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5 19:26최종 업데이트 21.01.1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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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란은 반갑잖다. 사면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도 만만치 않거니와 법의 형평성과 존엄성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백척간두에 올라선 국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시기에 사면 논쟁은 온갖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처럼 작용한다. 야당 정치인에 의해 부풀려지고 보수 언론이 주고받으며 사면론을 키우는 형국이 되었지만, 애초 풀어서는 안 될 봉인을 푼 건 민주당 이낙연 대표다.

이 대표의 사면론 주장의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통합이다. 수감된 전직 대통령을 사면함으로써 정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으로 나가자는 게 요지다. 그러나 정치적 대의를 무시하고 법의 근간을 훼손해 가면서 주장한 국민통합이 제대로 성사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만들고, 국민에게 진의를 의심받아 국정 추진력을 상실했던 게 과거 정권에서 시도된 원칙 없는 국민통합의 후과였다. 법의 심판도 이제 가까스로 끝나고, 여전히 파헤쳐야 할 의혹이 많은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를 두고 사면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또 다른 분열을 만드는 일이다.

사면론 ≠ 국민통합

문제는 정치인 이낙연의 무게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장수 총리를 역임하고 174석 거대 여당의 수장이 된 이낙연 대표의 한마디가 야당 의원들이나 여당 초선 의원들의 사면 주장과 같은 무게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을 두고 청와대 교감설 등 온갖 추측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대선 주자로서 여론조사에서 오랫동안 1위를 지키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려난 위기의식의 발로에서 사면론을 꺼내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도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든, 여론조사 위기의 반영이든, 전직 대통령 사면론 주장은 정치인 이낙연에게 득 될 게 없다. 단지 이낙연 대표만이 아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되돌아보면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힘이나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건 국민의 개혁 염원이 모인 결과였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 믿기 어려운 일들이 터져 나오니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정권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에 권력을 맡긴 것이다. 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야당에 의해 몇 번이나 좌초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요구가 집약된 거대 민주당에서는 나약함과 혼란스러움이 먼저 보인다. 이러다가 또다시 만년 2등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엇바뀐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이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다.

국민의힘이 낮은 지지를 극복하고 30% 지지율로 반등한 건 보수 지지층의 요구를 충실히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조국 전 장관의 공정성과 추미애 장관의 독선적인 추진력 프레임으로 맞대응한 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측면에서 유효했다. 또 윤희숙 의원을 내세워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세입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논리를 편 것 또한 집값 폭등과 주거 불안에 등진 민심을 국민의힘 지지로 끌어내는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당내 반발 여론에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사과한 것 또한 부패와 국정농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고 의도한 결과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과거 새누리당이나 자유한국당과 달라졌다고 판단할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 검찰을 수하처럼 부렸던 과거 보수정권이나 검찰 개혁을 사사건건 막아선 지금이나 검찰이 가진 힘을 이용해 보려는 본질은 변한 게 없다. 세입자 걱정을 한다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부동산 정책의 근간은 여전히 부자 편들기다. 전직 대통령 잘못에 대해 비대위원장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런 정권에서 충실한 동조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당의 중추다.

그래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불의를 묵인한 어설픈 타협이 아니라 개혁 의지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보다는 임대차 3법이 집값 안정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전직 대통령 잘못 사과에 민주당은 사면론으로 화답할 게 아니라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인적 청산부터 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 주장이다.

천문학적인 국고를 낭비한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 재판 거래 의혹과 세월호 사건 등 여전히 진실을 밝혀야 할 사건이 많다. 전직 대통령이 수감 생활을 한다고 이 의혹들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면을 핑계로 은닉된 범죄에마저 면죄부를 줘서는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14일 대법원은 국정농단과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이미 확정된 징역 2년을 합치면 총 22년의 징역형이 확정된 셈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난  후 일부 언론이 '공은 문 대통령에게 넘어갔다'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확정판결… 문 대통령의 고민'이라는 제목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전직 대통령 사면이 일부 언론사에는 희망 사항일지는 모르지만,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권 운운하는 건 헌법 모독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져야 하는지 몇 번 읽어봐도 모르겠다. 법의 잣대로 사법부가 확정한 판결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가두고 재판한 건 법의 기준이지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다. 이런 요구야말로 삼권분립의 취지를 무색게 하는 발상이다.

정치인 이낙연이 살 길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지율을 관리하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이 검찰개혁을 막아서고, 부동산 정책에서 부자들을 대변하고, 전직 두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하는 것은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방법이다. 부자들을 대변하고 검찰의 특권을 비호한다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사면론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대표가 사면론을 주장한다고 '박근혜 석방' '탄핵 무효'를 외치는 사람들이 국민통합의 대의에 동의할 것이라는 건 어이없는 주장이다. 중도층을 견인한다는 생각도 잘못됐다. 국민 여론이 사면에 있다는 건 착각이다. 보수언론을 통해 세상을 본 착시 현상이거나 정당 지지율 역전에 놀라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 주장은 잘못됐다. 국민통합 때문에 사면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형법이 수감자의 신분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법원의 확정 뒤 박 전 대통령에게 진솔한 사과를 요구한 것도 필요 없는 사족 달기다. 사과는 본인의 반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타인이 사과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억지 사과가 사면의 고려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국민이 민주당에 원하는 것은 개혁이지 사면이나 원칙 없는 국민통합이 아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개혁의 성적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에 다음 단추가 잘못 끼워지기 전에 사면론에 대해 사과하고 주워 담는 게 맞다. 그게 정치인 이낙연과 민주당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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