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 18:43최종 업데이트 20.09.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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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8일부터 2020년 8월 28일까지, 꼬박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반년의 시간이다. 지난 8월 28일 멕시코 대부분의 언론 1면 헤드라인 기사에는 '6개월'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사실, 이렇게 긴 시간의 기록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뿐 아니라, 정부와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2월 28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첫 환자 발생 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난 8월 28일, 누적 확진자 수는 60만 명에 근접했고, 사망자 수는 6만 3146명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숫자였다.

멕시코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던 날. 세계보건기구의 수장은 마침 그날 기자회견에서 이 바이러스가 매우 파괴적이며 수많은 사망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같은 날 멕시코에 꾸려진 코로나바이러스 대응팀의 메시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보건부 차관을 대변인으로 내세운 첫 번째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거듭 강조된 바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멕시코에 끼칠 영향은 기존 독감과 유사할 것이며, 멕시코 보건 당국은 이를 통제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월 28일 멕시코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던 날 공중파 뉴스를 통해 소개된 이미지. 병상에 누운 환자의 이미지를 흑백으로 처리해 공포 분위기가 느껴진다. (Imagen 방송사 Ciro Gomez Leyva 뉴스 화면 캡처) ⓒ IMAGEN

 
보건부 차관의 메시지에 사람들은 적이 안심했지만, 언론의 보도는 달랐다. 첫 확진자가 입원한 병원 앞에 언론사들의 방송 카메라가 진을 쳤고, 환자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진 못하지만, 최대한 공포 분위기를 담아 소식을 전했다. 무엇보다도 당일 뉴스를 보고 시민들이 느낀 공포의 핵심은 확진자 가족들도 격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멕시코에서 기존 그 어떤 질병도 감염자의 가족이 같이 격리되어야 하는 경우가 없었기에, 이 사실 하나만으로 시민들은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배우자와 두 아이가 자가격리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첫 확진자의 가족에 대한 이미지 역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Imagen 방송사 Ciro Gomez Leyva 뉴스 화면 캡처) ⓒ IMAGEN

 
코로나바이러스의 황제, 우고 로페스 가텔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만큼이나 멕시코 언론에 많이 등장한 사람은 멕시코 보건부 차관 우고 로페스 가텔(Lopez Gatell)이다. 2월 28일 첫 확진자가 발표되던 순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국민 보고를 하다 보니, 금방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다. 매일 밤 8시가 되면, 전 국민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취소하면서까지 그의 대국민 보고를 생중계했다.

그의 설명은 매우 간결했고 알아듣기 쉬웠으며 더불어 과학적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멕시코는 충분히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간 멕시코에서 그 어떤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도 우고 로페스 가텔만큼 무제한적 신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정치적 주장이나 의견보다도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난세의 영웅'이라 했고, 또 다른 편에서는 이때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고도 했다. 언론사들이 쓰는 공식적 칭호는 그의 이름 앞에 붙은 '황제'(Zar)였다. 그의 말 한마디가 곧 진리였고, 온 국민은 그의 말 한마디로 위로받았다. 여느 정치인이나 연예인보다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의 출생과 성장 배경이 아름다운 뉴스의 한 단락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그의 말이 곧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의 부친이 1920년대 스페인 독재를 피해 멕시코로 망명했다는 사실과 그 자신이 대학생 때 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것 또한 그가 '황제'가 되는 과정에 일조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황제들이 그러하듯, 그의 호시절 또한 영원하진 않았다. 아니 그의 호시절은 너무 짧았다. 그가 매일 대국민 보고를 통해 발표하는 사망자 예측 숫자가 3천 명에서 8천 명으로 증가하고 이어 3만 명으로 다시 수정되는 순간, 국민들은 실망하기 시작했다. 난세의 영웅에서 순식간에 믿지 못할 사람으로 전락했고, 불같이 일었던 인기 또한 빠르게 사그라졌다. 그리고 지난 8월 그가 다시 사망자 예측 숫자를 3만 명에서 6만 명으로 수정했을 때, 그리고 그 6만 명의 예측 또한 현실의 숫자에 밀려 의미 없는 숫자가 되어버렸을 때, 국민들은 분노했다.

급기야 8월 초, 멕시코 32개 주 중에서 아홉 개 주의 주지사들이 연합하여 그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홉 개 주의 인구를 합하면 4천만 명이 넘으니, 4천만 국민들의 명령으로 사임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우매한 숫자 놀음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였다.
 

