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 18:15최종 업데이트 20.11.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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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 참석,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정문에 서명하자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15일 아시아 태평양 15개 국가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통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이하 알셉협정)을 체결했다. 201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남아 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처음 논의된 이후 만 8년만의 결실이다. 이번 협정의 배경과 의미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특히 당사국들은 향후 이 협정이 자국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손익 계산에 분주하다.

이번 협정으로 전통적 경제이념을 둘러싼 논쟁 역시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역내 패권을 둘러싼 미중간의 대립구도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알셉협정은 이처럼 앞으로 국가 간 손익계산 범위를 넘어 다원적 국제 문제에 적지 않은 이슈와 논쟁의 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알셉을 포함한 모든 자유무역협정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 간 무역장벽을 없애 수출입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기업의 소득을 극대화하고 소비자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소득과 소비자의 권익이 역내 모든 국가들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강제조약이 아닌 이상 윈윈게임이 보장돼야 협정이 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의 생산,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제도적 차이들을 줄이기 위한 점검과 수정 보완하는 긴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국내법과의 충돌이 나올 수 있고 업종 간 갈등, 노동자층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이처럼 국가 간 자유로운 무역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는 길고 어렵다. 그런데 양자 합의도 아니고 무려 15개국 간의 협의가 8년 만에 협상 타결에 이른 것은 상당히 빠르게 이룬 성과다. 물론 속도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점 또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알셉협정에 전 세계 이목 집중된 이유

무엇보다 과연 자유무역이 기업의 소득과 소비자의 권익에 유익한가의 질문이 중요하다. 국가 경제를 위한 자유무역의 장점 여부를 둘러싼 본격적 논쟁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다. 당시까지는 수출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 한 국가의 부강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방식의 수입 억제를 전제로 하는 정책은 지금도 상당히 보편적인 상식으로 퍼져 있다.

문제는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인다는 것이 보편적 전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내다 파는 양보다 사들이는 양이 적다면, 반대로 파는 양보다 사들이는 양이 많은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이익을 얻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상식 속에서는 협력보다 경쟁 또는 착취가 따른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직후 곡물 가격이 폭락하자 영국에서는 곡물법을 제정, 일정 수준까지 곡물의 수입을 금지시킨다. 물론 땅을 소유한 대지주들에게 유리한 법이다. 반면 물건의 수출입으로 부를 누리는 신흥 자본계급 입장에서 곡물법은 악법이 된다. 이들의 반발은 당연했고, 이미 사회의 중심 계급으로 성장한 자본가들의 요구가 결국 받아들여지면서 곡물법은 폐지된다.

경제학사에서는 흔히 이 사건을 자유무역이 보호무역에 승리한 첫 사례로 꼽는다. 이 때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논리로 등장한 것이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Ricardo)의 비교우위론이다. 모든 나라가 모든 제품에 대해 똑같은 생산조건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 생산비가 적게 드는 물건을 만들어 팔면 각 국의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국가 간 무역장벽 제거 협정을 맺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내려온다. 그리고 양자 간 협정을 넘어 일정한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성사시킨다면 시장 규모는 훨씬 커지기 때문에 20세기 초 이후 지구촌 여러 지역은 국가 범위를 넘어서는 거대한 경제단위 (블록) 체계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18 ⓒ 연합뉴스

 
굳이 차이를 둔다면 자유무역협정(FTA)은 지역한계를 두지 않지만 블록경제는 규모가 커지는 대신 지리적 유사성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수출입 대상이 실물 거래이기 때문에 운송의 지리적 조건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역시 경제 블록을 우선적 목표로 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출발한 것은 잘 알려진 일. 그 밖에 남미공동시장(MERCOSUR),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대표적 경제 블록의 예들이다.

