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9 20:02최종 업데이트 20.06.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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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전 이한열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1987년의 청년들에게 2020년의 청년들이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진은 이한열기념관에 전시된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유품. ⓒ 와글

     
"SM이 뭐예요?"
"아, SM 처음 들어보세요?"
"기획사 이름 아녜요?"
"기획사요? 하하하" 


80년대 유인물과 대자보가 전시된 서울 신촌의 이한열기념관에서 청년들은 낯선 운동권 용어들을 신기해 하며 물었다. '학생운동'(student movement)이란 용어마저 불온시되어 영어 첫글자를 딴 은어로 소통해야 했던 33년 전 청년 학생들의 삶과 꿈은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을까?  
 
지난 6월 8일,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활동가 세 사람과 이한열기념관 앞에서 만났다. 엄재연(98년생, 대학생), 강준원(90년생, 사회혁신 '해봄' 활동가), 민경인(82년생, 사회혁신 '해봄' 협동조합 이사) 모두 이한열기념관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회적 방역조치로 휴관중인 기념관에 내방객은 취재목적으로 방문을 허락받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마스크를 쓴 채 기념관을 둘러봤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썼던 1987년 청년들의 사진 앞에, 전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로 마스크를 쓴 2020년의 청년들이 섰다. 영원히 젊은 청년의 얼굴로 남아 있는 이한열의 사진을 바라보며 짧은 추도의 시간을 가진 뒤 자리를 옮겨 두 시간에 걸쳐 6월항쟁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진행은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이 맡았다. 

임진왜란처럼 아득했던 6월항쟁
 

왼쪽부터 민경인, 이진순, 엄재연, 강준원 ⓒ 와글

 
- 이한열기념관은 다들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제일 인상에 남는 전시물이 뭐였어요?
강준원(아래 강): "제일 울컥했던 건 이한열 열사가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예요. 제게 이한열 열사는 굉장히 특출나고 의식화된 의인 같은 이미지였는데, 어머니한테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 성실히 살겠다'고 쓴 손편지를 보니까, '아, 이 사람도 나랑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청년이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범한 대학생이 역사적 계기와 사건을 만나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구나'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엄재연(아래 엄): "전 편지가 무척 비장하다는 점이 오히려 생경했는데요. 전 엄마한테 주로 하는 말이 '엄마, 나 10만 원만...' 하는 건데 (웃음) 어떻게 그런 편지를 썼을까."

- 시대적인 분위기가 다른 탓이겠죠. 엄재연님은 이한열 열사와 같은 나이시죠? 
: "네, 22살이요. 87년 6월은 제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고, 저는 6월 항쟁을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세대예요. 중학교 때까지는 제게 6월항쟁이란 임진왜란과 별 차이가 없었어요. (웃음) 근데 2016년, 제가 고등학생 때 (박근혜 탄핵) 촛불에 참여하면서, '이게 그렇게 옛날이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재연(성공회대 3학년, 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공보국장) ⓒ 와글

 
- 엄재연님이나 강준원님은 6월항쟁 때 태어나지 않은 세대였어요. 민경인님은 어때요?
민경인(아래 민): "제가 어렸을 때 연희동에 살았는데, 6월항쟁 즈음에 명지대랑 연세대 쪽에서 맨날 최루탄이 터졌어요. 당시에 6살이었는데, 우리 동네까지 최루탄 연기로 눈이 매웠고 함성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나요. 조금 자라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신문배달을 했는데, 신문 돌리던 구역 안에 전두환, 노태우 집이 있었어요. 거기는 너무나 평안하고 경호요원들도 있고, 2~3미터가 넘는 담장 안에 전두환, 노태우가 여전히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 6.10이 여러분에겐 아득한 부모세대의 이야기였을 거예요. 우리도 어렸을 땐 부모님들이 6.25나 4.19 얘기를 할 때 그렇게 느꼈거든요. (웃음) 
: "6월항쟁이 임진왜란하고 다를 바 없었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1987년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깊은 공감을 하게 된 건 오히려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서였던 것 같아요."

엄: "대화를 할 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중요하잖아요. 우리 부모세대가 87년에 자기가 뭘했는지 영웅담이나 추억팔이를 할 때는 딱히 공감할 구석이 없어요. 그 당시 대학생들은 취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세대였다고 알고 있어요.

대학 들어가자마자 취업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산업화와 호황의 이익을 충분히 누렸던 80년대 세대가 옛날얘기를 하면 자꾸 삐딱한 생각이 들지요. 청년 이한열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명문대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자식에게 신분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과 어떻게 달랐을까 하고요."

1987세대가 2020년의 청년과 소통하는 방법

- 1987년에 20대였던 이들의 '라떼는...'(나 때는...) 스토리가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단 말씀이군요. 
: "과거에 대한 회상은 좋지만, 그게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그때랑 지금은 완전 다른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청년들이 게으르다든지, 너무 스펙 준비만 한다든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오히려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죠."

