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8 16:57최종 업데이트 20.10.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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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열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일리노이주 시카고 중심가의 루프 슈퍼 사이트에서 조기투표에 나선 유권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유권자 등록 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2016년 대선보다 10배가 넘는 660만명의 유권자가 조기·우편 투표를 마쳐 사상 유례없는 사전 투표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 연합뉴스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의대 1년생 카엘라는 지난 일요일(25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간 곳은 볼티모어 공항. 그녀는 플로리다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목적지인 포트 라우더 데일 공항에 착륙,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투표소로 갔다. 투표를 한 뒤에는 곧바로 공항에 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볼티모어에 돌아왔다. 의대 1년생 카엘라가 볼티모어에서 플로리다까지 당일치기로 비행기를 타면서까지 서둘렀던 이유는 바로 투표하기 위해서였다. 

시간도 돈도 아쉬운 그녀는 우편투표를 신청했지만 지난주까지 어떠한 서류도 받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600달러짜리 비행기 표와 황금 같은 일요일 시간을 투자해 투표를 마쳤다. 이 내용은 10월 27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자세하게 실렸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의 영혼을 위한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비싸고 힘들고 어렵게 투표를 마친 카엘라는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등학교 출신이다. 총기난사로 17명이 사망한 그 곳.  

비행기 타고 투표장으로

"젊은 사람들의 투표가 중요하지 않았다면, 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투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애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10월 26일 <타임>(TIME)지와 인터뷰 한 이 청년의 이름은 데이비드 호그. 데이비드도 카엘라와 같은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다. 2018년 2월 17명의 학생과 교사가 AR-15에 목숨을 잃었을 때 그는 책상 밑에 숨어 그 끔찍한 굉음을 들었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희생자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다. 생존자의 책임감으로 그는 친구들과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 확대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생존 학생들을 중심으로 워싱턴 DC에선 'March for Our Lives'(생존을 위한 행진)가 열렸다. 트럼프 정부와 의회에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행진이었다. DC에만 20만, 전국적으로 80만 명이 참가한 거대한 행사였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호그는 총격 사고 이후, 대통령의 태도에 매우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파크랜드에 오지 않았습니다. 선거 모금을 위해 근처 병원에서 사진을 찍고는 자신의 별장으로 날아갔지요. 그리고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대통령은 골프를 치고 있었더군요."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청소년 운동가들과 젊은 유권자들을 위한 단체 연합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이들은 11월 3일 투표일까지 또래 유권자들이 투표할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고 독려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투표라 얘기한다.

호그를 비롯한 미국의 청소년 유권자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안전한 나라'이다. <시엔엔>(CNN) 통계에 의하면 2009년부터 10년 동안 미국 177개 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더글러스 고등학교를 비롯해 희생자가 356명에 달했고 초중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으로 3월부터 전국의 학교가 문을 닫아야 했던 올해에도 8건의 학교 내 총격사건이 발생해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 팬데믹 덕에 근래 가장 낮은 학교 총기 난사 사망자수다. 

여론조사 기관인 <타깃스마트>(TargetSmart)에 의하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유권자 41만 9000명이 플로리다에서 투표했다. 이는 2년 전보다 34% 증가한 수치다. 

"이번 선거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솔직히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학교 총기 난사 생존자의 첫 대통령 투표 각오는 매우 진지하다. 
 

미국 대선을 앞둔 20일(현지시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한 여성 유권자가 우편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 연합뉴스

 
2020년 가장 큰 투표 랠리를 만들어낸 초선

"누구 투표 독려차 내일 나랑 트위치에서 'Among Us' 게임할 사람? (해본 적은 없지만 정말 재밌는 게임 같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가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임 공지를 올릴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89년생인 그녀는 2018년 뉴욕에서 10선의 민주당 하원 원내 의장을 꺾고 78%의 본선 득표로 스물여덟, 사상 최연소 여성의원이 됐다.

2008년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집이 압류되기도 했다. 그녀의 전직은 바텐더, 정치 경력은 2016년 버니 샌더스 자원봉사를 한 게 전부다. 하지만 '스쿼드'라는 이름의 진보성향 유색인종 초선 여성의원들과 그녀는 민주당의 '샛별'이라 불린다. 

10월 20일 밤, 언론은 올해 들어 가장 큰 투표 랠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려 4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AOC 의원이 Among Us 게임을 하며 게이머들에게 선거 독려를 한 것. 

"물론, 우리는 민주당에 투표하기 위해 온 거죠.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고요. 여러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요."

