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1 16:01최종 업데이트 20.04.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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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성 츠수이허 강변의 빙안구전의 집들. 성벽처럼 높게 쌓아올려 강물을 내려다보기 좋게, 외적을 방어하기 좋게 만들었다. ⓒ 막걸리학교

 
술 한 잔에 물 한 잔이면, 술로 인한 몸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술 한 잔에 물 한 잔이면 치아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입안에 머무는 알코올의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빙안구전(丙安古鎭)을 갔다가, 술 한 잔에 물 한 잔보다도 더 멋진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술 한 잔에 차 한 잔을 하고 있었다.

구이저우성은 중국의 서쪽에 있는 변방이다. 중심에서 밀려난 소수민족이 모여 살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다. 구이저우성의 명작은 단연 마오타이주(茅台酒)다. 마오타이주를 취재하기 위해서 구이저우성을 찾아갔다.

지명이 곧 이름이 된 술, 마오타이주

흔히 마오타이주는 가짜가 많다고들 한다. 면세점의 상품도 믿을 수 없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그래서 공산당 당원이 건네준 술만이 진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기가 있다 보니 벌어진 일일 텐데, 마오타이진(茅台鎭)을 찾아가보고서야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오타이주는 마오타이진에서 만든다. 지명이 곧 술 이름이 되었다. 명주는 역시 국회의원처럼 지역구가 분명해야 한다. 마오타이진은 작은 마을로, 구이저우성의 북쪽 도시 쭌이시에 속한 런화이시에서 12km 떨어진 츠수이허(赤水河) 강변에 있다.

마오타이진 중심가에는 술의 도시답게 양조 도소매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널리 알려진 원통형 도자기병에 담긴 마오타이주는 국가가 경영하는 '마오타이주공장유한책임공사'에서 만든다.

그런데 마오타이진에는 양조장이 1천 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원통형 마오타이주 제조장은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 마오타이진에서 만든 술은 모두 마오타이주라고 부른들 거짓말이 아닌 셈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단하(丹霞) 지형인 불광암. 붉은 토양이 붉은 강 적수를 만들었다. ⓒ 막걸리학교

 
마오타이주의 위상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마오타이진을 흐르는 츠수이허 강물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적수(赤水), 강물이 흙탕물로 붉다. 술이 좋으려면 물이 좋아야 한다는 말로, 마오타이주와 츠수이허를 연결시키면 큰 오산이다.

마오타이주는 증류주다. 찐 수수와 가루 누룩을 섞어 커다란 구덩이에 넣고 그 위를 진흙으로 발라 푹푹 삭힌 다음, 이를 퍼내서 증류솥에 넣고 쪄서 알코올을 증발시킨 뒤 냉각관에서 액화시켜 얻어낸다.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열을 가해서 만드니 강물이 오염되었더라도 상관없다.

츠수이허는 마오타이주에 다른 방식으로 기여했다. 윈난성에서 시작된 츠수이허는 구이저우성을 굽이굽이 흘러 쓰촨성에서 양쯔강을 만나 끝난다. 500㎞에 달하는 강물을 타고 차와 소금 배가 지나다녔고, 술도 실려다녔다.

맛있는 술의 강
     
그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까 싶어 츠수이허 강변 소금 배가 쉬어가던 역참마을 빙안구전으로 향했다. 마오타이진에서 츠수이허를 따라 찻길로 138㎞가 떨어져 있었다. 고진(古鎭), 옛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큰 협곡과 폭포가 있는 불광암(佛光岩)을 찾아갔다.

불광암은 빙안구전에서 25㎞ 정도 떨어져 있다. 불광암은 붉은 석벽이 우물처럼 둥글게 테를 두르고 있고, 269m 폭포가 석벽을 타고 비단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석벽은 철광석 성분이 많아서 붉은색이 돌았고, 그 석벽을 광배 삼아 부처가 앉아있기라고 한 것인지 불광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츠수이허 강가의 절벽에 새겨놓은 미주하, 글자 하나의 높이가 40m에 달한다. ⓒ 막걸리학교

 
츠수이허를 따라 구이저우성과 쓰촨성의 경계까지 가보았다. 그곳에 츠수이허를 미주하(美酒河), 맛있는 술의 강이라고 새겨놓은 석각이 있었다. 츠수이허를 따라 쭌이시의 동주(董酒), 마오타이진의 마오타이주, 시수이현(習水縣)의 시주(习酒), 쓰촨 얼랑진(二郞鎭)의 랑주(郎酒)가 있고, 츠수이허가 끝나는 곳에 쓰촨의 명주 후저우라오(泸州老窖)가 있다.

