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7 08:01최종 업데이트 20.10.27 09:05
  • 본문듣기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싱가포르 시민들 ⓒ 이봉렬

 
지난해 9월, 싱가포르의 65세의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20세 남성이 몰던 전동킥보드와 충돌한 후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언제부턴가 그 수가 갑자기 늘어 나서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빠르게 달리는 전동킥보드 때문에 불편해 하던 많은 이들이 이 사고를 계기로 전동킥보드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동킥보드에 의한 사망사고가 논란이 되자 싱가포르 의회에서 전동킥보드에 의한 사고 사례에 대해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싱가포르 교통부장관은 2018년 한 해 299명이 전동킥보드와 관련된 사고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자전거나 오토바이, 자동차 사고와 비교해서 전동킥보드 사고의 경우 사고 건수는 낮지만 중증 환자의 비율은 더 높다는 겁니다. 전동킥보드 관련 부상의 약 63%는 경미했고, 21%는 경상, 16%는 중상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자전거 사고(1836 명), 오토바이 사고(5700 명), 자동차 사고(6743 명) 부상자의 사례를 보면 약 89%가 경미하고, 7%가 경상, 4%가 중상입니다. 전동킥보드 사고의 중상증 환자 비율이 4배나 더 높습니다.

같은 시기에 싱가포르의 한 국립병원(TTSH)에서는 최근 3년간 전동킥보드 사고로 인해 해당 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첫 9개월 동안 79명이 전동킥보드 관련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는 한 달 평균 9명이며, 2018년 7명, 2017년 4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겁니다.
   

전동킥보드 규제를 알리는 포스터.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에서만 탈 수 있습니다. ⓒ 싱가포르 교통부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면 가만히 있을 싱가포르 정부가 아닙니다. 사망 사고가 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11월 5일, 싱가포르 교통부장관은 전동킥보드의 보행자 도로 이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보행자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다 적발될 경우 최대 2천 달러(약 170만 원)의 과태료 또는 최대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싱가포르의 5500km에 달하는 보행자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법 시행 후에는 자전거 도로 440km에서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도로에서 타는 것도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우선 모든 전동킥보드는 교통부에 등록하고 작은 번호판을 부착해야 합니다. 등록이 가능한 전동킥보드는 최대 무게 20kg에 최고 속력은 25kmh로 제한이 됩니다. 충전 중이던 전동킥보드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한 해 70건이 넘게 발생하자 UL2272 화재 안전 표준 인증을 받은 것만 등록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충전 중 화재가 발생한 전동킥보드. 싱가포르는 이후 화재 안전 표준 인증을 받은 전동킥보드만 이용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 싱가포르 민방위 본부

 
이처럼 타고 다닐 수 있는 곳이 갑자기 줄어 들고, 규정이 정해지기 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전동킥보드를 구입해서 타고 다니던 경우에는 아예 타고 다닐 수도 없게 되자 기존의 이용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 전동킥보드를 사용할 수도 없고, 폐기하기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동킥보드를 폐기하는 이용자에게 100달러(8만5천 원)의 폐기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중고로도 팔 수 없었던 이용자들은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덕분에 전동킥보드 수 자체가 줄었습니다.

등록을 했다고 해서 바로 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 16세 미만은 전동킥보드를 탈 수가 없습니다. 전동킥보드를 타면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들고만 있어도 적발시 최대 1000 달러(850만 원)까지 벌금을 내야 합니다. 2019년 한 해에만 이런 이용규칙을 어겨서 적발된 사례가 4900건에 달했습니다. 직원이 일을 할 때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면 해당 업체는 제삼자 보상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싱가포르 교통부는 현재 440km인 자전거 도로를 2030년까지1300km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수년 내로 단축해서 완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를 완전히 분리해서 보다 안전한 길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 모든 규제 및 대책은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를 막고, 사고가 나더라도 부상의 정도를 줄이는 게 목적입니다.

한국도 전동킥보드와 관련된 법이 개정되어 12월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전동킥보드를 타는 사람이나 보행자가 보다 안전해지는 방향으로 바뀌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12월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의하면 전동킥보드는 앞으로 '개인형 이동장치'로 새롭게 분류되어서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취득하지 않아도 되고, 이용연령도 18세에서 13세 이상으로 완화가 됐습니다.

여기 두 가지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국내 스마트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16년 6만 대, 2017년 7만5000대, 지난해 9만 대 수준에서 2022년 20만 대까지 증가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연평균 20% 이상 고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의 전동킥보드 사고가 2017년 73건, 2018년 57건이었다가 2019년에는 117건으로 전년 대비 105%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동킥보드의 중증 환자 비율이 높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2년간 경찰청에 정식 접수된 사건만 따져도 개인형 이동수단 인명사고는 사망 8건, 중상 110건, 경상 171건 등 289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번 규제 해제를 계기로 대기업들이 전동킥보드 공유 사업에도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거리의 전동킥보드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해마다 전동킥보드 숫자도 늘어나고, 그에 따른 사고는 더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법규마저 규제를 해제하는 쪽으로만 간다면 시민의 안전은 누가 책임을 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업과 안전이 충돌하면 싱가포르는 안전을 우선합니다. 한국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