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 15:34최종 업데이트 20.05.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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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타이진에 갔지만, 실망스럽게도 마오타이주 제조장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섭외 능력의 한계를 자탄하며 마오타이주 정문에서 발길을 돌렸다. 대신 소개받은 곳이 주중주(酒中酒) 양조장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중주 제조장 정문을 들어서면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 규모는 마오타이주 제조장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단번에 씻어낼 만했다.
 

마오타이진의 주중주 양조장의 전경, 보이는 건물이 모두 양조 공간이다. ⓒ 막걸리학교

 
양조장이 산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 속에 든 건물들이, 아파트 단지처럼 늘어서 있는데, 모두 양조장 소유란다. 양조장 입구에는 장주문화기념관(醬酒文化紀念館)이라고 쓰인 높은 문이 있었다.

장주(醬酒), 장과 술의 만남이다. 장도 만들고 술도 만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장향형, 좀 더 분명하게는 간장 향이 도는 술에 대한 기념관이다. 간장내가 나는 술을 즐기다니, 중국 사람들은 모를 일이다. 기름에 지지고 튀긴 음식이 많다 보니, 그 기름지고 느끼함을 잡으려고 장향이 도는 음식과 술이 친해진 것일까? 하지만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자꾸 중국이 궁금하다.

양조장 마당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조형물이 있고, 그 밑에 상품인생(上品人生)이라고 적혀 있다. 죽림칠현은 3세기경 위나라 말기에 뒤틀어진 정치 권력을 피해 자연 속에 숨어 살면서 노장 사상에 심취했던 이들이다.

<주덕송(酒德頌)>을 짓고 항상 한 단지의 술을 들고 괭이를 멘 머슴을 데리고 다니며 '내가 죽거든 그 자리에 묻어 달라'고 했던 유영(劉伶)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술잔을 들고 있고, '탁주 한 잔 탄금(彈琴) 한 곡 내 소원은 이것뿐이라'고 했던 혜강(嵆康)이 거문고를 타고 있고, 악기를 잘 타서 악기 이름이 되어버린 완함(阮咸)이 있고, 도도하게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죽림칠현의 리더 완적(阮籍), 뒷짐을 지고 있는 왕융(王戎), 피리를 들고 있는 향수(向秀), 환속하여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산도(山濤)가 있다. 그들의 삶을 최고로 멋진 '상품인생(上品人生)'이라 평했으니, 술도가가 우군으로 삼을 만한 현자들이다.

첫 번째로 들어간 건물은 술을 시음하는 품주실(品酒室)이었다. 한쪽 벽에는 제조 공정도가 그려져 있고, 중앙 벽에는 다양한 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붉은 술병, 붉은 상표가 붙은 흰 도자기 술병, 황금색 포장 상자에 담긴 황토로 구운 술병 들이 진열되어 있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기분에 한껏 기댄 제품들이다. 황토로 구운 병에 든 술은 '고진노주(古鎭老酒)' 오래된 마을의 오래된 술로, 30년 숙성한 바이주다.
 

술 제조장에서 수수와 누룩을 섞고 있다. ⓒ 막걸리학교

 
두 번째로 들어간 건물 안은 공사가 한창인 건설 현장을 방불케했다. 여기서는 술을 빚는다는 말이 무색하고, 술을 축조하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삽을 들거나 빗자루를 들고 발효되는 술더미 속을 맨발로 바삐 다니며 작업한다. 바구니에 담긴 누룩을 바닥에 뿌릴 때에는 누룩 분진으로 자욱하다.

잘 섞인 원료는 바로 옆의 거대한 지하 움집에 담는다. 움집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깊다. 들어가는 양이 많다 보니, 이동 크레인이 퍼담는다. 벽돌 마감이 되어 있는 움집이 40여 개가 되어 보이는데, 빈 곳도 있고, 이제 갓 채워 진흙으로 촉촉하게 덮은 곳도 있고, 발효가 한창 되어 겉이 마르고 희고 붉은 곰팡이가 핀 곳도 있다. 작업장의 가장 안쪽에는 증류솥이 있어서, 바이주를 만들어낸다.
 