츠수이허는 그 술의 재료가 되는 곡물을 실어나르고, 술도 실어날라 오늘의 명주를 만들었다. 절벽에 새겨놓은 미주하 글자의 높이가 40m나 되었다. 그 글자 속에서 제일 크고 제일 높고 제일 독한 것을 표현하려는 구이저우 사람들의 자부심과 욕망이 보였다.

빙안구전은 츠수이허의 나루터로 번성했던 마을이다. 새로 난 자동차 길은 강 건너에 있었다. 강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모래 준설선이 강물 위를 떠가고, 햇볕에 그을린 아이들이 강물에서 자맥질을 하고 놀았다.

좁은 길 양옆으로 음식점과 가게들이 있다. 돌계단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경사 심하고 옹색한 강변에 집들이 목탑처럼 벽돌탑처럼 올라가 있다. 목조주택은 불안하게 기울어 아슬아슬하고, 떠받치고 있는 지렛대도 가늘어보였다. 벽들도 모자이크처럼 붙여 나간 듯, 불규칙하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마을 길의 끝에 석문이 있고,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 좋은 구조였다. 강가에 성벽처럼 솟은 집들이 곧 전망대이고 요새였다. 강 위의 변화를 가장 먼저 살피고, 가장 잘 살피면서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3일, 6일, 9일에 장이 서고, 장날이면 주변의 물산들이 다 모인다. 소금배가 드나들 때는 술집도 많았다고 한다.

술이 약하면 한 숟갈, 잘마시면 세 숟갈
     
빙안구전 마을길을 걷다가 허름한 가게 안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낮술을 즐기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니하오?" 인사를 하니, '어서 들어오'라고 한다. 하얀 종지에 술 한 잔을 따라 권한다. 사각 탁자 위에는 잔들로 가득하다. 술병 하나 놓였고, 술잔과 짝을 이뤄 찻잎이 우려지고 있는 따뜻한 찻잔이 놓여있다. 술이 떨어지니 가게 주인에게 술을 주문하고, 주문한 사람이 술값을 냈다.

밥그릇 한 공기 분량의 투명한 바이주(白酒)가 탁자 위에 새로 놓였다. 술을 권하는데, 따르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준다. 술이 약한 사람은 한 숟갈로 그치고, 잘 마시는 사람은 세 숟갈을 떠준다. 그리고 잔을 부딪친다. 술잔을 들기고 하고 찻잔을 들기도 한다. 술에 곁들이는 안주가 따뜻한 차다, 급할 것도 없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서로 마시는 행위를 공유하고,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술 한 잔에 차 한 잔을 즐기는 빙안구전의 마을 사람들. ⓒ 막걸리학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가게이자 주점이자 다관(茶館)인 그곳 바로 옆에는 홍군 기념관이 있었다.

1935년 국민당에 쫓긴 홍군의 대장정의 길목 속에 이 마을도 있다. 젊은 홍군들을 이끈 이는 29살의 린뱌오(林彪, 1907~1971)였다. 홍군 기념관 안에 린뱌오의 침실 공간이 있었다. 중국 홍군의 1만5000㎞의 대장정 중에 마오쩌둥이 1인자로 급부상했는데, 그것이 빙안구전이 있는 쭌이시에서의 일이다.

린뱌오는 마오쩌둥과 절친했고, 1960년대에 마오쩌둥에 이어 중국공산당의 이인자까지 올랐다. 마지막에 마오쩌둥과 주석 자리를 놓고 대립하다가 소련 망명길에 올랐고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빙안구전으로 들어오는 다리 위에 붉은 별이 새겨져 있고, 홍군을 기념하는 비석도 있었다. 강에 기대 사는 외진 마을 같지만, 국가 이데올로기가 이 마을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고 마오타이주는 건배주가 되고 국주(國酒)의 반열에 올랐다. 마오타이주가 명성을 얻기까지 여러 계기가 있겠지만, 대장정의 길에 츠수이허를 네 번이나 건넜던 홍군의 고단한 삶을 잠시라도 위로했던 공적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마오쩌둥과 마오타이의 앞 음절이 중첩되어서 마오타이주가 마오쩌둥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허튼 말이 아닌 게 시진핑(習近平)이 등장했을 때 시진핑을 연상시킨다하여 시주(習酒)의 매출이 크게 올랐다. 시주도 구이저우성에서 만들어지니, 구이저우성은 변방이지만 구이저우의 술은 결코 변방이 아니다.

술 한 잔에 물 한 잔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술 한 잔에 차 한 잔은 함께 즐길 만한 취향이다. 술 한 잔에 차 한 잔, 그 차가 술 깨는 차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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