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9 12:57최종 업데이트 20.09.2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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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캄보디아에서 케이팝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2000년대 중반부터다. 제일 먼저 케이팝 인기의 불을 지핀 가수는 여성 4인조 걸그룹 '원더걸스'였다. 그들의 대표 히트곡 '노바디'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으로 캄보디아에서 인기가 높았다.

워낙 이 노래가 인기가 높다 보니 곧바로 '짝퉁' 원더걸스가 등장했다. 비슷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콘셉트, 그리고 안무까지 그대로 흉내 낸 현지 여성 4인조 그룹 RHM이 TV에 나와 '노바디'를 크메르어 버전으로 불렀다. 이들의 유튜브 조회수는 당시로선 엄청난 5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

2009년 무렵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원더걸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국제변호사를 선임해 저작권 무단 사용 소송을 하겠다고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당시 캄보디아는 저작권 및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국제협약에 가입되지 않은 전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짝퉁 샤이니 그룹 '링딩동' ⓒ 유튜브 영상 캡처

 
이후에도 케이팝을 불법 모방한 가수가 나타났다. 2010년 캄보디아의 남성 그룹 '링딩동'은 샤이니의 히트곡 '링딩동'을 자신들의 팀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했다. 그뿐 아니라 '링딩동'과 흡사한 노래 멜로디에 안무까지 그대로 사용했다. 샤이니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캄보디아 현재 관계법령 및 침해 여부 등에 대한 세부사실 검토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앞선 원더걸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짝퉁 등장할 정도로 인기

짝퉁 그룹이 나올 정도의 케이팝 인기에 힘입어 2000년대 중반 반짝 인기를 끈 남성 아이돌 그룹 파란을 시작으로 유키스, 샤이니, 티아라, 시스타, 타히티 등이 캄보디아에서 공연을 했다.

이들의 캄보디아 방문 공연 소식은 이곳 음악 팬들 사이에서 단연 화젯거리였다. 캄보디아 통신 관련 대기업들이 주로 공식 스폰서로 나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케이팝 공연 소식은 TV 광고, 라디오, SNS를 통해 퍼져 나갔고, 신문도 앞다퉈 이들의 공연 소식을 전했다. 시내 중심가 대형 LED 광고판에도 케이팝 가수의 얼굴이 떴다. 캄보디아를 방문한 대부분의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3천석 규모의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캄보디아의 케이팝 열풍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정점으로 이후 시들해졌다. 케이팝을 24시간 틀어주던 전문 음악방송 채널도 언젠가 슬쩍 사라져 버렸다. 대신 한국 아이돌을 흉내 낸 중국과 태국 가수들이 케이팝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시 케이팝 흥행에 불을 지핀 건 비와 씨엘이었다.
 

캄보디아 특설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가수 비의 특별공연 모습. ⓒ 박정연

 
비는 2017년 3월 30일 수도 프놈펜 다이아몬드 섬에서 2만여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캄보디아에서 첫 콘서트를 펼쳤다. 공연 내내 팬들은 비의 사진과 피켓을 들고 그의 본명인 '정지훈'을 연호했다. 당시 비는 캄보디아에서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인기가 많았다. 2005년 캄보디아 안방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TV 드라마 <풀하우스> 덕분이었다.

2NE1의 전 멤버 가수 씨엘은 2017년 12월 9일 비와 같은 공연 장소에서 첫 공연을 했다. 3만 5천 명이 넘는 현지 팬들이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몰려들 만큼 열기로 가득했던 공연이었다.

캄보디아에 다시 부는 케이팝 열풍
 

프놈펜 시내 백화점내 서점 코너에 진열 판매중인 방탄소년단(BTS) 화보집 등 관련 책자. ⓒ 박정연

 
이후 잠잠하던 캄보디아에 케이팝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이번에는 BTS와 블랙핑크다.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2주 연속 1위를 석권한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는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캄보디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 음악팬들은 BTS와 더불어 여성그룹 '블랙핑크'에 열광하고 있다. 케이팝의 인기에 이곳 교민들의 어깨마저 으쓱해진 상태다.

