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6 13:13최종 업데이트 20.05.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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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시고 있는 술의 알코올 도수는 몇 도일까?"

술을 빚으면서 흥미로운 실험 중의 하나는 알코올 도수를 재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를 잴 때면 사람들의 눈빛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새롭게 인지했을 때의 놀라움과 신기함이 그 눈빛 속에 담겨 있다.

술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전까지, 알코올 도수는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막걸리는 부드럽고, 와인은 달콤하고, 소주는 독한 술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를 알게 되면서, 알코올 도수에 담긴 세상의 변화를 보게 되었다.
 

술의 표면과 주정계의 숫자 표시가 만나는 지점을 읽으면, 알코올 도수를 알 수 있다. ⓒ 막걸리학교

 
술은 알코올이 1% 이상 들어간 음료를 말한다. 알코올이 0.9% 들어있는 모주는 술이 아니고, 알코올이 1.1%가 들어간 모주는 술이다. 무알코올 맥주나 무알코올 막걸리도 술이 아니라 음료이다.

다만 술의 질감이 나게 만들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술의 흉내를 내는 음료가 많아질 것이다. 술자리를 가지면 네 명 중 한 명은 약을 먹거나, 운전을 하거나, 치과 치료를 하거나, 술을 분해하지 못하는 체질일 테니 말이다.

옛 문헌을 보면 예주(醴酒), 단술이 곧잘 등장하는데 알코올이 몇 도였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단술을 감주나 식혜의 동의어로 여겨 무알코올 음료로 여기는데, 예전에는 단술에도 알코올 도수가 있었을 것이다.

1450년대에 기록된 <산가요록>의 술들을 빚어보면서 그 무렵의 술이란 알코올 중심이 아니라, 알코올이 들어간 달콤한 음료의 세계를 추구했다고 느꼈다. 오늘날에는 주스, 요구르트, 콜라, 초콜릿, 도넛 따위의 다디단 음료가 많아져서 술이 당분을 보충하는 음료 역할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조선 시대 약주들은 단 음료의 역할을 함께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막걸리는 일본 시장을 겨냥해 알코올 3% 캔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되고, 스포츠 음료로 야구장에서 마실 수 있도록 기획되기도 했다. 막걸리는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 6%다. 하지만 이 알코올 도수도 시대에 따라서 움직인다.

1949년 대한민국 주세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탁주, 막걸리는 도수가 높더라도 탁하면 탁주였다. 그런데 1949년부터는 탁주와 약주의 경계를 짓고 주세의 차이를 두기 위해서 알코올 8% 미만은 탁주, 8% 이상은 약주라 하게 되었다.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기구, 술을 끓여서 증류한 뒤에 도수를 잰다. ⓒ 막걸리학교

 
막걸리 도수가 크게 출렁인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1982년에 막걸리 도수를 6%에서 8%로 올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알코올 도수는 양조인들의 창의적인 이념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이었다. 막걸리 양조장들은 국가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알코올 8% 막걸리만을 만들어야 했다. 알코올 2%가 높아지자 사고가 나기 시작했다.

논두렁에서 농주를 마시고 넘어지면 수평 이동이라 웃으며 일어나지만, 건설 현장은 수직 이동이니 넘어지면 추락사로 이어졌다. 당시에 한창이던 서울 지하철 공사장에서 막걸리를 새참에서 빼게 되면서, 건설 현장과 막걸리의 결별이 시작되었다. 막걸리의 출고량이 1982년에 130만㎘에서 1983년에 85만㎘로 줄어든 것은 알코올 도수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는 막걸리 도수를 양조인들이 자율로 결정한다. 알코올 도수 1%가 넘고 탁하면 막걸리가 된다. 현재 상품화되고 있는 막걸리의 최고 도수는 충남 아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상헌 탁주로 알코올 19%다. 그런데 요사이 막걸리 도수에 변화의 조짐이 생기고 있다.

일찍이 은척양조장의 은자골탁배기가 5%를 고집했는데, 지평주조의 지평막걸리, 서울탁주합동의 인생막걸리, 국순당의 1000억 유산균막걸리들이 도수를 내려 5%로 출시하고 있다.
 

술이 담긴 메스실린더에 주정계를 넣고 알코올 도수를 재다. ⓒ 막걸리학교

 
알코올 6%에서 5%로 막걸리 도수가 1%가 낮아졌다는 것은, 부드러운 술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고,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표시다. 절대 노동량이 줄고, 스트레스의 총량도 줄고, 세상도 좀더 평화로워졌다는 징표로 읽어줄 만한다.

맥주는 일반적으로 알코올 4~5%를 유지하고 지게미도 없어서 가볍게 마시는 술이다. 그런데 최근에 크래프트 맥주의 붐이 일면서 맥주 도수도 소수점 이하 한 자리 숫자에서 결정될 만큼 다양해지고 섬세해졌다.

수입되는 에일 맥주, 그중에서 벨기에 수도원 출신인 두벨은 알코올 6~7.5%를, 두벨보다 더 강한 트리펠은 7.5~9.5%로 진하고 묵직하고 강렬한 맛을 추구하고 있다. 구구한 설명이 없이 이 술을 권했다가는 자칫 원수가 되기 쉽다.

와인은 포도 열매의 완성된 당도에 따라가기 때문에 알코올에 변함이 적다. 알코올을 추가로 넣어서 만드는 알코올 강화 와인이나, 포도를 얼리거나 졸여서 빚는 경우가 아니라면 와인은 순탄하게 12~13%에 도달해 있다. 자연의 이치에 가장 순응하는 점잖은 술이 와인이다.

증류주는 나라별로 시대별로 달라진다. 우리의 소주도 시대별로 도수가 달라졌다. 진로 소주를 예로 들면 1924년 처음 출시될 때는 알코올 35%였고, 1965년에 30%로 내려왔고, 1973년에 25%로 더 내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아~' 소리를 내며 소주를 마셨는데 1998년에 23%로 낮아지면서 소주가 밍밍해지고 싱거워졌다.

2015년에 나온 '순하리 처음처럼'은 12~14%로 내려오면서 소주 베이스 칵테일을 표방했다. 소주의 정체성을 버리면서 새로운 알코올 음료의 시장을 찾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은 20.1%와 16.9% 제품이 소주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니, 부드럽고 순하고 깔끔하고 뒤끝이 깨끗한 것이 소주가 추구하는 정체성이 되고 말았다.

쓰고 독했던 소주가 부드럽고 순하고 깔끔함을 추구하고 있다니, 그것은 위선적이다. 시원한 맥주가 크래프트를 표방하면서 쓰고 독하고 진해지다니, 아주 무모해 보인다. 텁텁하고 개운하던 막걸리가 부드럽고 달짝지근해지다니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알코올 도수를 들여다보면 세상이 변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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