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4 11:10최종 업데이트 20.08.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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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를 흔히 파인시티(Fine City) 라고 부릅니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의미와 벌금의 도시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들도 이 별명을 딱히 싫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벌금제도 때문에 치안이 유지되고 질서가 지켜지며 거리가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벌금의 나라"라는 걸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벌금이 많다는 사실을 싱가포르 기념품으로도 만들어 팝니다. ⓒ 이봉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거나(1000달러), 집에서 알몸으로 있는 것 (2000달러)에 벌금을 매기는 것 같은 싱가포르의 독특한 벌금 제도는 이제 한국에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게 벌금의 대상인지 몇 개 더 볼까요?

비둘기 등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500달러),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는 행위(1000달러),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음식을 먹는 행위(500달러), 금지된 장소에서 흡연(1000 달러), 쓰레기 투기(2000 달러), 자동차 엔진 공회전(2000달러).

이런 류의 항목은 그래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고 또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짐작하지 못했던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열차가 꽉 찼다고 판단되어 역무원이 제지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지하철을 탈 경우(500달러), 재활용품을 찾겠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행위(1000달러), 공공장소에서 허가없이 노래나 악기를 연주하는 버스킹(1000달러), 전자담배, 물담배, 씹는 담배 등 유사담배제품 소지(2000 달러), 공공아파트에 고양이를 보호하고 있는 경우(4000 달러), 인화성 물질을 들고 지하철에 탔을 때(5000 달러), 허락없이 이웃의 와이파이에 접속한 경우(1만 달러), 고의로 온라인에 허위정보를 유포한 경우(5만 달러).

표시된 모든 금액(1달러는 860원 정도)은 적발되었을 때 물게 될 최대 금액이라 사안의 경중에 따라 금액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금액이 높으면 높을수록 벌금과 함께 징역형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까지 벌금을 매기는 싱가포르라 처음 이민을 왔을 때는 늘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벌금에 대해 딱히 생각 안 하고 삽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법대로 혹은 정해진 규정대로 다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무단횡단은 여기서도 수시로 이뤄지는 일이고, 껌도 없어서 못 씹는 거지 가끔 한국에서 한 통씩 가져 와서 씹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 나면 걸어 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도 쓰레기를 잘못 버린다고 바로 경찰이 출동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화장실에는 센서가 달려 있어 물이 자동으로 내려 갑니다.
 

공원 입구에 공원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민족 국가에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많은 규제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 이봉렬

 
공공장소, 사람 많은 도심, 관광지 등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일상적인 활동으로 인해 벌금을 받을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벌금 제도가 있는 싱가포르에 올 해 초 코로나로 인해 몇가지 벌금이 더 생겼습니다.

코로나 확산이 시작된 지난 4월 7일부터 서킷브레이커를 선언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여러가지 규제가 시행되면서 그걸 위반했을 때 행위에 따라 벌금을 매긴 것입니다.

외출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공공장소 및 개인 주택에서 모든 개인적 모임 불가, 가족 외 누구도 초대 및 방문 불가, 외출 및 야외활동 시 다른 사람과 1m이상 간격 유지, 동거하는 가족외 다른 가구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운동 불가, 고객을 응대하는 분야 및 직장내 근무 시 마스크 착용 필수 등이 주요 내용인데, 이를 위반했을 때 최소 200달러에서 최대 1만 달러의 벌금에 6개월의 징역에 처해지도록 했습니다. 위반이 반복될 경우 최대 2만 달러의 벌금과 1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위반했을 때는 비자도 취소가 됩니다.

그 후로 싱가포르의 신문을 통해 수도 없이 많은 위반 사례가 보도 되었습니다. 그 중 몇가지만 보겠습니다.
 

집합금지기간 동안 친구집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넷플릭스를 함께 본 혐의로 벌금을 선고 받았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화면 갈무리

 
사례 1) 약혼 사이인 두 남녀가 친구 14명을 아파트로 불러 술을 마시고 함께 넷플릭스도 시청했습니다. 새벽 2시에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였고 법원은 그 중 10명에게 머문 시간에 따라 한 사람당 2500 달러에서 3000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나머지 6명은 아직 재판 중입니다.