멕시코 아홉 개 주 주지사들이 연합하여 사임을 요구한 멕시코 연방 보건부 차관 우고 로페스 가텔. ⓒ 멕시코 연방정부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대 3천 명으로 예측된 사망자 숫자가 불과 석 달 사이 그 스무 배에 달하는 6만 명이 되었고, 종국에 가서는 이제 멕시코에서는 더 이상 사망자 숫자를 예측하는 일이 무의미함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마당이니, 국민들의 분노 이유는 충분하다. 동시에 난세의 영웅으로 등극하여 '차르'가 된 보건부 차관의 몰락 역시 이유가 충분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보건부 차관의 사임을 요구한 주지사들의 주장을 정치적 제스처로 일축했지만, 곤두박질 친 '차르'에 대한 민심까지 추스를 순 없었다. 이제 멕시코 사람들은 더 이상 '차르'의 말을 믿지 않는다. 2020년 9월 1일 현재, 사망자는 6만 5천 명을 넘어섰고 확진자는 60만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예측은 6만 명에서 더 이상 수정되지 않았다. 6만 명을 넘어서고도 여전히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이제 그 어떤 숫자가 나온다 해도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다. 어쩌면 어떤 예측도 내놓지 않는 것이 지금 보건 당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멕시코 코로나바이러스 현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차르' 우고 로페스 가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망자 예측에 대한 종지부를 찍었다. 사망자 숫자를 조정하거나 예측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최종 사망자 숫자는 갈 때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라고.

집에 머물러라, 그리고 열린 뉴노멀

멕시코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한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집에 머물러라'(Qeudate en casa)와 '뉴노멀'이다. 3월 22일 시작된 '집에 머물러라' 프로그램은 5월 31일 종료되었다. 약 70여 일 동안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6월 1일 시작된 '뉴노멀'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게 멕시코 코로나 시대는 두 개의 시기로 나뉜다.

'집에 머물러라'가 시작된 3월 22일 멕시코 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2명이었고, 누적 확진자 숫자는 316명이었다. 누가 봐도 크게 걱정할 만한 숫자가 아니었지만, 유럽과 같은 피해를 막자는 계산이었다. 멕시코의 여러 정황을 감안해볼 때, 서둘러서 나쁠 것 없다는 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보건부 차관이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집에 머물러라'는 5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며, 그동안 모든 비필수적 경제활동은 중단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기관에서의 수업도 중단되었다.
 

멕시코 연방정부와 보건부에서 만든 <집에 머물러라> 캠페인 포스터. 포스터 우측에 '나중에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 위에서는 지금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멕시코 보건부

 
경제적·사회적 손실이 분명했지만, 멕시코 보건 당국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다. '집에 머물러라' 프로그램이 잘 지켜진다면, 5월 초순경 코로나바이러스 증가 추세는 정점을 찍을 것이고 6월 하순이 되면 코로나바이러스 종식을 선언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때마다 호기롭게 발표되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각국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어떻게 무너지는지 학습이 된 상황이었기에, 대부분 시민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참고 넘길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건 당국이 예상했던 5월 8일이 되어도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뿐 도무지 정점에 닿지 못한 채 요원하기만 하였고, 계속하여 사망자와 확진자 증가 그래프가 가파르게 우상향 하였다. 그리고 6월 1일이 되어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머물러라'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약 70여 일 동안 숱한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이 제지되었지만, 그 사이 2명이었던 사망자 숫자는 1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고 316명이었던 누적 확진자 숫자는 1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뉴노멀'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간 봉쇄되었던 수많은 경제활동들이 순차적으로 재개되었지만 어쩌면 불을 지고 화약고를 향해 가는 격이었다. 6월 1일 뉴노멀이 시작되던 시점에 1만 명에 달하던 사망자 수는 불과 석 달 만에 6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누적 확진자 숫자도 같은 기간 1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실로, 노멀하지 않은 결과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추세가 여전히 정점에 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본감시와 집단 면역

첫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한 후 여섯 달 만에 60만 명의 감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멕시코에서 지금까지 행해진 진단검사는 130만 건이다. 검사 건 수 대비 확진 비율이 50%에 가깝다. 검사를 받는 두 명 중 한 명이 확진을 받는 꼴이다. 멕시코에 앞서 유럽에서 많은 사망자를 냈던 이탈리아나 스페인 그리고 영국 모두 1000명 당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던 것에 비해 멕시코에서는 1000명 당 0.4명이 검사를 받는다. 지극히 적은 숫자다.

