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 07:32최종 업데이트 20.10.1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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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저녁 배달을 하던 택배노동자가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40대의 택배노동자는 하루 평균 400여 개의 택배를 배송하고 밤 9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사고 당일 출근하면서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오늘은 더 늦을 것 같다"였다. 유서 한 장 없이 죽은 그가 유일하게 남긴 문서가 있다. 산재적용제외신청서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장해를 입거나 사망해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호를 받지 않겠다는 각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택배등록종사자 1만 8792명 중 1만 1348명이 적용제외 신청서를 써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빗길에 배달 일을 하다가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졌다. 입사할 때 무심코 썼던 산재적용제외신청서 때문에 200만 원의 치료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택배업계, 산재적용제외신청으로 연간 60억 절약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안전보장법 제정하라'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라이더안전보장법' 촉구 집중행동 돌입 기자회견에서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택배노동자와 배달 라이더 모두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쓴 이유는,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산재제도는 고용된 노동자가 다치면 보험으로 보상해주기 위해 만든 사장들을 위한 제도다. 산재가 없으면 사용자는 노동자들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고, 사망사건이라도 일어나면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해서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이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 사장들이 십시일반해서 만든 게 산재기금이며, 국가 예산을 투여해 이 기금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게 근로복지공단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모든 비용을 책임지고, 의무적으로 가입시켜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특수고용노동자를 발명하면서부터 산재의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성격을 가진 특수한 노동자들에게는 기업이 산재비 전액을 내고 의무적으로 산재에 가입시킬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간단치 않다. 특수고용노동자 중에는 누가 봐도 기업에 종속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화물차기사, 대리기사, 골프장 캐디, 라이더, 택배노동자 등 누가 봐도 사장님이라고 보기 힘든 존재들이다.

이에 정부는 2008년 7월 1일 산재보험의 보호가 필요한 4개 직종을 임의로 설정한다.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노동자들에게만 산재를 적용시키겠다는 거다. 그리고 올해 7월까지 12년간 14개 직종의 특고노동자들을 임의로 골라 특고산재에 담았다. 그러면서 특수한 노동자들이니 산재비도 50%씩 내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위해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라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산재적용제외신청서만 쓰지 않는다면, 14개 직종의 특고노동자들은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사업주가 산재가입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산재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노동자들이 이 복잡한 제도를 면밀하게 알 수 있겠는가?

사업주들은 입사할 때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내밀면서, 여기에 서명하면 돈을 아낄 수 있다고 안내한다. 올해 특고신분의 택배기사가 월 산재비로 내야 하는 돈은 2만1230원, 라이더는 1만4030원, 화물노동자는 4만1590원이다. 반반이므로, 특고노동자가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쓰면 사업주도 이 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택배기사 1만1348명이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썼다고 하니, 사업주는 월 2억4091만 원, 연간 약 30억을 아꼈다. 이들이 근로자였다면 전액을 냈어야 했으니, 사실상 60억을 아낀 셈이다.

산재에 가입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동네배달대행사에서는 산재에 가입하려면 하루 2000원, 하루 1000원 등 실제 납부해야 할 라이더 부담 분 1만4030원을 넘는 금액을 청구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총 50만3306명의 산재적용 특고노동자 중, 83.2%에 달하는 41만8546명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했다. 흔히 특고노동자들의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를 산재 사각지대라고 하는데, 이렇게 눈에 잘 보이는 사각지대가 어디 있나?
 
산재가 되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

산재가입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산재가 되는지도 모르는 노동자가 많다. 노동자는 물론, 사업주도 모른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전속 퀵서비스기사 2만8096명 중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쓴 라이더는 5030명에 불과하다. 전체 특고노동자에 비하면 산재적용비율이 높은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주 배달 라이더 관련 강연을 갔다가 라이더들은 사정이 나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대한민국 배달 라이더기사가 2만8000명에 불과할까? 바로고, 생각대로, 부릉 등 배달대행계의 빅3라고 불리는 3개 업체는 자사 소속 라이더수가 1만~2만 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3개 업체만 합쳐도 근로복지공단 숫자를 훨씬 넘기는데, 알려지지 않은 중소규모의 프로그램업체소속 라이더들을 생각하면 2만8000명의 숫자는 말도 안 되는 숫자다.

게다가 산재적용제외신청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라이더들에게 산재를 가입시키는 배민라이더스의 숫자는 3400명 정도이고, 자유롭게 로그인 로그아웃하는 배민커넥터의 숫자는 7만 명을 넘겼다. 꾸준히 일하지 않는 배민커넥터 라이더들을 입직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의 2만8000명은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일 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의 배민라이더스 소속 기사의 비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중소프로그램업체 소속 라이더들 대부분은 산재가입도 산재적용제외신청서도 쓰지 않고 그냥 일한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라이더유니온을 처음 시작할 때인 2018년만 하더라도, 노무사나 변호사조차도 배달대행라이더가 산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2017년 3월에야 퀵서비스 특고 산재에 배달대행라이더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사고가 터진 라이더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산재신청을 하고 특고산재로 인정받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경우 산재에 가입시키지 않은 사업주에게 근로복지공단이 구상권을 청구한다. 1000만 원을 공단에서 보상하면 500만 원을 업주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최근 공단은 이것이 사업주가 라이더의 산재신청을 방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감안해 납부해야 할 산재비의 5배 이내로 구상권 청구를 한다.) 구상권이 한 동네에서 터지면 그 동네의 업주들 사이에 소문이 돈다. 사고가 난 라이더가 기습적으로 산재신청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활용하는 업주들이 늘어난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전속성 기준이다. 배달라이더의 경우 월 118시간, 월 124만2100원 이하로 돈을 벌면 전속성이 없다고 해서, 특고산재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월 110시간 일하면 산재보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최근 라이더유니온의 문제제기와 국감을 앞두고 쿠팡이츠가 산재가입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전속성 기준에 부합하는 라이더들만 가입시키겠다고 밝혔다. 14개 직종에 포함되지 않는 특고노동자들도 산재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정도면 구멍이 아니라 산재보험이라는 둑이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노동자들의 신체포기각서,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 폐지해야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안전보장법 제정하라'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라이더안전보장법' 촉구 집중행동 돌입 기자회견에서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주말에도 사고가 난 라이더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썼냐고 먼저 물어본 다음, 몸은 괜찮냐 물었다. 라이더 당사자와 통화라도 하면 다행이다. 의식을 잃은 라이더의 가족 또는 세상을 등진 라이더의 유족과 통화를 할 때면, 이 질문을 하는 나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

영화에서 사채업자나 조폭들이 돈을 빌려주면서 못 갚으면 신체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정부와 공권력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개입해서 범죄자들을 응징하고, 금지시킬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기업들은 근로자에게 특고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모든 책임은 노동자가 홀로 진다'라는 각서를 받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거나, 막대한 빚을 지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일한다. 자신의 신체를 포기하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만든 노동자의 신체포기각서,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정부도 국회도 이 문제를 알고 있다. 실제로 19대 국회에서 산재적용제외신청사유제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업계의 결사적인 반대와 국회 로비로 발목이 잡혔다. 민간보험사들은 보험설계사들이 산재보험보다는 자신들의 민간보험에 가입하길 원한다. 그러나 공공적 목적으로 운영되는 산재보다 좋은 보험을 이윤이 목표인 기업이 만들 이유는 없다. 21대 국회만큼은 보험업계에 맞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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