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1 08:41최종 업데이트 20.07.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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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욱 중앙방역대책부본부장 ⓒ 연합뉴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 마스크 착용과 관련,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나 각국의 지침대로 말씀드렸던 점을 항상 머리 숙여 죄송하게 생각한다."

지난 18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브리핑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한 지난 6개월간의 소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답변을 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코로나19 초기인 3월 3일 "마스크 착용을 우선해 권고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었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감염 위험이 5배 증가한다"며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고 입장이 바뀐 데 대한 회한이 묻어나는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권 부본부장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WHO부터 마스크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싱가포르의 경우 리셴룽 총리가 직접 나서서 환자가 아니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리셴룽 총리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인 1월 31일 감염병센터(NCID : National Centre for Infectious Diseases)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You do not need a mask to go around Singapore, or to be at work if you are well. Because there is no community spread of the virus and the mask gives you a false sense of security. Because most of the time, you do not get the virus from breathing it in, you get it from contact and you need to take the rest of the precautions to wash your hands, to keep yourself clean, and to know when you are unwell and to stay away from others."

"건강한 사람은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일하는 동안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의 지역감염이 확산이 없고, 치안 관련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호흡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체적 접촉에 의해 바이러스가 감염됩니다. 따라서 손을 씻고, 몸을 깨끗이 하며,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다른 사람과 멀리하는 등의 예방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초기 싱가포르에서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홍보했습니다. ⓒ 싱가포르 MOH

 
뒤를 이어 2월 5일부터 배포된 보건부(MOH : Ministry of Health)의 마스크 착용법 관련 유인물에도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마시오. (Do not wear a mask if you are well)"라고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마스크가 코로나19의 전염을 막는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여겼고, 공산품을 수입해서 쓰는 싱가포르의 특성상 시민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 의료진이 사용할 물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사회 혼란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2월 1일부터 가구당 4매씩 천 마스크를 나눠줬습니다. 평소에는 쓰지 않더라도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갈 일이 있다면 마스크를 쓰고 가라는 의미였습니다.

상황 바뀌자 마스크 준비 꼼꼼히

3월 이후 코로나 환자가 많이 증가하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4월 10일 싱가포르 환경부(NEA: National Environment Agency)는 시장과 대형 마트에 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지침을 내렸고, 4월 16일부터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후로 집 밖에서는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상황은 단 두 가지, 식당에서 뭔가를 먹을 때와 밖에서 운동을 할 때뿐입니다. 일부 식당에서는 식사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어 놓을 수 있는 봉투나 받침대를 따로 준비해 놓을 정도로 마스크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일부 식당에서는 식사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어 놓을 수 있는 봉투나 받침대를 따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 이봉렬

 
지난 6월 29일부터는 2차로 무료 마스크가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비영리기구 테마섹 파운데이션에서 배포하는 이 마스크는 재생이 가능한 항균 마스크로 한 사람당 두 개씩 받을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구입하는 비용도 문제지만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지는 걸 막기 위해 재생이 가능한 걸로 준비했습니다.
 

버스터미널에 있는 마스크 자판기에서 한 시민이 마스크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자판기가 부산시보다 작은 싱가포르에 1200개가 있습니다. ⓒ 이봉렬

 
특이한 점은 마스크를 동사무소나 약국 등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받는 게 아니라 자판기를 통해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버스터미널이나 커뮤니티 센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모두 1200개의 자판기를 설치하여 신분증을 스캔하거나 (싱가포르 신분증에는 바코드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IC번호를 입력한 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무료 배포가 끝나면 유료로 전환해 필요한 사람이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가족 수에 따라 저희는 모두 8개를 자판기에서 꺼내 왔습니다. IC번호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족이 모두 갈 필요없이 저 혼자서 8개를 금방 다 받아 올 수 있어서 상당히 편리했습니다. 모양도 좋고, 항균 기능도 있고, 끈의 길이도 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고급스러운 제품입니다.
  

마스크가 두 개씩 들어 있습니다. 항균도 되고 서른 번 이상 세탁해서 쓸 수가 있습니다. ⓒ 이봉렬

 
코로나19가 한번 유행하고 말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오래 사용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환경을 위해서라도 일회용 대신 재생이 가능한 마스크를 모든 국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무료가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쉽게 마스크를 구할 수 있도록 준비는 해야 합니다.

마스크를 권고하지 않을 때는 상관없지만, 정부가 나서서 온 국민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할 때는 이 정도의 후속조치는 있어야 한다는 걸 싱가포르의 마스크 자판기 1200대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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