상황이 이러니 세계보건기구뿐 아니라 관련 연구소들도 멕시코 보건 당국에 검사 건 수를 늘려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멕시코 보건 당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미 지난 4월 초, 코로나바이러스의 황제라 불리던 보건부 차관이 대국민 정례 보고에서 '표본감시'와 '집단면역'에 대한 내용을 슬쩍 흘린 바 있다.

멕시코는 전수감시가 아닌 표본감시로 갈 것이고, 집단면역 전략을 택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표본감시와 집단면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에서조차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일반인들이 이와 같은 전문 용어에 익숙할 리 없을 터. 보건 당국의 발표만으로 묻혀버렸다.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증상 중 어느 하나가 중증으로 발현되는 경우에 한하여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검사가 이루어진다. 이들 중에서도 호흡에 심각한 곤란을 느끼는 경우에 한하여 입원이 이루지기 때문에 입원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때 입원 환자들의 사망률은 40%를 상회하기도 했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인근 에카테펙 종합병원 밖에서 지난 5월 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환자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고인의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게다가 지역에 따라서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열흘 혹은 보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어, 일부 환자들의 경우는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여부조차 알지 못한 채 사망하기도 한다. 현재 멕시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치명률은 11%에 달한다. 어쩌면 작금의 상황이 표본감시와 집단면역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으나, 멕시코에서는 그 누구도 표본감시와 집단면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공식 숫자

지난 4월 8일의 일이다. 당일 누적 확진자 숫자는 3181명이었다. 자택대피령이 내려지던 3월 22일 316명이었으니, 불과 보름 사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하루하루 가파르게 상승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걱정스러운 상황인데, 당일 보건부 차관인 우고 로페스 가텔은 사뭇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보건 당국이 발표하는 확진자 숫자는 '공식' 숫자일 뿐 '비공식' 숫자가 따로 있을 터이니, 이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공식 숫자에 8.8배를 곱하라는 것이었다. 3천 명도 버거운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2만6천 명으로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보건 당국은 어느 나라든 공식 확진자 숫자와 비공식 숫자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였지만, 8.8배를 곱해야 현실의 숫자를 가늠할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보건 당국이 제시한 계산법에 따르면, 9월 1일 현재 누적 확진자 숫자가 60만 명을 넘어섰으니 실제로는 500만 명 이상이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셈이다. 확진자 숫자에서 멕시코를 앞서 가는 미국이나 브라질의 경우 몇 배를 곱해 실질적인 숫자를 가늠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점에 현재 세계 1위인 미국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한 암담한 숫자다.

사망자에 대한 계산법은 조금 다르다. 지난 8월 중순 사망자가 6만 명에 가까워질 때, 정부는 사망자 숫자에 대한 예측을 중단하고 그나마 현실적인 숫자를 가늠하기 위한 계산법을 내놓았다. 현재 사망자 숫자에 2.6배를 곱하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확진자의 경우보다 훨씬 낮은 배수에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보건 당국이 제시한 계산법대로라면 멕시코의 사망자 숫자는 이미 17만 명에 가까운 지경에 이른다. 며칠 새, 하루 동안의 사망자 숫자가 500명 아래로 내려오는가 싶더니 9월 1일 다시 800명을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사망자 순위 2위 국가인 브라질과 어쩌면 1위 국가인 미국을 넘어서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보건 당국의 논리대로 비단 멕시코뿐 아니라 여타 나라들도 공식적인 숫자 이면에 비공식적 계산법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애써 위안을 삼을 뿐이다.

공식적인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 수배의 곱을 하고 나서야 현실적인 숫자를 가늠할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멕시코 보건 당국이 전수감시 대신 표본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상이 명확히 나타나도 중증으로 진전되는 경우에 한해서 입원을 허락하는 집단 면역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보건 당국의 계산법대로라면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검사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자신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증상이 발현되면 주먹구구식 대증요법 정도의 자가 치료를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자가 격리는 생각지도 못한 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한다. 한국과 같은 동선 추적은 바랄 수도 없을 뿐더러 감염의 고리조차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호등

지난 6월 1일, 뉴노멀의 시대가 열리면서 '신호등'이 등장하였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이렇게 네 가지 색깔이 있으니, 각 주마다 상황에 따라 색깔을 조정하라는 보건 당국의 방침이었다. 색깔을 규정하는 기준은 그간 여러 차례 수정이 되긴 했지만, 가장 민감한 부분은 해당 주의 침상 포화율과 확진자 증가 추이다.
 