: "저는 그 시대를 지나온 분들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고 봐요. 자기 인생을 투신해서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 지역운동을 한 분들도 많이 계신데 사회적으로 대단한 입지를 가졌다거나 경제적인 보상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래서 아래 세대한테라도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싶고요.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다른데 자꾸 과거에 관한 얘기를 하니까 갭이 커지는 것 같아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요즘에는 허리가 뚝 끊긴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요. 20·30대를 중간에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고요. 어떻게 그 갭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강준원(사회혁신‘해봄’ 협동조합 활동가) ⓒ 와글

 
- 그런 세대간의 격차를 줄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80년대 세대가 자꾸 영웅담이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성공담으로 비춰지잖아요. 이게 과연 성공한 건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절차적) 민주화는 이뤘다고 하더라도, 경제 민주화는 달성하지 못했는데 그게 과연 성공일까요?

저는 국제NGO조직에서 일하고 있는데 글로벌 스탠다드 차원에서 내려오는 시민운동 성과지표가 굉장히 엄격해서 매번 사업을 할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자꾸 눈에 띄어요. 심지어 죄짓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 시민운동을 평가하는데 그런 평가지표를 적용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를 나눠야죠.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상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길도 제시해 주지 않아요."

- 요즘 5.18에 대해서나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턱없이 폄하하고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많다보니, 청년들이 실상을 모를까봐 염려하는 어른들도 많아요. 그래서 자꾸 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 수도 있고요. 
: "전 딱히 걱정을 안하는 게 우리는 적어도 공교육에서 민주화운동을 배운 세대잖아요. 뭐가 진실이고 팩트인지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배웠다고요. 전 오히려 윗세대가 가짜뉴스에 더 취약하지 않나 싶어요. 80년대 당시에도 왜곡된 신문기사를 접했고 지금은 보수 유튜버들의 왜곡된 영상을 보면서 가짜뉴스에 몰입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임진왜란을 직접 겪은 사람들보다 500년 후의 현대인들이 그 역사적 의미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전 현재의 20대가 5.18이나 6.10의 역사적 의미를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해요."

-  일리가 있는 말씀이네요. 역사인식에 관해서 청년세대를 장년층이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란 소설에 보면, 1920년대 당시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청년들이 방황하고 타락해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 시대에 사람들이 '너네는 길을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다'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때 헤밍웨이가 '웃기지 마라' 하면서 이 소설을 쓴 거예요. 이전 세대는 어떤 빌런(악당)이 있거나 사건이 있기 때문에 저항하고 나온 세대지만, 청년들은 그런 거 없이도 내면에서부터 무언가에 대한 갈구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실현해 나가는 세대라는 거죠. 세대를 보는 관점, 인식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경인(사회혁신 '해봄' 협동조합 이사) ⓒ 와글

 
87년 이후,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  87년 이후 우리 시민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요? 요즘 윤미향 사건이나 정의연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많은데, 회계 불투명과 피해 당사자를 소외시키는 운동방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조건에서 30년 운동을 이끌었던 시민운동의 가치를 폄훼하지 말라는 입장도 있어요. 개인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지만, 세대간에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민: "제가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저희가 일을 제대로 못할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집단은 누구일까 하는 점이에요. 저는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는데, 저희가 일을 잘해내지 못하면 가장 피해를 입는 건 현장에 있는 가난한 아이들이거든요. '30년간 일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시는데, 애초부터 그 일을 하려고 거기 가신 거잖아요. 최대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내가 30년간 헌신했다'는 얘길 앞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라는 게 말 그대로 무브먼트(movement), 바로 바로 움직이고 다변화해야 하는 건데, 87년 이후 시스템 전환이 안되었고 업그레이드 되지 못한 게 문제 아닐까요?"

- 시스템 전환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민: 제가 활동하는 국제개발NGO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활동을 해요. 제가 캄보디아나 베트남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이게 다 바로바로 시각화돼서 핸드폰에 떠요. 거기서 우물 짓는 사업에 제가 300만 원을 쓴다고 하면 전체 사업비에서 실시간으로 300만 원이 빠지고 이런 현황이 모두 공개되죠. 이건 후원자들도 볼 수 있어요. 이렇게 해야 나중에 책임질 문제가 안 생기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도 구축되지요. 우리 시민사회도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잘 맞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실수가 생길 부분을 예방하거나 백업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 사실 그게 엄청난 기술이나 자본이 필요해서 못하는 일은 아닐 거라고 봐요. 원격근무도 하고 온라인 수업도 하는 마당에... 시민운동이 자체 혁신과 시스템 전환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귀 기울여야 할 소리입니다. 
강: "저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에 삶을 바쳐온 분들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정의연 사태가 터지면서 제 주변의 활동가들도 회계상의 오류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벌벌 떨면서 세무사 소개해 달라는 연락을 많이 해요. 활동가가 한 명이거나 기껏해야 2~3명짜리 영세한 시민운동단체가 많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부정을 당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정의연이 공격받는 걸 보면서 울분을 토하는 분들 정서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간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바쳐온 분들에 대한 존중이 우리 사회에서 있었나요? 색깔론으로 몰아붙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온 것도 사실이잖아요. 회계 부정 의혹에 관해서는 검찰이 지금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경인님 얘기처럼 활동의 성과를 면밀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이나 지표가 없었다는 게 문제라는 점에 동의합니다만, 우리가 시민사회 활동가들에 대한 존중을 잃게 되면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 의해서 이 사회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 "시민사회 활동가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윤미향씨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미향씨는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순간 정치인이 된 거잖아요. 국회의원에게 정치라는 건, 4년에 한번씩 칼을 받을 것인가, 칼을 손에 쥘 것인가에 대해 대중의 검증을 받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윤미향씨는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검증받지도 않았고 위안부 피해자 운동을 해왔다는 상징성만 가지고 나왔어요. 근데 상징성마저 잃었다? 그럼 정치인으로서 엄중하게 판단을 받아야죠."

