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 16:11최종 업데이트 20.11.04 15:12
  • 본문듣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이틀 앞둔 1일(현지시간) 조지아주 롬의 리처드 B 러셀 공항에 마련된 유세장에서 '4년 더'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 두 팔을 활짝 펴고 있다. 2020.11.1 ⓒ 연합뉴스

   
지난 주말, 무리해서 장을 봤다. 대형마트와 한인마트에서 쌀, 라면, 통조림 같은 생필품들을 트렁크 가득 밀어 넣었다. 여기저기 들리는 불길한 뉴스가 사재기를 부추긴다. 마트에서 만난 다른 이들도 불안해 보인 건 마찬가지. 앞으로 한동안은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괜찮게 냉장고를 채워 놔야 했다.

무장한 백화점... 시민들은 사재기

맨해튼 코리아타운이 시작되는 입구에 있는 7만여 평의 규모의 세계 최대 메이시 백화점이 무장했다. 거대한 블록 하나에 걸쳐 있는 이 백화점의 외벽이 지난 금요일 두꺼운 나무 패널로 덮인 것. 주변 다른 상점들도 손님용 출입구 하나만 남겨놓고 판자로 막혔다. 약탈 방지용 장치다.


트럼프 타워와 마주 보고 있는 타임워너센터에는 기관단총을 소지한 비번 경찰이 배치되었고, 맨해튼 고급 아파트들엔 예방조치를 취하라는 뉴욕 경찰의 경고가 내려졌다. NYPD(뉴욕경찰) 수백 명이 시 주변에 추가로 배치되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 봅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30년 경력의 LA시 경찰국 고위 관계자의 우려처럼 LA 쇼핑센터도 맨해튼 못지않게 중무장이다. LAPD(LA경찰)는 사망을 염두에 둔 특별 훈련까지 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나무판자로 진열대를 막아놓은 맨해튼의 고급 상점들 ⓒ CBS 방송 화면 캡처

 
다른 지역에서 용병을 충원했다는 미네소타 소식과 고급 맨션 지붕에 저격수를 고용했다는 플로리다 발 뉴스까지. 팬데믹으로 온 나라가 셧다운 됐던 지난 3월보다 더 심각한 분위기다.

"극심하게 양극화된 미국은 앞으로 며칠 동안 익숙하지 않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폭력을 감시하는 전문가 모임인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ICG)이 미국 선거를 앞두고 낸 보고서 내용이다. 10월 28일 발간된 ICG 보고서는 혐오 발언, 미국 내 인종 문제, 무장단체 부상 등 분열적인 대통령 선거로 인해 선거일 전후한 폭력 사태 문제들을 경고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장' 언급이다. 트럼프의 이런 언급은 훈련되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민주당 투표 저지를 독려하는 위험 신호라고 보고서는 우려한다.

극우단체에게 대기하라는 대통령

사상 최악이라 불린 지난 9월 29일 첫 번째 대선 토론. 사회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극단적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에게 주의를 주는 발언을 부탁했다. 대통령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반문하더니 답변했다.

"뒤로 물러서 대기하라."

토론중 직접 언급된 백인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 보이즈'는 자체 채널에서 대통령의 반응을 자랑했고, 자신들의 로고에 'Stand Back' 'Stand By'을 추가했다.

대통령 선거를 사흘 남겨둔 10월 31일 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링크하며 "I LOVE TEXAS!" 외쳤다. 장엄한 컨트리 음악을 배경으로 한 3분짜리 이 영상은 대형 트럼프 깃발을 꽂은 트럭들이 바이든-해리슨 유세 버스를 에워싸고 위협하는 내용이었다. 총을 소유한 이들이 거칠게 욕을 하며 따라붙어 위협했다. 이로 인해 민주당 측 차량 한 대가 파손됐고 조기 투표를 독려하려던 유세는 중단되었다.

"이 애국자들은 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데. FBI와 사법부는 이 사람들 말고 민주당 도시에서 우리 국민을 해치고 방화하는 안티파 테러리스트, 무정부주의자, 선동자들을 수사해야지!"

