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 08:45최종 업데이트 20.08.0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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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병에 들어간 민속주 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명품 안동소주, 양반 안동소주. ⓒ 허시명


안동과 진도는 한국 증류식 소주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고장이다. 안동에는 안동소주를 만드는 제조장이 민속주 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로얄 안동소주, 안동소주 일품, 명품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안동소주 올소, 안동 진맥소주까지 해서 여덟 군데가 있다. 대구의 금복주도 안동소주를 만드니 이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아홉 군데에서 안동소주를 만든다. 누군가 또 안동에서 소주를 빚게 된다면, 안동소주의 숫자가 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안동소주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최근 밀 농사를 지어 안동 진맥소주를 출시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쌀을 재료로 발효해서 증류한 쌀소주들이다. 그중에서 전통 밀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한 술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 안동소주와 신생업체인 진맥소주다. 다른 증류주들은 쌀에 백국균을 키운 흩임누룩을 기반으로 만들거나, 개량된 발효제를 사용하고 있다.

소주의 발효제가 전통 밀누룩에서 흑국균을 키운 흩임누룩으로 급격하게 바뀐 것은 192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20년대에 흑국이 새로 도입되어 처음에는 재래 누룩과 반반씩 섞여 쓰이다가 점차 분량이 늘어나면서 흑국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1919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주정식 소주와 대항하면서 재래식 누룩소주가 채산이 맞지 않아 흑국소주로 바뀌어 간 것이다.

한반도 서북쪽의 5도 소주업자들은 총독부의 통폐합 방침에 따라 1924년부터 3년에 걸쳐 합동 집약되어 점차 공장 형태를 이루면서 생산량도 급증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24년에 평안남도 용강군 진지동에서 진로 소주도 시작되었다. 그 변화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누룩소주에서 흑국소주로 바뀌는 과정 ⓒ 허시명


소주가 100년 전에 전통 누룩을 외면한 현상을 평가하자면, 그때부터 알코올의 수율과 수익률을 따져서 그 제법이 변해왔고, 상업화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현재도 흑국의 변이종인 백국을 사용하여 만든 안동소주의 가짓수가 더 많으니, 그 맥이 안동소주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안동소주에서 조선시대 전통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근대 산업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안동소주를 맛보려다가 지난 일까지 들춰보았다. 여름에 소주는 몸을 너무 뜨겁게 만들 수 있고, 게다가 안동소주는 45도가 기본이니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게 좋다. 안동에서 만든 여덟 종류의 안동소주를 맛본다.

이토록 다채로운 소주라니
 

유리병에 담긴 안동소주들, 금복주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진맥 안동소주, 올소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 허시명


민속주 안동소주는 멥쌀과 밀누룩을 사용한 45도 단일 제품만을 만든다. 상압 증류하여 밀누룩에서 올라온 농밀한 발효향을 인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 향은 두툼하여 고소한 견과류가 연상되기도 하고, 치즈나 버섯이나 지푸라기에서 풍기는 향을 닮아있기도 하다. 45도 활달한 알코올 기운 속에 옅은 장 냄새가 물안개처럼 흩어져 있다.

명인 안동소주는 멥쌀과 백국을 뿌려서 띄운 입국을 발효제로 쓴다. 3번에 걸쳐 술 담금하여 한껏 발효시킨 뒤에 감암 증류하여 만든다. 농밀하고 향긋한 바닐라향이 돌고, 겨울날 신선한 동치미 국물에서 느껴지는 새콤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45도의 강렬한 알코올향이 술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 밑으로 신맛이 깔려 있다.

로얄 안동소주는 21년 묵힌 숙성 소주를 가지고 있다. 오래 묵혀서인지 45도 알코올 도수임에도 향이 강하지 않아, 코를 대고 그 향을 음미할 만하다. 옅은 바닐라향 뒤로 잔잔한 불내가 따라온다. 한 모금에도 알코올의 강렬함이 입술에 소금을 뿌린 듯 날카로운데, 목넘김을 하고 나면 그 독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순하고 부드럽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맛의 속도감이 마치 전용도로를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처럼 안정감이 있다.

안동소주 일품은 17도, 21도, 40도 세 종류가 한 상자에 담겨 있다. 17도는 싱거운 물맛이 느껴지면서 쓰지 않고 부드럽고, 21도는 쓴맛이 느껴지고 불내도 나는데 17도보다는 훨씬 더 다부지고, 41도는 바닐라향이 올라오면서 알코올의 쓴맛과 함께 얇게 짠맛까지 느껴져서 21도보다는 훨씬 더 풍부하다. 세 종류의 술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밀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균형감 있는 맛을 유지하고 있다.

명품 안동소주는 45도와 16.8도를 맛보았다. 45도에서는 구운 토스트 향이 올라오면서 알코올의 독한 기운이 있지만 여운은 길지 않아 단정하면서 절제된 맛을 지니고 있다. 초록색 투명 소주병에 담긴 16.8도는 외형이나 술맛이 대중적인 희석식 소주를 닮았다. 쌀 증류 원액과 주정이 합해지고 감미료가 들어있어서, 감미료의 강한 단맛이 싱거워진 알코올 향을 안개처럼 덮고 있다.

회곡 안동소주는 다양한 제품군이 있는데 그중에서 42도를 맛보았다. 쌀, 입국, 누룩, 효모가 들어가서 빚은 발효 원주를 감압 증류하여 만든다. 달달한 향이 올라오고 화장수에서 풍기는 향기와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거칠고 강한 알코올 맛이 단맛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향과 맛이 억센 편이라서 입안에서 머무는 맛의 여운도 길다.

안동소주 올소는 20도와 35도를 생산하고 있다. 찹쌀을 주재료로 사용했고 밀이 들어간 발효제와 효모를 사용하여 감압 증류했다. 오크통에 숙성시켜서 황금빛 참나무색이 도는데, 20도와 35도의 색깔과 밀도가 정확하게 20대 35의 비율만큼 차이난다. 찹쌀의 담백한 맛 위로 오크 향과 맛이 안정감 있게 얹혀 있다. 단맛이 있고 뒷맛이 깔끔한데, 여운은 길지 않다.

안동 진맥소주는 직접 농사 지은 밀과 밀누룩으로 만들었다. 다른 7개의 안동소주가 쌀로 만들었기에, 진맥소주에서는 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밀 특유의 곡물향이 따라온다. 상압 증류하여 발효 원주의 향을 한껏 살렸고, 그 향이 안동 쌀 소주들보다는 더 두텁게 올라온다. 구운 토스트 향이 올라오고 구수한 곡물향이 머물러 있어서 독한 40도의 알코올 기운과 잘 어우러져 균형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술맛들도, 세상사처럼 달라질 것이다. 달라질 술맛을 붙들어두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이 술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맛볼 순간을 위해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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