물론 이들 간의 단일성과 응집성은 동일하지 않다. 유럽연합(더 정확히는 유로존)이 공동시장까지 성공한 가장 앞서나가는 경우라면, 남미공동시장은 내부의 자유무역 보장뿐 아니라 대외적 관세율까지 공동 대응하는 단계다. 그런가 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아직 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 단계, 즉 각종 무역장벽을 상호 해제해주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러한 경제 블록은 이중성을 갖는다. 역내 국가들 간에는 무역장벽을 없애고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만, 블록의 경계선 밖의 국가에 대해서는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더 거시적 차원에서는 다시 폐쇄적 경제관계를 유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블록경제의 이중성 가운데 역내 원활한 자유무역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대외적 폐쇄성에 상대적 무게 중심이 더 실리느냐, 혹은 적어도 일정한 폐쇄성의 의도적 목적이 내포돼 있느냐의 문제가 오늘날 대부분 블록경제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역내의 자유로운 상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외부에서 관여할 이유가 없지만 외부를 배제, 차별하는 목적이 두드러진다면 외부의 입장에서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체결된 알셉협정에 대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개 아세안(ASEAN) 회원국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에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나라가 합세해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만큼 그 규모와 영향력에 관심이 모아진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벌이다 합류를 거부한 인도까지 합하면 모두 16개국에 해당하는 대규모 자유무역 블록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대부분의 역외 외신들이 눈여겨 본 대목은 알셉협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놓고 미국과 패권을 다투던 중국이 포함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 오바마 정부 당시의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결성에 정성을 들였다.

반면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즉 알셉협정으로 맞불을 놨고, 당시에는 티피피(TPP) 가입이냐 알셉 가입이냐 선택을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으로 극단화하는 언론들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미국은 돌연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고 티피피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이 빠진 티피피는 조타수가 빠진 선박이나 다름없었고, 유야무야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티피피와 알셉을 대립관계로 보고 있지만 결정적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티피피에서 미국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국이 참여하면 가능하고 불참하면 불가능한 협정이었다. 반면 알셉에서 중국의 정치적 지분은 티피비에서의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

알셉을 처음 주창한 곳은 아세안(ASEAN) 즉 동남아 국가연합이었고 일부 국내 언론이 선정적 보도를 하듯 중국이 일방적 주도하는 협력체가 아니다. 아세안(ASEAN)의 이니셔티브에 한중일이 합류하고 오세아니아의 두 국가가 합류해 완성시킨 것이 알셉협정이다. 심지어 알셉 협의 과정에서 중국이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일본이 주도를 하기도, 때로는 한국이 주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알셉 내부의 경제규모 면에서 중국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중국이 참여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무게감에서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아세안(ASEAN) 국가 간의 응집력은 현재 유럽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가장 견고하다.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고, 문화적, 경제적 유대감이 탁월하다. 유럽연합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 공동체 구성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잠재적 성장 가능성도 높은 곳이다.

한국의 알셉협정 가입도 어떤 의미에서 중국보다 동남아 국가들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현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신남방정책도 중국 편중화를 극복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알셉협정에 대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기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태국의 쭈린 부총리 겸 상무장관은 알셉협정을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의 주도로 이뤄진 가장 진보적 자유무역협정"으로 표현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16일 알셉협정을 "아세안이 주도하고 일본, 한국 등을 포함한 15개국"으로 표현했다.

미-중 갈등 속 아세안 국가들의 미래

그럼에도 이들 아세안 국가들의 미래는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중 갈등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 또는 넓히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 체제 하의 4년 간 미국은 여러 가지 의미로 아태지역의 주도권을 많이 놓쳤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잘못된 무역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쥐었으나, 최근 2년 사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취한 실리는 별로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들어 설사 티피피를 재건한다고 해도 이 지역에서 가졌던 미국의 목소리를 그들은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트럼프 재임 기간 미국이 놓친 것이 너무 많다. 독일의 일간지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은 알셉협정이 세계질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은 알셉협정이 세계질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타게스차이퉁

 
그 이유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일탈을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 대응을 들었다. 알셉협정은 앞으로 광범위한 효과를 낳는 역동성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하고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인지는 모르나 이 신문은 한중일 세 나라 역시 알셉협정을 통해 역사적 갈등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분명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아시아는 그 이전과 다를 것이다. 다만 넘어야할 산이 여전히 많다.

앞서 알셉협정이 8년 만에 타결됐다는 것은 상당히 빠른 진전이라는 평가를 해 두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전제도 함께. 알셉협정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타 지역의 자유무역협정에 비해 느슨한 내용이 여전히 많다.

유럽과 북미지역의 수준까지 협상될 수 없는 영역들을 알셉협정에서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빼버린 경우들이 많다. 민감한 부분은 여전히 덮어 두었다는 뜻이다. 특히 노동과 환경 문제에 관련된 부분들이 그렇다. 이러한 현실은 자유무역의 이상에 걸맞지 않은 현실이 여전히 아시아 지역에는 많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아시아는 당연히 그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속도가 아닌 디테일을 생각해볼 때다. 인권과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은 목줄 달린 강아지의 질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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