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 13:57최종 업데이트 20.12.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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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그랩푸드 라이더와 인터뷰한 내용을 인터뷰이의 동의 하에 일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기자말]

횡단보도에 세 명의 그랩푸드 라이더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전거 두 대와 휠체어 한 대. ⓒ 이봉렬

 
제 나이 서른일곱일 때 뇌졸중이 왔어요. 3년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낫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몸의 오른쪽 절반이 말을 안 들어요. 일어나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고, 오른 팔은 들어 올릴 수도 없어요.

그 전에는 혼자서 개인 사업을 했는데 병을 앓으면서 사업을 접었죠. 이젠 몸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다시 뭘 하고 싶어도 못하고요. 회사 취직은 생각도 못 해 봤어요.


그러다 올 해 1월에 그랩푸드 배달 일을 시작했어요. 쇼핑몰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휠체어를 탄 채로 음식 배달을 하더라고요. 저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알아 봤죠.

일 시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랩 웹사이트에 가서 정해진 양식을 채워 넣으면 얼마 안 있어 승인이 되거든요. 오토바이로 하든 자전거로 하든 휠체어로 하든 아무런 차별이 없어요. 우리 동네에만 해도 저처럼 휠체어 타고 배달하는 사람이 넷이 넘어요. 그랩에서는 제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도 모를 거예요.

몸이 이래서 오래는 못 해요. 전동휠체어 배터리 용량도 생각해야 하죠. 오후 한 시에 일을 시작해서 다섯 시나 여섯 시쯤에 마쳐요. 비 많이 내리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하는 편이에요.

하루에 평균 열 건 정도 배달을 해요. 더 할 수도 있고, 덜 할 수도 있고. 한 건 당 5달러(약 4200원)를 받아요. 거리가 멀든 가깝든, 부피가 크든 작든 금액은 같아요. 하루에 50달러(약 4만 2천 원) 정도가 수입이에요.
 

고객의 집에 도착하면 양해를 구하고 고객이 직접 푸드박스에서 음식을 꺼내도록 합니다. 이 정도가 다를 뿐입니다. ⓒ 이봉렬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앱에 주문이 뜨면 주소를 보고 아주 먼 곳만 아니면 바로 선택을 해요. 그리고 식당에 가서 음식을 찾아서 고객에게 배달하는 거죠. 제가 손이 불편해서 고객이 푸드박스의 음식을 직접 꺼내는 것 말고는 다 똑같아요.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자전거로 하는 사람은 도로와 자전거 도로를 왔다 갔다 하는데, 저같이 휠체어를 타고 배달하는 경우에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만 이용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여긴 어디를 가도 휠체어 이용이 수월하고 어디든 반드시 휠체어용 경사로가 있어서 딱히 불편하진 않아요. 자전거 도로 위에서는 전동 휠체어라 제법 빨리 갈 수 있어요.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없고, 모두 다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규격에 맞춰져 있어서 못 가는 곳은 없어요.

그래도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비해 느린 건 사실이에요. 빨리 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10분 정도는 늦기 마련인데 그걸 기다려 주는 고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1년 가까이 하면서 수고 한다는 소린 들어도 늦게 왔다는 불만은 못 들었어요. 최소한 앞에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았어요.
 

싱가포르는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길도, 건물도, 공공시설도 모두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 이봉렬

 
몸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뇌졸중 있다고 누워 있는 것보단 이렇게 움직이는 게 몸에도 좋고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잖아요. 밖에 안 나왔으면 기자님도 못 만났을 거잖아요.

한국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배달 일을 할 수 없나요? 왜죠? 제가 오늘 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배달 업체들도 장애인 차별하지 말고 뽑아 쓰면 좋겠네요. (기자 : 도시 구조 자체가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불편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해 주지 못했습니다. 창피해서)

또 배달 하나 잡혔네요. 이번 건은 좀 가까운 곳이라 좋네요. 이제 일해야 해서 그만 가 볼게요. 제가 배달하는 모습은 아래 동영상을 통해서 보시면 돼요. 싱가포르의 쇼핑몰, 도로, 아파트가 어떻게 되어 있기에 휠체어로 배달을 다닐 수 있는 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제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휠체어로 달리는 그랩푸드 라이더 휠체어를 타고 음식 배달 하는 게 가능할까요? 보도에서 만나는 장애물, 휠체어를 가로 막는 계단, 사람들의 시선, 부족한 엘리베이터...... 한국에서는 걱정이 앞서지만 싱가포르에선 가능합니다. 직접 따라가 봤습니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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