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6 13:24최종 업데이트 20.12.16 13:24
  • 본문듣기
 

가을학기 교정의 모습. 한 학기 내내 캠퍼스가 비어있다시피 했습니다. ⓒ 강인규

 
미국 대학의 가을학기가 끝나갑니다.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면, 한 학기를 끝낸 안도감과 더불어 좀 더 열심히 가르치지 못한 후회가 뒤섞여 밀려오곤 합니다.

이번 학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교실 강의를 끝낸 뒤, 늘 그랬듯 아련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떠나고 난 교실을 둘러보면서 문득 깨닫습니다. 학기 내내 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네요.

하지만 사람의 정은 마스크의 장벽쯤은 가벼이 넘어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을 나서기 전까지도 제가 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했으니까요. 마스크 너머로 주고받은 대화, 눈 모양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던 숨은 미소 때문일 것입니다.

강의 특성상 부득이 교실 수업을 해야 했고, 제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도 몇 명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방과 후 한 학생과 과제물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며칠 뒤 그에게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만, 다행히 강의실을 통한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유지를 철저히 준수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시험지나 수업자료를 나눠 줄 때도 파란색 수술용 장갑을 고집했습니다. 인쇄물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굳이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대화 중 학생들 코가 마스크 밖으로 삐져나오면 고쳐 쓰라고 정중하면서도 단호히 이야기했고, 학생들도 잘 따라 줬습니다. 다행히 학기말까지는 감염되었던 학생들이 모두 완쾌해서 기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확진상황 비교 그래프. 한국이 2월 이후 거의 수평을 유지하다가 최근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미국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Bing

 
반면교사 미국의 교훈

현재 한국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상태는 훨씬 위태롭습니다. 최근 미국은 사망자가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한국에 조언할 처지가 아닌 미국에 사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미국의 현 상황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미국은 12월 들어 매일같이 2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22만 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23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미국 인구가 한국의 6배라는 점을 고려해도,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국이 이토록 심각하니 한국 정도는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막지 못하면 미국과 같은 끔찍한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1일 확진자가 막 천 명을 넘어선 한국의 현재는 3월 중순 미국의 상황과 견줄 만합니다. 당시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다수의 학교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고, 일부 주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고 식당 내에서 식사하는 것을 금하면서, 비필수 시설을 폐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미국의 하루 확진자는 6천여 명 수준이었습니다. 다수 시민과 보건 전문가들을 긴장시켰던 이 시기가 이제는 '새 발의 피'로 보일 정도입니다. 미국이 이 때 잘 대처했다면, 누적 확진가 수가 1700만 명에 달하는 처참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중앙정부는 신속하고 일관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에서는 정치성향에 따라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거나 조롱했습니다. 일부 시민은 마스크를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고, 착용을 요구하는 업소 직원을 폭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스크와 거리유지 의무화가 민주주의를 억압한다는 주장을 하고, 바이러스 대유행이 날조된 조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더 나아가 모종의 세력이 전 세계 인구를 특정 숫자로 맞추기 위해 바이러스를 제조해서 퍼뜨린다는 음모론도 제기됐습니다.
 

성조기를 든 채 마스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 ⓒ Neett

 
제가 사는 미동부는 주정부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여름부터 상황이 크게 개선되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제가 일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비필수 업소 폐쇄를 비교적 빠르게 시행한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결과 3월에 모든 공연장, 극장, 체육시설이 문을 닫았고, 식당에서는 실내 취식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런 강력한 조치로 인해 증가세가 누그러졌고, 그로 인해 주내의 여러 대학이 가을학기에 교실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이 화근이었을까요? 사실 3월 이후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었지만, 증가율이 완만해졌다는 이유로 경제 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 실내시설이 하나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1월 이래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교실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역설

현재 펜실베이니아에서는 12일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인구는 한국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데 10배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펜실베이니아가 최악의 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주는 누적 확진자 수로 8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대거 실내로 몰려들었는데, 여름에 느슨해진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건조한 공기일수록 코로나 확산 위험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보다 마스크 착용을 더 엄격히 하고 대인거리를 더 철저히 준수해야 과거 수준의 안전이나마 도모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이러스와 면역 전문가들은 겨울철의 건조한 기후로 인해 실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위험이 훨씬 높다고 경고합니다. <네이처> 인터넷판 이미지. ⓒ Nature

