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 07:51최종 업데이트 20.07.07 07:51
  • 본문듣기
수능이 끝나고 나는 모든 원서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접수했다. 그 학교들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명문대'였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겨우 그 대학에 가려고 서울까지 가냐'고 수군거리기도 했고, 부모님 역시도 부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 괜찮은 학교에 가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다.

하지만 내게 어떤 대학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부산이 지겨웠다. 서울에서 생활할 수만 있다면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다만 나는 몰랐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집에서 자란 내가 물가도 땅값도 높은 서울에서 심지어 대학생의 신분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면 어떤 고생길을 거쳐야 하는지를.

나는 막연히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크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예상은 첫 단계부터 와르르 무너졌다. 대학의 기숙사는 수용률이 턱없이 낮아 지원조차 할 수 없었고, 학교 근처의 원룸들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집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학교와는 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거가 해결된 이후에는 생계문제가 다가왔다. 아르바이트로 받는 급여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적었다. 여가는커녕 식비까지 줄여야 할 수준이었다. 다행히 당시 살던 고시원은 밥과 김치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도시락에 밥과 김치를 담고 미리 사둔 '3분 카레'를 들고 학교로 갔다. 계좌의 잔고가 점점 바닥으로 향하는 월말에는 그게 내 점심이었다.

모두가 '취준생'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언론이 부정확한 보도로 분노를 키울 때 날아간 것은 당사자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 불필요한 분노와 절망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사진은 1일 인천국제공항 인근 조형물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은 또다시 찾아왔다. '서울로 대학만 오면'이 이제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만 한다면'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때에도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야기는 횡행했고 점점 높아지는 청년실업률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하지만 초라한 현실 속에서 한줄기의 희망만을 손에 쥔 사람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위험신호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버티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은 다가온다. 점점 졸업이 가까워지며 내가 손에 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로스쿨 진학을 알아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결국 취업을 준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게 노량진에 들어가 시험을 준비한다면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점점 정년퇴직이 가까워지는 부모님을 보며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몇 년이 될지 기약이 없는 수험생활을 지원하는 것보다 본인들의 노후를 대비하는 게 부모님에게는 훨씬 나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비슷비슷하게만 보였던 나와 대학 동기들의 삶은 여기서 갈라졌다. 집안에 여유가 있었던 친구들은 대부분 노량진 행을 택하거나 혹은 로스쿨에 진학했다. 몇 년의 시간을 아무런 경제활동 없이 미래를 대비하는 데 쓰는 게 그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달랐다. 아무런 소득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급함은 커져갔다. 속절없이 길어지는 옥탑방 생활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한 번 희망을 접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노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들

결국 졸업 후 방황을 거듭하던 나는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고 이후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정규직이지 고용안정성은 꿈도 꿀 수 없는 자리였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기업이 그렇듯 나의 첫 회사도 막연한 성장가능성이 있을 뿐 안정성은 그리 높지 않은 소규모 조직이었다. 투자자들이 마음을 바꿔 돈줄을 끊어버리거나 목표한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존립이 어려워지는 그런 기업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나가거나 방출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력을 데리고 있는 것을 회사는 불필요한 지출 이상의 위험으로 여겼다. 근로기준법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20명이 조금 넘는 조직에서 눈치와 의구심을 한몸에 받으며 해고를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몇 년의 시간을 첫 회사에서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학벌, 자격증, 좋은 성적표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는 게 실제 회사 생활에선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학벌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그룹을 형성하는 사례를 듣긴 했지만, 적어도 업무의 영역에서 '스펙'이란 사실 별로 쓸모가 없었다. 회사에는 '그 좋은 대학을 나와서 일을 저렇게 못 하냐'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경력도 자격증도 없지만 도무지 대체가 불가능한 직원도 있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3개월의 인턴을 거쳐 채용이 되었지만 결국 확인하게 된 것은 내가 회사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이 무능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팀장으로부터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렵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망도 분노의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때가 온 것 뿐이었다. 그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는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의 잘못이 절대 아닌데.

누가 청년을 무시하는가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비정규직이었던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된다는 뉴스를 들었던 날(사실 이조차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들은 공개경쟁 방식을 통해 직고용이 되기 때문에 탈락의 우려도 있고 그리하여 가게 될 자리는 무기계약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이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논쟁의 대상이 되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내부구성원들의 마찰이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일이 '불공정 채용', '로또 취업'으로 불리며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를 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채용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건 부적격자들이 자리에 앉게 된다는 뜻일 텐데, 몇 년의 시간 동안 보안검색 노동을 하며 능력을 입증해온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반대로 아주 정당함과 동시에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닌가. 오히려 '스펙'과 시험으로 업무능력을 가늠하는 채용절차 보다도 훨씬 근거가 명확하기도 하다.

언론은 '부러진 펜 운동'을 벌이며 이번 사건을 '로또 채용'으로 규정하고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는다는 목소리를 불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라 손쉽게 규정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자면 의구심이 든다. 모든 '청년'이 취업 문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조건은 좋은 자리에 취직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시험을 준비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청년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은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한 집단의 목소리를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정확함을 지적하고 싶다. 오히려 이는 공정한 채용 문제를 공기업/대기업 공개채용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낳기도 한다. 이조차도 시도할 수 없었던 청년들을 더 보이지 않게 만드는 셈이다.

다시금 돌아보면 이번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일부 청년들의 불만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대학 생활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에 새로운 경험이지만 그게 그 사람이 체험하는 사회의 반경이 크게 확장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캠퍼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와 같이 수업들을 들었고 여러 모임에 참석했다. 그중에는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고 집과 학교만 오가는 이들도 많았다. 사회의 많은 부분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고 구직시장과 노동현장도 그런 분야 중 하나였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취업이 단순히 노력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 '스펙'이 그 자체로 업무능력까지 보증해주지 못 하며, 그렇기에 채용의 절차가 오로지 공개경쟁과 점수 싸움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채용이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노동에 뛰어든 경험이 없었다면, 나 또한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의 정규직화가 그리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는 작금의 사태에서 '불공정 채용'을 주장하는 이들이 '뭘 몰라서 그런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딱히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그들의 발언이 어떤 경험과 인식을 토대로 했는지 고민하고 그에 걸맞게 대하는 일은 필요하다. 이건 취업준비생들의 말을 무겁게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상대방의 발언을 진지하게 대할 때만, 그들의 주장을 깊게 바라보고 어떤 조건과 입장에서 나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떤 부분을 경청하고, 어떤 부분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지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들은 일부 청년들의 말들을 액면 그대로 옮기며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데 급급했다. 부정확한 정보로 이들의 분노를 키우기에만 바빴다. 그 와중에 날아간 것은 당사자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 불필요한 분노와 절망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정말 묻고 싶다. 진정 청년들을 무시한 건 누구인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