게임 유저 사이에 꽤 인기 있는 Among Us는 일종의 마피아 게임 온라인판이다. 정체를 감추고 방해하는 악당을 찾아내며 고장 난 우주선을 수리하는 내용이다. 스쿼드 일원인 미네소타 주 일한 오마르 의원도 함께했다. 오마르 의원은 영국 게이머에게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무상 의료보험이 영국에선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고, 그린 뉴딜의 전도사 AOC 의원은 우주선에 기름 탱크가 있다는 설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며 3시간 반 동안 게임에 몰두했다. 
 

10월 20일 밤, 언론은 올해 들어 가장 큰 투표 랠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려 4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AOC 의원이 Among Us 게임을 하며 게이머들에게 선거 독려를 한 것. ⓒ 트위치

 
TV에서만 보던 하원의원을 게임에서 만난 한 유저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묻자 호쾌하게 대답했다. 

"모두 그냥 나를 AOC라고 불러주세요. 아, 마이크 펜스 부통령만 빼고요~"

AOC 의원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툴사 첫 유세가 틱톡과 케이팝 팬들의 노쇼 시위에 흥행 참패로 끝나자 케이팝 팬들에게 따로 감사인사를 하기도 했다. "케이팝 연합군들, 우리는 정의를 위한 당신들의 싸움에 감사히 생각해."

이처럼 누구보다 젊은 세대를 잘 알고 공감하는 그녀의 게임 공지가 올라가자 pokimane, hasanabi, TUCKER 같은 유명 게이머들이 댓글로 기꺼이 동참을 알렸다. 그렇게 42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한 날, AOC는 그날 하루 만에 28만 9000명의 팔로어를 확보했다.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에서 실버 랭킹을 보유하고 있는 그녀의 랜선 선거운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680만 명의 팔로어에게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고 그들의 초대에 응하기도 했던 원조 게이머였던 것.

신선하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이기까지 했던 그녀의 독특한 선거 운동에 언론의 평은 긍정적이었다. 

"접근하기 힘들기로 악명 높은 Z세대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매우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고 트위치를 따라 하려는 다른 정치인들에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려드리죠."

<포브스>지는 AOC가 히트 친 트위치 랠리 이후 Among Us 게임이 친 트럼프 성향의 해커 공격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게이머들의 마음을 붙잡기엔 해커보다는 실력 있는 게이머가 더 설득력 있을 텐데 말이다. 

달라진 젊은 유권자들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최종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에게 비장의 카드를 날렸다. 

"샌더스씨, 평생 무소속으로 의정 활동하던 당신이 무슨 염치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거죠?"
"내가 민주당에 공이 없다고요? 지금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민주당으로 데려온 게 보이지 않나요?"


비장의 카드라 생각했던 힐러리도, 굴러온 돌의 인기에 불쾌해하던 민주당도 딱히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는 팩트였다. 2016년 대선을 전후해 민주당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애증의 정당이 되었다. 버니 샌더스의 탈락을 지켜보며 대선 본선에 기권한 유권자가 많았다. 

그러나 2020년 선거는 다르다. CNN에 의하면 63%의 젊은이들이 '확실히 투표하겠다'고 말했고 18-21세 유권자 120만 명은 이미 투표를 마쳤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를 했고 그중 몇몇은 AOC처럼 의회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청년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텍사스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승리를 고대하고 있다. 
 

넷플릭스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속 AOC 의원 ⓒ 넷플릭스

 
'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월과 5월 사이 16세에서 24세 미국인 4명 중 1명이 실직했다. 이들 젊은 미국인들은 실직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구통계 중 한 명이다. 하버드의 올해 가을 조사에 따르면, 젊은 유권자들은 작년 봄보다 지금의 경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젊은 유권자 6%가 지난 봄 경제를 최우선 이슈로 꼽은 반면, 23%는 올가을의 최우선 이슈로 경제를 꼽았다.

정치 전문지 <악시오스>가 10월 22일 전국 유권자 64만 3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5세 이하 유권자가 50개 주 중 40개 주에서 바이든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20일 자 <뉴욕>(New York) 잡지도 젊은 유권자들이 약 20점 차로 바이든을 지지하는 등 매우 민주당적이라고 보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나 올해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애리조나, 플로리다, 미시간,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바이든 우세는 18% 포인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잡지는 영 보터들이 올 11월 선거에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이유로 전성기에 접어든 밀레니얼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존재가 밀레니엄 세대의 정치적 성숙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터프츠대 티쉬 칼리지 학장은 <시엔엔>과 인터뷰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2020년 선거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청년 투표율을 기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데이비드 호그의 말처럼 11월 3일은 미국의 미래 세대가 미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되는 날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벌어지는 엄청난 청년 투표율을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들에겐 어느 게임이나 영화보다 긴장되는 일주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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