FBI가 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일요일 밤 대통령의 트윗 내용이다. 선거 하루 전인 2일 유세에선 "그건 트럼프 지지자들이 민주당 버스를 보호하는 에스코트였다"고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주요 다리와 도로를 막고 시위를 하고 있다. ⓒ FNTV 화면 캡처

 
공권력보다 더 강력한 대통령의 지지 속에 지난 1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뉴욕 허드슨 강을 가로지르는 쿠오모 다리와 브롱스와 퀸즈를 잇는 화이트스톤 다리를 막아 교통을 차단시켰고, 뉴저지 하이웨이를 8킬로 가까이 마비시키기도 했다. 경찰도 준칙도 무시하며 떼를 지어 세를 과시하고 다니는 것이다.

조지아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장한 민병대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면 선거 랠리를 취소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직접적인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조지아의 한 민주당 의원은 NYT 기자에게 말했다.

"대통령은 공포와 증오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지사 납치 음모

지난 10월 8일, FBI는 13명의 남성을 기소했다. 미시간 주지사 납치 음모 혐의였다. 일부는 미시간 주 의회 건물을 습격할 계획을 꾸몄고 내전을 일으키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은 총기 훈련과 전투 훈련 그리고 폭발물 제작 연습도 했고, 주지사의 별장 답사도 마친 상태였다. 그 중 7명은 극단주의 단체 소속이다. 이들은 '사회 붕괴로 이어지는 내전'을 일으킬 국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주동자는 200명의 동조자와 미시간 주지사 집을 습격해 주지사를 반역죄로 재판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했다.
 

'자택 대피 명령' 항의하는 미국 미시간 주민 14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따른 미국 미시간 주의 자택 대피 명령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한 주민이 방독면을 쓴 채 국기를 들고 있다. 2020.5.14 ⓒ 랜싱 AP=연합뉴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 등 강력한 조처를 했던 민주당 소속의 여성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는 이 사건 발표 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지난주 미국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 같은 증오 단체에 대한 비난을 거부했습니다. (오늘 기소된 이들에게) 대통령의 말은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외침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이번에 기소된 이들 대부분은 지난 4월 총으로 무장한 채 미시간 주 의사당에 들어가 주지사의 코로나 예방조치에 항의하던 시위대였다. 당시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아래와 같은 트윗을 날린 바 있다.

'LIBERATE MICHIGAN!(해방 미시간!)'.

선거 이후 펼쳐질 지옥도

11월 1일 정치전문지 <악시오스>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투표 당일 밤 자신의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 보도했다. 일요일까지 접수된 1억 표가 넘는 우편 투표 결과와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격전지의 표심을 무시하는 발언이라 파장이 컸다. 그러자 대통령은 그날 저녁 기자들에게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악시오스>는 지난 몇 주 동안 은밀히 논의된 시나리오라며 선거 날 밤 대통령 스스로 단상에 올라 승리 선언을 계획했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하이오, 플로리다 같은 공화당 주의 초기 개표에서 앞서야 하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한다는 것. 버니 샌더스 의원 역시 이미 다 알려진 바라 놀랍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것은 수개월 동안 그의 전략이었고 누구도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게 바로 그가 우편 투표를 악마화하고 우편 서비스를 방해하는 이유죠. 모든 투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개표돼야 합니다."

앞서 거론했던 ICG 보고서에도 외국 정상들은 제도적 절차가 끝날 때까지 축하 인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미 대선을 맞아 중무장 병력이 배치된 상황을 보도하는 <뉴요커> 기사 ⓒ <뉴요커> 캡처

   
50개 주마다 다른 선거법 탓에 11월 3일 투표가 끝나도 모든 결과가 보름 후에나 나오는 주가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개표가 예상된다. 이런 까닭에 미국인 55%가 2020년 선거일을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폴 서베이>(OnePoll)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올해 가장 큰 스트레스는 63%가 전염병이고 다음이 선거(49%)다. 선거 이후 펼쳐질 분열되고 양극화된 미국 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번 대선은 만만치 않은 선거 후 폭풍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을 힘겹게 견뎌온 미국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