒ 재단법인 와글


50대의 나이 든 '비청소년'이 18세 청소년을 인터뷰하는 것은 각별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섣불리 이견을 드러내서 꼰대로 찍히고 싶지 않다는 조심스러움 때문일까. 질문만 던지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술술 답변을 하는 양말과 달리, 내 질문은 허공을 맴돌다가 드문드문 소심하게 이어졌다. 모든 걸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적당히 이해하는 척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차라리 솔직하게 비청소년의 무지와 완고함을 드러내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 학교를 떠난 지 아주 오래된, 비청소년 입장에서 여쭤볼게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고 학도호국단 거수경례를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나 같은 세대 입장에서는, 그래도 요즘 청소년들이 우리 때에 비하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거든요. 체벌도 없어졌고...
"체벌 없어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구타도 많아요. 최근에 <체벌거부선언>이란 책도 나왔는데요."
 
- 정말요?
"예전에 어땠는지 제가 잘 모르니까 '너희들은 많이 좋아진 거야'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요? (웃음)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지금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중요하잖아요. 지금 저희도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고 있어요.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독립운동가를 배운 적이 없고요,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주장에 갇혀서 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논쟁도 허용되지 않아요. 과거의 이데올로기 교육이 다른 방식으로 변화했을 뿐이지, 사라진 게 아니라고요."
 
- 적어도 학교 안에서 자유로운 발언이나 토론의 기회는 늘어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학생회장을 직선으로 뽑고 선거운동도 하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졌을까요? 중학교 때 후보들은 공약을 내는 것도 교장 선생님 허락을 받고 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전체회의에서 의자가 삐걱대니 바꿔 달라는 얘기를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자기한테 와서 먼저 얘기하지 그랬냐고... 그 다음부터 저도 회의에서 입을 다물게 되었죠. 기껏해야 어버이날에 무슨 선물을 할까, 어떻게 하면 교칙을 잘 지킬까 같은 얘기들만 나와요. 그런 상황에서 학생자치가 어떻게 이뤄지겠어요?"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 나이에 따른 위계가 깨지는 건, 연장자의 원숙한 너그러움이나 인자한 양보심 따위가 아니라 진솔한 대화의 파트너로 서로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내 시야의 사각지대를 밝혀주는 또 다른 카메라. 양말의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즐거워졌다.
 
- 촛불집회에 양말님도 참가했다고 하셨죠? 촛불집회 이후는 어때요?
"(깊은 한숨) 청소년의 삶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청소년의 삶은 입시랑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무슨 얘길 해도 수능 점수 잘 받는 게 장땡이거든요. 문재인 정부 안에서 수능 7등급 받는 것보다 박근혜 정부 안에서 수능 1등급 받는 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거란 생각이 깨지지 않았어요."
 
- 유권자가 되는 것과 힘 있는 주권자가 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지요.
"유권자가 아닌 사람도 힘 있는 주권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시민으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 유권자가 힘 있는 주권자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제대로 된 주권자가 되려면 국회가 우리와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국회에 중졸인 저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중졸 국회의원도 없을 걸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 '별 거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여기저기서 인재영입하는 거 보면서 뜨악! (웃음)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필요한데, 그러게 비례대표를 좀 '똑띠' 운영했으면 좋았잖아요."
 
18세가 꿈꾸는 20년 후의 세상


- 이번 총선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할텐데 어느 정당을 찍을지 결정하셨어요?
"아, 그게... 저도 첫 투표니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선택지가 줄어들게 될 줄은 몰랐어요."
 
- 위성정당들 말씀인가요?
"......"
 
거침없이 의견을 토로하던 양말은 총선과 관련된 질문에서는 말을 아꼈다. 청소년참정권운동을 같이 해 온 동료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정당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처지에 가타부타 개인 의견을 내놓는 게 조심스럽다고 했다. 할 말은 많으나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보정당들을 지지해온 입장에서 이들이 위성정당 논의에 참여하는 게 안타깝고 슬펐어요. 어떤 입장에서 그랬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그런 쪽과 같이 하지 않는 게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길 아닌가요? 하여간 전 정치에 대해 사실 잘 몰라요. (웃음)"
 

지난 3월 23일 오전 11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아래 제정연대)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윤근혁


-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공정성이 매우 민감한 화두로 등장했어요. 그런데 공정성을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양말님이 생각하는 공정성이란 뭐죠?
"저는 능력에 따라 잘 사는 건 공정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쟤보다 더 노력했으니 쟤보다 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비등비등하게 다 같이 잘 사는 게 공정한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정시 확대라는 납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돼요.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는 사실 복불복인데, 환경에 따라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달라지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너나없이 너무 '노오력' 하는 데 미쳐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노오력하지 않아도 잘 사는 세상이 진짜 평등한 세상이라고 믿어요."
 
- 이제 18세 생일이 지났는데 앞으로 20년 후쯤에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요?
"전 이기적인 사람이라서요. (웃음) 내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근데 내가 잘 산다는 말에는 내 주변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게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친구 없이 나만 잘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데요?

"음... (곰곰 생각) 우선, 첫째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는 사회. 둘째,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는 거요. 예를 들면, 성소수자가 당당히 커밍아웃할 수 있는 사회, 사이버상에서 내가 어리다고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 내가 노인이어도, 나이가 어려도 할 말 할 수 있고 그걸 색안경 끼고 보지 않는 사회,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사회, 내가 나로서 행복한 사회면 좋겠어요."
 
양말이 말하는 행복한 미래를 공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가 꿈꾸는 20년 후의 세상이 될 때까지, '비청'들은 젊은 도반들의 렌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새롭게 배워야 할 게 많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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