수도 프놈펜에 있는 유명 유흥가인 메콩강변 St.136 거리에서 만난 나린(28, 가명)은 케이팝 광팬임을 자처했다. 그는 "전에는 2NE1과 슈퍼주니어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블랙핑크의 노래를 좋아한다"라며 기자에게 블랙핑크 노래의 가사 뜻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인터뷰로 만나본 이곳 학생들도 대다수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프놈펜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덕분에 학생 상당수가 BTS와 블랙핑크 멤버들의 이름과 생일까지 줄줄이 외울 정도다. 12살 초등학생 폴리는 "블랙핑크 멤버 가운데 리사를 가장 좋아한다"며 케이팝 스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과시했다.

기성세대들은 캄보디아의 엘비스로 불리던 최고의 가수 신 시사뭇(Sinn Sisamouth)으로 대표되는 캄보디아 전통 가요를 좋아한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킬링필드 시대를 지나 밝아진 사회 분위기 속에 밝고 경쾌한 디스코 풍 음악을 선호한다. 밝고 신나는 디스코 팝 장르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멤버들의 경쾌한 안무가 돋보이는 BTS의 다이너마이트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지난해 6월 BTS 팬클럽 '캄보디아 아미' 주최로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BTS 탄생 6주년 기념 축하공연 행사. 객석을 가득 채운 BTS 현지 팬들은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열광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BTS 광팬을 자처하는 캄보디아 대학생 께오 말리(21)는 멤버 가운데 '정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팬클럽 캄보디아 '아미'의 정식 멤버이기도 한 그는 BTS 열성 팬들로 구성된 다른 캄보디아 아미들과 함께 지난해 6월 BTS 탄생 6년을 기념하는 자체 축하공연 무대를 열기도 했다. 수도 프놈펜 한-캄 교류센터(CKCC)에서 열린 당시 축하공연은 7백석 공연장이 가득 찰 만큼 캄보디아 아미들의 열기로 넘쳐났다.

배운 적이 없는 한글로 정국의 이름을 쓴 그는 "BTS가 사는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어도 배워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음원 판매 공식 집계 자료나 인기 순위를 가늠할 공정한 전문 채널이 빈약하다. 가수의 유명세,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정도, 팬덤의 조직적인 소비 등 시장분석 능력도 부족하다. 스트리밍 업체별로 내놓은 인기 음반의 순위도 편차가 큰 편이다.

가장 일반화된 스트리밍 업체 중 하나인 애플뮤직이 내놓은 캄보디아 차트 순위가 그나마 이 나라에서 케이팝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지난주 애플뮤직 캄보디아 차트 순위에서 블랙핑크의 'Ice Cream'이 1위, BTS의 'Dynamite'가 4위에 올랐다. 현지 한 음악평론가는 "BTS와 블랙핑크가 캄보디아에서 현재 제일 인기가 높고, 음원 판매량도 가장 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케이팝을 그대로 모방한 짝퉁가수들은 사라졌지만, 케이팝 안무를 거의 그대로 따라 하는 캄보디아 가수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케이팝이 현지에서도 대세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2년 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케이팝 경연 대회의 한 장면. ⓒ 박정연

 
최근 캄보디아에서도 저작권이나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향상하면서 짝퉁 원더걸스나 짝퉁 샤이니는 사라졌다. 그 대신 편법이 늘었다. 한국 인기 그룹들의 안무를 일부 모방하거나 선별적으로 골라 여러 안무와 적당히 버무려 표절한 '짬뽕 안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음악방송을 틀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전혀 다른 곡인데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케이팝 춤 동작을 모방한 캄보디아 가수들이 적지 않다.

이곳에서 연예기획사(K've Entertainment)를 운영하는 나윤정 대표는 "노래나 안무를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 사용하거나 모방하고 표절하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위법"이라며 "하지만 과거의 무조건 베끼기와 달리 요즘 한국 인기 그룹들의 특정 춤을 모방하는 것은 케이팝이 대세라는 점을 반증해주는 것이기에 이 나라 음악시장이 성숙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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