신호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보건부 차관. ⓒ 멕시코 연방정부

 
병원의 침상 포화율이 65%를 넘어서면 해당 주에는 빨강색 불이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의료 서비스 붕괴를 막고자 하는 의도다. 빨강색 불이 들어온 주에서는 필수산업을 제외한 모든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시민들은 자택대피를 하게 된다.

신호등의 주황색은 병원의 침상 포화율이 65% 미만으로 2주 이상 유지될 때 켜지는 불이고, 침상 포화율이 50% 미만인 상태가 2주 이상 유지되면 노랑불이 켜진다. 물론 1일 확진자 역시 감소 추세를 보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침상 포화율이 50% 미만인 채 한 달 이상 확진자가 감소 추세를 보이게 되면 초록색으로 전환된다. 가장 마지막까지 제한되는 활동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활동이고, 초록색에 이르러야 지난 3월 20일 이후 닫혔던 교육기관의 문이 열리게 된다.

실제로, 지난 6월 초 정부가 정한 '뉴노멀'이 시작될 당시 멕시코 32개 모든 주는 빨강색 신호등이었기에, 시민들은 여전히 집에 머물러야 했고 많은 경제활동들 역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조치는 멕시코 각 주 정부의 심각한 불만을 야기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70일 동안 이어진 자택대피령을 해제하면서 '뉴노멀'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실책에 대한 이미지를 세탁하고 모든 책임을 주정부로 넘겼다는 이유다. 주 정부는 신호등 색깔을 연방정부에서 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서 많은 잡음을 내고 있지만, 4가지 색의 신호등 체계는 유지되고 있다. 9월 1일 멕시코 보건 당국은 10월 말이나 11월 초가 되면 멕시코 중서부 태평양에 면한 콜리마 주를 제외한 모든 주가 초록색으로 전환되면서 교육활동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측' 하였다. 다만, 그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예측을 하지 못한 보건 당국, 특히 보건 당국의 대국민 창구 역할을 하는 우고 로페스 가텔의 말이기에 여전히 양치기 소년의 말과 다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마스크

멕시코의 경우 다행히 미국이나 유럽 여타 나라들과 같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진 않지만, 여전히 마스크는 사회적 논란을 유발한다. 9월 1일, 멕시코 대서양에 면한 어느 대도시 쇼핑몰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지를 받았고 결국 경찰력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해당 남성은 경찰에게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대통령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멕시코에서 가장 부자인 카를로스 슬림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데, 왜 자기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실제로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대통령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우려와 불만을 제기해오던 참이었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지난 7월 초 미국을 방문할 때 딱 한 번 마스크를 착용했을 뿐이고, 여전히 많은 정치인들이 마스크 착용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멕시코에서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날 마스크를 쓰겠노라던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듣고 있자면, 과연 대통령이 작금 이 나라에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지난 7월 초 양국 정상 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멕시코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전용기가 아닌 일반 상업 비행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해당 항공사의 대 코로나바이러스 규정에 의해 마스크를 착용했다. 당일 멕시코 언론들은, '처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대통령에 대한 뉴스를 전했다. 당일은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한 지 130일째 되는 날이었다. (IMAGEN 방송사 뉴스 영상 화면 캡처) ⓒ IMAGEN

 
이미 32개 주 중 8개 주의 주지사와 78개 시의 시장들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을 받았지만, 정치인들 역시 마스크 착용에 매우 인색하다. 어쩌면 자신들은 일반 시민들과 다르다는, 멕시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정치 엘리트들의 왜곡된 선민의식이 발현된 단면이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에게나 적용되는 마스크 착용 규정을 어찌 감히 자신들에게 들이대는가 회의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시절이라 불리는 지난 6개월의 시간 동안, 유일하게 각 시기마다 멕시코에서 쏟아진 사망자 숫자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해 온 기관이 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의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다. 이 연구소가 1일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목숨을 잃게 될 사람들의 숫자를 조정하여 발표했다.

언제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종식될지 알 수 없지만, 사망자 숫자는 최소 10만 6201명에서 최대 12만 2891명이 될 것이란 내용이다. 최소와 최대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마스크 착용이란 내용도 함께 발표하였다. 백신도 아니고 치료제도 아닌 마스크 착용만이 최대와 최소 사이 1만 669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멕시코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미 6만 명 이상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목숨을 잃었다. 한 생명의 손실이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우주보다 큰, 모든 것의 손실임은 자명한 일이다. 암담하게도, 멕시코에서는 앞으로도 4만 명 혹은 6만 명 이상의 생명이 더 사라져야 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만으로도 1만 669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오늘 당장 대통령부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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