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2 12:57최종 업데이트 21.01.12 12:57
  • 본문듣기
지난해 11월 27일, 저는 "신규 확진자 0명... 싱가포르의 신박한 코로나 어플"(http://omn.kr/1qpp8)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부제는 "전 국민 코로나 추적 앱 사용 강제... 사생활 침해 지적도"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싱가포르가 전세계 최초로 코로나 추적앱인 "트레이스 투게더"를 도입했는데, 이 앱은 블루투스를 통해 근처에 있는 다른 휴대폰과 사용자 아이디를 주고받아서 나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밀접접촉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앱의 도입으로 역학조사가 쉬워졌고, 그 때문인지 10월 이후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한 자리수로 떨어졌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12월 말부터는 식당, 직장, 학교 및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출입할 때 트레이스 투게더 앱 또는 단말기를 통한 체크인을 의무화 했습니다.
 

제 휴대폰에 설치된 트레이스투게더 앱 화면입니다. 최근 14일간 코로나 확진자와의 접촉자가 없다고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공공시설에 출입할때 이 앱을 통해 체크인을 하게 됩니다. ⓒ 이봉렬

 
저는 이 앱에 대해 소개하면서 기사 말미에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전했습니다.
 
개인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는 등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크고, 해킹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의 감시를 받게 될 거라는 걱정도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답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개인의 GPS 위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며, 데이터는 기기에만 저장되고 연락처 추적 목적으로만 정부와 공유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적다고 해명합니다. 단말기 사이에 주고 받는 데이터 역시 임시 아이디이고 주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제 3자가 개인을 식별할 수 없으며, 25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된다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트레이스 투게더 앱은 싱가포르가 전세계 최초로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코로나 추적앱이며, 싱가포르 정부는 여기서 모인 개인 정보를 코로나 추적 및 예방 목적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5일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데스몬드 탄 내무부장관은 트레이스 투게더를 통해 수집한 정보가 범죄수사에 이용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데이터가 범죄 수사에 사용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미 한 건의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이 데이터를 사용했다고도 했습니다.

그의 발언 중에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레이스 투게더가 수집한 데이터는 싱가포르가 수집하는 다른 데이터들과 같이 취급된다"고 한 것입니다. 경찰이 원하면 코로나 추적 앱이 수집한 개인정보를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개인이 언제 어떤 사람과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가 모두 공개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생활 침해 문제입니다.

내무부 장관의 발언 직후 트레이스 투게더 홈페이지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트레이스 투게더 홈페이지에 "트레이스 데이터는 시민의 안전과 보안이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노란색 표시 부분) ⓒ 트레이스 투게더 홈페이지 갈무리

 
트레이스 투게더 데이터는 시민의 안전과 보안이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받은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 싱가포르 경찰은 범죄 수사를 위해 트레이스 투게더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는 권한을 형사소송법(CPC)에 따라 부여 받았습니다.

내무부 장관의 이 발언과 갑작스러운 규정 변경은 곧바로 온라인 상에서 많은 반발을 불렀습니다. 싱가포르 상주 인구의 78%가 사용하고 있는 이 앱을 앞으론 사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트레이스 투게더가 사생활 침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지난해 6월 로렌스 웡 교육부 장관은 한 컨퍼런스에서 "범법행위를 가려내기 위해 트레이스 투게더 앱을 사용할 의도가 없다"고 했고, 같은 자리에서 비비안 외무부 장관은 "트레이스 투게더 앱에서 생성된 데이터는 오로지 연락처와 시간 추적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 발언들과 정반대 되는 내무부 장관의 발표로 인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트레이스 투게더 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7가지 심각한 범죄에 한해서만 사용하도록 법을 제정하겠다는 소식을 전하는 <스트레이츠 타임스> 톱기사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홈페이지 갈무리

 
논란이 계속되자 9일, 정부의 후속 대책이 발표되었습니다. 정부는 우선 "트레이스투게더의 데이터가 형사 소송법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지 않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한다"며 앞으로는 "살인, 마약, 테러 및 성범죄를 포함한 7가지 중대 범죄만 조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애초에 코로나 추적앱이라고 홍보하고 사용하도록 강제한 트레이스 투게더앱이 중대 범죄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지만 결국 정부의 필요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셈입니다. 이번 사례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더라도 온 국민의 개인정보가 한 곳에 모였을 때 정부는 손쉬운 통치를 위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것처럼 트레이스 투게더는 코로나 확산을 막는 데는 큰 효과를 낸 "신박한 어플"이었지만, 이제 개인의 사생활에 깊숙히 관여하는 위험한 어플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명분 앞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QR코드를 이용한 개인정보 수집이 보편화 되고 있는데 이렇게 수집된 정보의 도용과 악용을 막기 위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