 
겨울철에 다수가 모인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도 위험한데, 남과 가까이 앉아 먹고 마시며 대화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사태가 악화하기 전까지 찻집과 식당에서 삼삼오오 마주앉아 대화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주문한 뒤, 동료들과 자리에 앉아서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한동안 실내에 갇혀 있던 탓에 만남은 반갑고 대화는 즐거웠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비극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최근에 나온 흥미로운 연구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교실수업을 많이 들은 학생이 그러지 않은 학생들보다 코로나에 적게 걸렸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연구결과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연구를 꼼꼼히 읽어본 뒤에는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을학기가 끝난 뒤 인디애나대학교에서 7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대면 수업을 많이 받은 학생들과 비대면 수업을 많이 들은 학생들의 코로나 확진 비율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 결과 1-3학점을 들은 학생들의 확진비율은 8퍼센트로 나타난 반면, 13-15학점을 들은 학생들은 2퍼센트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코로나19 시대 교실의 모습 ⓒ pixabay

 
이유는 이렇습니다. 강의실에서는 학교에서 정한 원칙에 따라 엄격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입니다. 반면에 친구들 사이나 가정 내에서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지요. 따라서 교실수업을 많이 듣는 학생들일수록 바이러스에 노출될 시간과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교실에서 철저히 방역원칙을 준수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겠지요.

이 연구의 교훈은 '대면수업이 비대면수업보다 안전하다'가 아닙니다. 방역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한, 가정을 포함해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터널 끝에 서서

이미 1년 가까이 비상상황을 겪다 보니 피로감이 크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2월에 909명까지 올랐다가 이제 겨우 확산세를 잡았다 싶었는데, 이달 12일에는 950명, 13일에는 1030명, 16일 1078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니, '제자리걸음을 한 게 아닌가'하는 허탈한 마음도 들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라는 환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 이번에도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한 위치에 와 있습니다.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백신이 개발돼 접종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표현에 '터널 저편에 빛이 보인다(the light at the end of the tunnel)'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 하더라도, 환한 끝이 보이는 것과 오리무중의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든 셈이니까요. 이제 우리가 견뎌 온 시간의 절반 정도만 더 참으면 될 테니,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막 접종이 시작된 백신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이 영국에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긴급승인'이라는 용어 때문에 합당한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자문위원회의 승인 권고 투표에 앞서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백신의 효능을 나타낸 그래프. 파란 선이 백신, 붉은 선은 플라시보(위약) 접종 결과를 보여줍니다. 둘 모두 동일하게 확진자가 증가하다가 10일을 전후해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환자가 나타나지 않은 채 직선을 그리는 반면, 플라시보를 맞은 피험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 FDA

 
결과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미 개발 단계에서도 백신의 효능이 95%에 이른다는 점이 보고됐습니다만, 두 차례 접종하도록 돼 있는 이 백신은 첫 주사 후 10일을 전후로 뚜렷한 예방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게다가 백신은 성별, 인종, 연령과 상관없이 동일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일시적 두통, 열, 근육통, 관절통, 안면마비 등의 사례가 보고되기는 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예일대학의 이와사키 면역학 교수가 "백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성적표"라고 극찬하고, 마요 클리닉의 백신 전문가 폴랜드 박사가 "모든 면에서 그랜드 슬램"이라며 환호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긴급승인 대기 중인 모더나 백신도 유사한 효능이 기대되고 있으며, 추가 임상시험 중인 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역시 중간시험에서 70-90%까지 예방효과를 보였습니다. 그밖에도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다른 백신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난 8월, 앤서니 파우치 미국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은 브라운대학교 주최 세미나에서 "백신의 효과가 75%쯤 되면 좋겠지만, 50-60%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물론, 새로 개발된 백신이기에 장기적, 누적적 부작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 식품의약국의 화이자 백신 자문위 표결에서 일부 반대표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7명이 승인 권고에 찬성하고 4명이 반대했는데, 여기서 반대표를 던진 위원 중 3명은 연령의 문제를 제기했고, 1명은 장기적 효과를 판단할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화이자 백신은 승인 신청 전까지 2상과 3상 시험에서 6개국 1만 8천 명에게 접종됐는데, 여기서 16-17세에 해당하는 피험자는 138명으로,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습니다. 샘플 수가 적어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플라시보(위약) 접종자 중에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백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접종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제출했다면 기꺼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접종이 시작된 후 업데이트 된 백신 관련 정보. 미국 식품의약국 자문위 가운데 3명이 18세 미만의 연령에 대한 샘플 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긴급승인 이후 이 연령대의 관찰대상이 크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Pfizer

 
나머지 한 명인 미시건 대학의 오비타 풀러 교수는 장기적 효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며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접종이 시작되고 2달 정도 지나면 대답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 대중에게 접종이 시작될 무렵이면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상당부분 해소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머잖아 터널 저편으로 나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어두운 터널을 뒤로하고, 여름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