사례 2) 미성년자 2명을 포함한 13명이 아파트 근처의 피트니스 코너에서 휴대용 테이블을 놓고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웃의 신고로 새벽 1시에 경찰에 의해 적발되었습니다. 그 중 4명에게 각각 4000 달러의 벌금이 선고되었고, 미성년자는 경고 처분, 다른 이들은 아직 재판 중입니다.

사례 3)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비치된 손소독제를 가져 가고,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찢었습니다. 이 행동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CCTV에 녹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법원은 벌금 4000달러를 선고했습니다.
 

집합금지 기간 중 강가에 모여서 술을 마신 외국인 7명이 9,000달러의 벌금과 함께 6명은 비자가 취소되었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화면 갈무리

 
사례 4)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로버슨키 강가에서 4명의 영국인, 2명의 미국인, 1명의 호주인이 근처 술집에서 산 맥주와 음료를 마시며 모여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 왔습니다. 경찰은 모임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하고 1미터 안전거리 확보도 지키지 않은 혐의로 이들의 신원을 확보해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한 사람당 8000달러에서 9000달러의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그 중 6명은 비자도 취소되어 싱가포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례 5)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을 때까지 사흘 간의 자가격리명령을 받은 한 청년이 자가격리가 끝나기 30분 전에 근처 푸드코트에 식사를 하기 위해 나갔다가 적발되어 벌금 1500 달러를 선고 받았습니다. 낮 12시까지가 자가격리 시간이었는데 오전 11시 30분에 집에서 나갔고, 자가격리를 확인하는 보건담당자가 11시 40분에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신고를 한 겁니다.

이처럼 싱가포르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한 경우라면 집안에서 벌어진 일에서부터 SNS를 통해 알려진 일, CCTV에 녹화된 일까지 모두 조사를 해서 무거운 처벌을 하고 언론을 통해 신상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 외에도 단순히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벌금 200달러를 물게 된 경우가 7월까지만 해도 1100건이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킷브레이크가 끝나서 제한적이나마 모임이 가능해진 지금도 마스크 쓰기라든지 1미터 안전거리 유지 같은 기본적인 감염병 예방 수칙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기숙사에 모여 있는 이주노동자를 제외하면 지역감염자 수도 하루 한 두명 수준으로 안정적입니다.

그 동안은 생활 속 사소한 일에까지 간섭하고 처벌하는 싱가포르의 과한 벌금 제도가 늘 불만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실천이 아니라 공권력의 강제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가 언제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같은 감염병 확산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은 과하다는 느낌 보다는 감염병을 극복하는데 정부가 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머지 않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게 만들어 줍니다. 일상에서 공권력은 보이지 않을수록 좋지만, 전쟁과 같은 지금 상황에서는 공권력이 제 일을 제 때 할수록 더 좋은 겁니다.

코로나 확산 일로인 상황에서도 서울 시내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집단 감염이 벌어지고 있는 교회는 교인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개개인 역시 검사를 피하고 있으며, 비대면 예배만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교회에 모이고 또 그걸 자랑스레 공개하는 게 하루 200명 이상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한국의 지금 모습입니다.  
 

사랑제일교회 관계자에게 멱살잡힌 방역요원. 이 과정에서 방역요원의 마스크가 벗겨졌다. ⓒ 권우성

 
코로나 예방을 위해 일하는 의료진이 욕설을 듣고 폭력을 당하는 모습에서 과연 정부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권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꼭 보여주길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거리에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던 시절이 불과 몇년 전이었기에 공권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마음 한 구석 불편하기는 하지만 공권력이 팔짱을 끼고 있는 동안 펼쳐진 무법천지에서 의료진이 공격을 당하고 무고한 시민들이 감염병에 노출되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장실에서 물 안 내리는 것에까지 벌금을 매기는 싱가포르의 모습을 따라 할 건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 예방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새벽 2시에 술 마시는 현장에도, SNS에 올라온 외국인의 불법 모임에도, 자가격리를 30분 일찍 끝낸 위반 현장에도 어김없이 나타나서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싱가포르의 단호함과 철두철미함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야 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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