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 15:12최종 업데이트 20.10.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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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통은 전 과목에서 낙제점수를 받는 학생과 아주 비슷하며, 앞으로도 개선될 희망이 없다. 그래서 무섭다. 낙제한 학생이 뭘 하든 그건 개인의 불행일 뿐이지만, 문통의 낙제는 대깨문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니까. 대통령께 한 말씀 드린다. "코로나가 지금 당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그렇게 웃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 서민 블로그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 문재인' 글 일부

하지만 공부를 전혀 안하고, 학원비를 빼돌려 유흥비로 탕진하면서 자신의 나쁜 성적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면, 그러면서도 큰소리만 치는 학생이 있다면, 공부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글에서 문통에게 바로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서민 블로그 '대깨문들의 집단난독' 글 일부

서민 단국대 교수의 논란이 된 블로그 글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 문재인'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고졸 학력인 대통령에게 학번을 물었던 검사의 악의에 찬 조롱과, 또 하나는 의사 파업 때 공공의대 설립을 비판하기 위해 '공공의사 대 전교 1등 의사' 게시물을 만들어 비난을 자초했던 의사협회의 특권 의식이다. 조금은 다를 줄 알았던 서민 교수도, 전교 1등 의사 중 한명이고 알량한 학벌로 대통령을 조롱했던 검사와 다를 바 없다는 진실(?)의 확인은 씁쓸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서민 교수.(우측에서 두번째) ⓒ 연합뉴스

 
알맹이 없는 독설

10일, 서 교수는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 문재인' 글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다시 블로그에서 '대깨문'들의 집단 난독이라며 비난 범위를 극렬 지지층으로 넓혔다. 글 내용은 불편했다. 서민 교수의 글을 잘못해석한 일부 반박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비판과 우려 모두를 '대깨문'들의 집단 난독으로 규정하는 서 교수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서 극렬 지지에 맞서는 극렬 반대자의 화풀이 이상의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대깨문'과 '대깨반문'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더라도 발전적 논쟁으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의견조차 '대깨문'의 집단 난독이라고 치부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느끼는 불쾌한 감정은 누구에게 따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대깨문'. 풀어쓰기조차 민망한 혐오의 언어다. '××리(머리)가 깨져도 문재인' - 문재인 대통령의 극렬 지지층을 칭하는 줄임말이라는데, '달창'이라는 비하의 언어만큼 인격모독이고 거칠다. 2019년 5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달창이라는 표현을 써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나 원내대표는 뜻을 모르고 쓴 표현이라고 사과했지만, 서 교수는 '대깨문'이라는 표현에 혐오의 뜻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지도 않은데 반복적으로 쓴다. 유명인인 서민 교수의 글 행간마다 반복되는 '대깨문'이라는 조롱의 언어.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서 교수는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 문재인' 글에서 "국영수는 꼴등이라도 도덕 과목이라도 잘한다면, 그래도 나중에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는 희망은 품을 수 있지 않은가"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성적은 도덕 과목조차도 '가' 꼴찌의 성적표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서 교수의 교육철학 빈곤함이다.

도덕 과목이라도 잘해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전교 1등이 명의라는 의사협회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아무 근거도 기준 제시도 없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모두 '가'로 평가하고, 도덕 과목조차 못했으니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서 교수. 실제 이런 교사가 있다면 학생보다 먼저 교단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책을 찢어서 먹는 퍼포먼스'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정책이고, 해괴한 정책 때문에 경제가 잘 될 일이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서 교수의 주장 또한 어이가 없다. 과거 정권의 수출과 기업중심 성장 한계를 가계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성장으로 견인하자는 게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으로, 포스트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들의 임금주도성장론의 변형이다.

4년이 다 되도록 소득주도 성장을 듣도 보고 못했으면 오히려 부끄러워 할 일이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면 무지를 탓해야 할 일이다. 손쉬운 해고와 저임금 구조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국민들의 살림살이, 임금을 올리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삼자는 정책이, 어떻게 공부 못하는 학생의 퍼포먼스 같다는 건지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려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변죽만 울리고 슬그머니 기업중심 성장론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나무라야 한다.

극렬지지층만 있는 게 아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민 교수는 남북 관계를 개선해 보겠다는 대통령을 나쁜 친구만 사귀는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몰아붙이고, 이러다 북한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고 말한다. 종전 선언이 대한민국 종말을 부를 것이라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비교하더라도 냉전적 사고는 별 차이가 없다. 한때는 진보 논객으로 평가 받았던 서 교수.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새진보· 참진보라고 추켜세우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을 반대하고 평화와 한반도 안정의 노력조차도 '나쁜 친구에게 퍼주기'라고 악담을 퍼붓는 진보는 없다.

그러나 서민 교수가 진영을 옮겨갔든, 기존의 진보와 다른 목소리를 내든 시비할 건 못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쌍수를 들어 환호하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지적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 말이다.

하지만 근거도 기준도 없이 모든 성적이 낙제점이라며 공부 못하는 학생에 빗대고, 그와 다른 의견을 '대깨문들의 집단 난독'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이해할 수 없다.

50%에 가까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에는 극렬지지층만 있는 게 아니다. 극렬지지층이 아니더라도 코로나 정국에서 경제가 이 정도면 어디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방해와 남북 불신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던 전 정권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의 평화 통일 정책은 박수칠 만하다는 여론도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는 서민 교수의 이런 모습을 무조건 반대자를 부정하고 싶은 동당벌이(同黨伐異) 심리라며, 문 대통령이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이 아니라 서 교수가 한국 학벌 귀족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절대평가에 자신 없으면 과거 정권과 상대 평가라도 해서 공정성을 얻으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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