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 16:17최종 업데이트 20.12.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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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손주가 코로나 땜에 유치원에 못가서 내가 돌봐주고 있어야 해요."
 
김윤환은 전화를 끊으면서 난감했다. '푸른 어머니학교'의 '인정반' 정순 어머니가 화요일, 목요일 수업을 모두 빠져 걱정을 했는데 예상대로였다. 칠순이 넘은 그녀는 해방둥이였다. 아침이면 학교 가는 오빠가 골목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엄마아빠 새참을 준비했다. 그런 날들을 보내느라 학교 들어갈 때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뒤늦게 한글 교실에 나와 재미를 들였건만 손주가 밟히니 배움은 그녀에게 평생 자갈밭인 모양이다.
 
김윤환은 전화를 한 군데 더 걸었다. "코로나 걸려서 한글학교 다니는 게 알려지면 안 돼요"라는 순덕 어머니의 대답은 마음에 더 걸렸다. 당신이 "글자를 몰랐다는 게 들킬까 봐" 당분간 공부를 쉬겠다는 얘기다.
 
푸른어머니학교의 교사

김윤환은 무거운 맘을 털어내고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자서전 쓰기 첫날,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세 가지를 써서 발표하기로 했는데 수업이 잘 될까 근심이다.
 

청년 활동가 김윤환 '인정반' 어머니 수업교실에서 찍었다. ⓒ 민병래

   
김윤환이 '푸른 어머니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8년이다. 그 해는 경희대 철학과 11학번으로 당시 4학년이었던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했다.
 
친한 친구는 맥주를 마시다가 "나는 성소수자"라고 털어놨다. 김윤환이 친구와 술 자리를 마치고 거리로 나왔을 때 사방은 희붐했고 새벽 첫차 소리가 들렸다. 또 한 친구는 채식주의를 실천 중이었다. "동물과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얘기했다. 여학생들은 '성평등' 관련 대자보로 김윤환을 잡아끌었다. 
 
그 덕분인가? 그는 '푸른 사람들(대표 서화진)'로 학점인정 NGO 인턴활동을 나갔다. 여기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30여 년 가까이 한글교실과 다문화 도서관 같은 사업을 해온 시민운동단체다. 이곳의 '학습자 어머니'들은 대부분 칠순 안팎이어서 3층에 있는 교실까지 올라오는데 한나절이고 내려갈 때는 여기저기서 "에고고 무릎이야"하는 소리를 냈다. 책상에 앉으면 돋보기부터 꺼내고 "어머, 보청기를 놓고 왔네" 하며 속상해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김윤환은 두 달 동안 부담임을 맡아 '씨앗반'의 한글수업에 참여했다. 어머니 한 분 한 분을 챙기면서 교재의 뜻도 설명하고 맞춤법도 봐 드렸다. 화, 목 2시간씩 하는 수업은 짧았다. "선생님, 이거 맞게 썼나요?" "그 할머니만 신경 쓰지 말고 내 거도 봐줘" 하며 여기 저기서 김윤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받아쓰기를 할 때는 한 글자 한 글자씩 힘주어 쓰다가 연필을 똑똑 부러트리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들은 손주같은 김윤환에게 "오늘도 많이 배워 고맙습니다"하며 머리 숙이고 곶감이며 사탕을 건네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매일 매일 자신이 배우고 행복한 체험을 하는데 이런 존중을 받는 게 외려 황송했다.
  
"우물가에 갔을 때 차가운 물줄기가 한 손에 떨어지는 동안 설리번 선생님은 다른 한 쪽 손에 천천히, 두 번째는 빠르게 물이라고 썼다. '물'이 내 손에 흘러내리는 차갑고 놀라운 물질임을 그때 알았다. 언어의 신비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단어가 내 영혼을 깨우고 빛과 희망,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
- <헬렌 켈러의 자서전>,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헬렌 켈러는 자서전에서 이 놀라운 체험을 쓴 바 있다. 사실 씨앗반 어머니들은 매 수업 시간마다 헬렌 켈러와 같은 경험을 한다. 공책에 꼭꼭 눌러 쓰여진 글씨는 교실로 파고든 햇살을 만나면 생기있게 일어선다. 어머니들을 빛이 충만한 언덕으로 인도한다. 학습자 어머니들은 너른 벌판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아모르 파티'가 몇 번 노래인지 찾을 수 있고 '안동역'의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다. 모두 천하 명창이다. 글씨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도 위대할 줄이야!
 
그렇게 두 시간 동안 글씨를 익히다 보면 안경테를 따라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 손등에 떨어지고 어머니들 머릿단에선 어김없이 국화 향기와 진한 토란국 내음이 올라왔다. 
 

김윤환이 춤추는 모습 어머니학교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 푸른 어머니 학교 제공

 
대학교 전공수업시간에는 스토아학파니 공리주의니 하는 얘기가 허공을 맴돌았다. 친구들의 눈은 롤 게임과 공무원 기출 시험으로 향해 있었고 강의실 밖도 다를 바 없었다.
 
김윤환은 두 달간 신비로운 체험을 하며 행복했다. 그래서 학점인정 NGO 활동이 끝나고 그해 여름방학부터 푸른어머니학교에서 자원교사 활동을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시립대, 외대를 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하는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그리고 2019년 5월 마침내 푸른사람들의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이문동 골목길에서 피어난 자서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숙제를 봐 달라고 할 때 죽고만 싶었어요. 문밖을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려는데 비가 와서 다니는 사람도 없더라구요."
 
