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 18:36최종 업데이트 20.11.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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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갑질 로젠택배 규탄 및 불공정 계약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부산에서 ‘불법권리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다 목숨을 끊은 택배기사 고 김광택씨에 대한 사과와 보상, 노동환경 개선, 노동조합 인정과 교섭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아들을 잃은 부모님을 뵙기 위해 대구행 기차를 탔다. 아들은 택배 분류 노동자로 일하다 과로로 세상을 떠났고, 부모님은 기업을 상대로 고된 싸움을 결정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부당한 노동 문제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난 청년노동자 이한빛 PD의 동생이기도 한 나는, 남은 가족에게 건넨 작은 연대의 손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형이 세상을 떠난 10월이다. 올해만 택배노동자 10명이 일하다가 죽었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대구로 향할 작은 용기를 냈다.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낯설지 않다. 김용균, 이한빛을 비롯해, 일터에서 세상을 떠나거나 다친 노동자의 가족들이 모인 '산업재해 피해 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는 늘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 뜻이 무색하게,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이 이미 상처입은 가족들의 마음을 또 덧낸다.


이한빛 PD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째가 된 이 10월에도 현실은 이렇게나 그대로다. 하루에 7명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끔찍한 통계 앞에 '다시는'이란 구호는 무기력했다. 오늘 하루 일터에 나갔던 노동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면, 다행이라 안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됐다.

'다시는' 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민과 함께 하는 길거리 전시회 (주)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사고에 대응하며 유가족모임 <다시는>의 유가족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길거리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 유가족모임<다시는>제공

  
세상이 변하며, 노동의 모습도 변했다. 방송미디어, 택배 분류, 플랫폼 기반 노동 등 기존의 산업구조와 공간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비전형(非典型)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생활 속 '편리함'을 위해 '참신한' 상품들을 내놓는 '혁신적인' 시장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 주문한 물건이 내일 아침 문 앞에 놓여 있고, 출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문제없이 작동하며 점심식사는 배달앱 주문으로 곧장 테이블까지 올라오는 세상. 지루한 퇴근길을 채워주는 모바일게임, 퇴근 후 TV에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일까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낳은 새로운 일상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비전형 노동'의 쓸모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비전형 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엔 익숙한 노동 착취의 그림자가 짙다. '새벽 배송'의 유행으로 택배 노동 현장은 24시간 일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변했다. 지하철 운행을 단 몇 분 멈추지 못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지하철이 달리는 철길 위에서 작업해야 한다. 편리한 점심식사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위반을 감수하고 스쿠터를 몬다. 주당 52시간이라는 규제를 비웃듯 주당 100시간이 넘게 일하면서도 '노동자'로 취급받지 않는 IT, 방송업계 종사자들이 지금도 밤을 새우고 잠을 줄여가며 게임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주당 100시간! 과장이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정규직 관리자들은 주당 52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A팀, B팀을 나눠서 촬영계획을 짠다. 꼼수가 있다. 일용직으로 계약한 스태프가 양팀 모두를 지원하라고 지시를 받으면, 그는 도합 104시간을 일하게 되지만 누구도 이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택배 분류 노동 역시, '집품'이라는 공식 업무만이 작업 내용으로 셈해지지만, 사실상 '입/출고', '링크' 등 상식적으로 배달에 필요한 모든 작업이 포함된다.

일과를 마친 후 스마트폰 만보기에는 하루 5만 보가 찍히고야 만다. 월 40만 원에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패션스타일리스트들의 다른 이름은 '청담동 노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류'는 바로 이들이 떠받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비전형 노동' 시장으로 유입된다는 데 있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이 청년들에게 기업은 2년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2년간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정규직 전환 약속이 허울뿐인 이유다. 노동자들은 제도에 호소해 개선을 바랄 수도 없다. '비전형 노동'이 그야말로 '비전형'인 것은 기존 제도가 이 노동 형태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노동이라 해석하지 못하고, 따라서 '비전형 노동자'는 법적 노동자가 되지 못한다. 4대보험, 주당 52시간, 안전한 일터를 위한 규칙으로부터 '비전형 노동'은 항상 예외이다.

새벽배송, 주 2회 방영... 이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김용균 추모제 피켓 ⓒ 이한솔 제공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 더 이상 계속 과로로 노동자를 잃고 누군가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떠밀 수 없다. 더없이 편리해진 일상 이전, 이를테면 다음날 새벽같이 배달된 물건을 받아보지 못했던 때로 돌아갈 것을 고민해야 한다. 변화의 기미도 분명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촬영에 드는 노동시간을 감안해 통상의 주 2회 편성 대신 주 1회 편성으로 방영됐다. 방송횟수보다 노동자의 제작 환경을 우선한 덕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자 30분 배달제'를 맞추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달노동자 사건을 계기로 유사한 관행을 없애버린 '청년유니온' 활동이 있었다. 피자를 30분 안에 받는 것이 한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나는 믿는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비전형 노동'에도 마찬가지다.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곧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쪽에게만 주어지던 부담과 비용을 조금씩 나누자는 합의이다. 더 편리하고 빠른 일상을 대가로 누군가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면, 그 거래야말로 '공정하지' 않다. 일용직과 단기계약직 청년노동자에게도 산재와 고용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보고 지원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노동 형태가 있다면, 누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파견하고 처벌하며 현장의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 공공기관 내지 공기업이 수익을 위해 하청구조에 기대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혈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비전형 노동'으로 유지되는 우리의 일상이 거부할 수 없는 큰 변화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변화를 가로막는 낡은 규제를 비판하기도 하고, 소비자의 욕구와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시장 원리가 왜 문제냐 되묻기도 한다. 지금의 사건사고가 특수한 몇 개 현장의 문제일 뿐, 대다수는 괜찮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뛰어난 대중예술 콘텐츠, 효율적이고 흥미로운 일상,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창업가의 모험에 주목하는 일이 곧 '비전형 노동'의 숨겨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1:29:300의 비율로 사소한 징후와 작은 사고들이 나타난다. 이번 10월에 목숨을 잃은 청년 택배 노동자의 비극은 수백번, 수천번 예고된 일이었다. 오늘, 청년이 죽지 않았다고 안녕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한솔 이사 방송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하며 투신한 고 이한빛PD의 동생 ⓒ 이한솔 제공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한솔님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재)와글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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