강: "저도 그 대목에는 동의합니다."

: "민주당 사람들이 87년 민주화운동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김대중·노무현을 브랜드로 삼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단 말예요. 말이 비례연합정당이지 관제야당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관제야당 만들어서 정치한 게 누구예요? 전두환이잖아요. 전두환에 대항해서 민주화운동 했다는 사람들이 똑같이 관제야당 만드는 게 얼마나 모순적이에요? 총선 지나고 5.18묘역 참배를 갔었어요. 거기서 민주당 50대 60대 아저씨들이 나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걸 봤는데 너무나 위선적으로 느껴졌어요."

"균열이 있는 얼음판 위를 같이 걷자"

- 지금의 청년세대라고 해서 생각이 다 같은 게 아니듯이, 80년대 세대라고 다 같은 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되게 힘들잖아요. 지쳐 있는데도 20년, 30년을 계속 해왔을 거란 말이에요. 저는 '우리가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듯이, 우리 또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 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 "1987년 6월 말고 2020년 6월을 살면 좋겠어요. 87년 6월은 이제 옛날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IMF 이후에 태어난 애들인데, 아직도 87년을 살면 어쩌자는 겁니까? 민주화에 기여한 부분은 감사하게 여기지만 그걸 계급장으로 앞세우진 않으시면 좋겠어요."
 
: "저도 덧붙여서 한마디 더 하고 싶은데요, 윗세대가 우리세대에 대한 존중을 하는 것부터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성의 확장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가지고 와서 그게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운동성이 확장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운동성을 확장하기 위한 고민을 같이 하면 좋겠어요. 그때의 좋은 뜻과 의지를 어떻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향유할 수 있을까? 운동성을 확장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해요."
 

영원히 22살로 남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22살 같은 나이인 엄재연이 바라보고 있다. ⓒ 와글

 
- 끝으로 1987년에 2030이었던 이들에게 지금의 2030으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것이 지금 청년세대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영웅담을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정당성으로 활용하고 있잖아요. 저는 이 해석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가져올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가 제일 고민입니다. 조만간 그 해석을 우리 것으로 '빼앗아 드리겠다'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동 웃음)"

: "사실 따지고 보면, 장년세대 중에서도 무용담을 얘기할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봅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인생을 갈아넣는 시간을 보낸 선배들한테 고생 많으셨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시를 썼는데요. 비겁한 이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궁시렁거리면서 뒤돌아 가는데, 용기있는 사람들은 낭떠러지로 뛰어내리잖아요. 그렇게 낭떠러지 아래 차곡차곡 쌓인 선배들의 삶이 낭떠러지를 메우고 조그마한 길을 냈다고 생각해요.

이한열 열사처럼 그 당시 다른 걸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낭떠러지에 몸을 던진 분들의 존재를 절대 부정할 수 없고요, 그분들께 너무나 감사하죠. 하지만 2020년 6월을 사는 청년으로서, 이제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균열이 많은 얼음판' 위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 얼음판 위를 같이 건너자'고, '손잡고 연대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민경인이 쓴 시는 80년대 뜨거운 가슴으로 거리에 섰던 과거의 청년들에게 오늘의 청년이 보내는 헌시이자, 이 살벌한 살얼음판을 같이 건너보자고 조심스레 내미는 연대의 손길이다. 2020년의 청년들에게 87년 6월이란 '어른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함께 풀어나갈 오래된 숙제'이므로. 
 
비겁한 이들이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사이에
용기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낭떠러지로 뛰어내려 버린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매번
비겁한 이를 승자로 기록하는 우를 범해왔다

용기있는 자들이 가슴에 흘린
눈물들을 기억하는 밤에
또 다시 나는 잠을 쉽게 청하지 못하고
한 없이 그들이 뛰어내린 역사의 낭떠러지를 본다

(중략)

그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밟으면서
그들의 눈물을 헤아리고 멈춰선다

이 노래를 당신들께 바친다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갔던
그 용기를 노래하며,
흥얼거리며 잠깐 멈춰선다

민경인 시, <잠깐 멈춰선다> 중에서
덧붙이는 글 좌담을 기록한 김한샘씨는 재단법인 와글 매니저이며, ‘청년정치 와글와글’ 기획기사를 주로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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