김윤환은 정순 어머니와 순덕 어머니가 못 나오지만 여덟 분을 모시고 자서전 쓰기 첫 수업을 그대로 진행했다. 첫 번째 발표가 시작되니 여기저기서 맞아 나도 그랬어, 애들 공부 못 봐준 게 젤로 가슴 아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땅만 보고 다녔습니다. 간판에 쓰여 있는 글씨를 모르는데 혹시 누가 물어볼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시장 사람들이 돈 떨어진 거 찾느라고 저 여자는 땅만 보고 다닌다고 흉 봤습니다."
 
두 번째 발표가 이어지니 다들 콧물 반 눈물 반이다. 그러면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옆의 씨앗반 어머니들이 뭔 일인가 궁금해서 들어와 볼 정도였다. 서러운 세월이 강물이었는데, 가슴 속에 맷돌을 달고 살았는데, 눈물과 박수에 한풀이가 된 분위기였다.
 

인정반의 수업 모습 코로나로 어머니들 참가가 많이 줄었지만 수업은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다. ⓒ 민병래

 
김윤환은 사실 자서전 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될까? 반신반의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영웅 호걸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무대를 독차지하고 자기 서사를 뽐낸다. 하지만 이문동 작은 교실에서 피어난 서사도 이에 못지않았다. 뒤안길만 걸은 삶속에는 봄동과 쑥이 가득했다. 등굽이길 같은 인생에는 민들레 홀씨와 거름풀이 그득했다. 정녕 아름다운 서사였다.
 
자서전 발표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수업 시작 전에 숙제를 안 해온 어머니들은 눈을 못 맞췄는데 다음엔 꼭 써오겠다고 다짐했다. 학교에 와서 진짜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감탄사가 교실에 넘쳐났다. "학생은 앉아서, 선생은 서서 배운다"는 푸른어머니학교의 다짐대로 김윤환은 오늘도 인생을 한 보따리나 배운 느낌이다.
 
좋은곳 좋은사람 좋은일
 
김윤환이 자리로 돌아오니 문종석 교장, 서화진 교감이 뭔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모양새다. 1994년에 푸른시민연대를 만들어 성인 한글교육을 시민운동으로 이끌어온 두 사람이다. 30년 가까이 해마다 백 여명이 되는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글을 깨우치고 빛을 얻었다.

오랜 세월을 지켜왔건만 올해는 코로나로 후원이 많이 줄어 두 사람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근자가 김윤환과 안형남 사무처장, 그리고 다문화도서관 '모두'의 일꾼까지 치면 전부 여섯 명이다. 자원활동가들의 봉사와 후원인들의 뜻 깊은 정성이 있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다.
 
김윤환이 2019년 5월 상근활동가를 결심할 무렵, 엄마는 당신 친구 자식들이 "법무사에 합격했다더라, 공기업에 붙었다더라"같은 얘기를 종종 했다. 그의 첫 출근날에는 묘하게도 오랜만에 선배가 전화를 걸어 와 "내가 작년에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우리 회사도 앞날이 불투명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며 이런저런 조언을 늘어놓았다. 
 

푸른의 젊은 자원교사들 김윤환과 함께 어머니교실의 젋은 피,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 민병래

 
김윤환은 사회생활의 첫발을 '푸른'으로 내디디면서 월급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불안할 수 있는 미래는 담담히 안고 나아가기로 했다. 이미 자원봉사를 할 때부터 이곳의 속사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장과 교감의 심각한 표정이 잦아지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윤환이 눈길을 돌려 창밖을 보니 늦가을은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은행나무 한 잎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가 순순히 제 몸을 거둬 땅으로 향한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거리에서 콩콩 뛰어가고 어디선가 푸드득 날아온 비둘기는 창틀에서 모이를 찾는다. 10시 수업이 끝나면 늘 마주하는 풍경,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바라보면 더욱 좋다.
 
"점심 먹으러 가자"는 교장의 말에 김윤환은 외투를 집어들었다. 그가 일어선 책상 한 켠에는 출근하는 첫 날 (그가) 써놓은 글귀가 반짝인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을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못다 한 이야기
① 사단법인 푸른 사람들은 '푸른 어머니학교', 다문화 도서관 '모두', 청소년 지원 '꿈토리'사업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30여 년째 하고 있는 시민운동단체입니다. 94년 결성 때는 '푸른시민연대'로 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현재의 이름을 쓰고 있고 김윤환은 푸른사람들의 상근자로 주로 푸른 어머니교실과 꿈토리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http://www.epurun.org)
 
이 글을 쓴 저는 이 단체에서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② 이 글에서 수업 풍경이나 자서전 발표 내용은 그동안 수십년 동안 각종 자료와 발표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꼭 김윤환의 수업 내용으로만 국한해서 서술한 것은 아닌 점을 밝혀둡니다.
 
③ 조너선 코졸이 1985년에 쓴 'illiterrate America(비문해의 나라, 미국)'에서는 완전 문맹이거나 제대로 읽고 쓰기를 할 수 없는 미국인들이 6000만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18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비문해 성인인구는 311만명 (약 7.2%)에 다다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60대 이상 여성으로 좁히면 그 비율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게 푸른어머니학교의 판단입니다)

 <푸른에서 보낸 시간들>
 

청소년 꿈토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청소년 진로상담도 김윤환의 주요 업무다. ⓒ 푸른사람들 제공

 
 

푸른의 상근자들과 함께 오른쪽부터 문종석 교장, 김윤환, 서화진 교감, 안형남 사무처장 ⓒ 민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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