양조장의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가 몇 개의 건물을 지나쳐 세 번째로 들어간 건물에는 숙성중인 술 항아리들이 들어있었다. 흙으로 구운 큰 항아리에 바이주를 담고, 술이 증발하지 말라고 비닐로 씌우고 다시 행운의 붉은 천으로 씌웠다.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지만 내부는 어두웠고, 천정은 낮았고, 항아리는 헤아리다 포기할 정도로 많이 펼쳐있었다. 한 항아리를 보니 7번 증류 공정중에 2번째로 받아낸 55도 장향형 술 500㎏이 2년째 숙성되고 있었고, 다른 항아리를 보니 7번의 증류 공정중에 4번째로 받아낸 53도 장향형 술 495㎏이 4년째 숙성되고 있었다.

그중 4년 된 항아리의 먼지 앉은 붉은 덮개를 열어보았다. 항아리 속의 투명한 술에 내 얼굴이 비친다. 술 향기에서 옅은 간장 냄새가 난다. 술 향기에 먼저 취한다. 안내인은 술을 한 국자 떠서 작은 잔에 채워준다. 입안에 들어온 술맛이 두툼한데 알코올 도수 53% 치고는 독하지 않다. 숙성의 힘 때문인지 무척 부드럽고 순해져 있다.

술 속에서 달콤한 맛도 따라오는데, 한 모금 삼키고 나니 코끝이 찡하고, 술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배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술을 다 넘겼는데도 입안이 따끔따끔하고, 입속이 부르튼 것 같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몸이 따뜻해진다. 어두운 숙성고 건물을 나오자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 속에 술항아리들이 가득 들어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발효를 시키는 지하 움과 증류솥. ⓒ 막걸리학교

 
네 번째 건물에는 누룩 제조장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우리처럼 누룩을 발로 디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누룩틀이 우리보다는 3배는 더 크다. 우리 누룩 틀은 두 발로 다 덮이는데, 마오타이 누룩틀 속에는 두 사람의 발이 쏙 들어갈 정도다.

내가 한 번 디뎌보자고 하니 남자는 너무 단단하게 디디니 안 된다고 한다. 마오타이 누룩은 외곽은 단단하게 디뎌도 중앙은 부드럽게 디뎌야 좋은 누룩이 된다고 한다. 뒷짐을 지고 맨발로 누룩을 디디는 여성들의 발놀림을 보고 있자니, 그 빠르고 유연함이 마치 악기를 다루는 것 같다. 완성된 누룩의 가운데는 부풀어 오르고 금이 가 있는데, 주변부는 평평하고 찰지고 단단하다.

누룩에 곰팡이를 띄우기 위해 누룩방으로 이동했다. 누룩방들이 복도를 따라 양옆으로 펼쳐졌다. 누룩방이 많아서, 거울 속에 끝없이 반사된 허상을 보는 것 같다. 누룩방의 외벽 밑에는 아궁이처럼 구멍이 뚫어져 있다.

열기와 습기를 조절하는 통풍구로 여겨졌다. 누룩방 문을 열어보니 헝클어진 지푸라기가 가득 쟁여져 있다. 짚 속에 누룩을 넣어서 띄운다고 한다. 안내인은 마오타이진의 독특한 술맛은 이 누룩에서 비롯된다면서, 지푸라기 속에서 단단하게 굳는 누룩 한 덩이를 꺼내 보여줬다.

그런데 누룩과 함께 작은 날벌레들이 날아올랐다. 누룩방 짚더미에 살던 날벌레들이다. 안내인의 하얀 옷에 앉은 벌레를 보니 크기는 초파리만 한데, 더 다부지게 생겼다. 안내인은 누룩벌레라고 했고, 이 벌레가 있어야 누룩이 잘 되는 줄을 안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초파리가 있어서 초산 발효가 되는 줄을 아는 것과 흡사하다.
 

복도를 따라 길게 펼쳐진 누룩방. 방 밑에 아궁이처럼 뚫린 구멍이 이채롭다. ⓒ 막걸리학교

 
거대한 양조 규모에 놀라워하며, 주중주 양조장의 순례가 끝났다. 양조장 정문을 나와 산길을 내오면서 뒤돌아보니, 숲이 울창한 산 속에 창문 크기가 같은 잿빛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너무 치장하지 않아 삭막해 보였는데, 그게 모두 술이 사는 방들이었다. 산 능선에는 술을 지키는 전망대도 있고, 깃발도 나부꼈다.

청년들의 씩씩한 팔, 여성들의 부드러운 발, 작은 누룩벌레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그 건물들 속에 산다. 세월을 두고 술이 익어가고, 세월을 두고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거대한 정유산업단지를 다녀온 기분이다. 기름을 만들어 차를 움직이게 하고, 술을 만들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 이념의 선동가들 속에 죽림칠현도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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