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0 07:58최종 업데이트 21.01.20 07:58
  • 본문듣기
 
아기 낙타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큰 발톱이 세 개가 있어?"
"아가, 그건 우리가 사막을 걸을 때 모래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있단다."
"그럼 내 기다란 눈썹은 왜 있어?"
"그건 우리가 사막을 여행할 때 모래바람을 막아준단다."
"엄마, 그럼 우리 등에 큰 혹은?"
"우리가 사막을 여행할 때 섭취할 양분을 그곳에 저장해 놓는단다."

아기 낙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 우리는 동물원에서 뭐 해?"

오래된 유머다. 이 유머를 비틀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예산을 공부하는 학생이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예산안은 왜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요구, 그리고 기획재정부의 정부안 작성, 국회의 예산안 심의라는 세 단계나 거쳐야 하죠?"
"그건 각 예산 사업 실무를 잘 아는 정부 부처와 전체 정부 예산안의 방향을 수립하는 기획재정부, 그리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잘 조합해야 하기 때문이야."
"그럼 예산 성과평가와 결산은 왜 하는 거죠?"
"편성된 예산이 잘 집행되는지 파악하고, 현실과 잘 부합하는지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필요하단다."
"그럼 중기 계획은 왜 발표하죠?"
"그건 단 년도 예산편성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장기 국가계획을 예산 시스템을 통해 구현하기 위함이야."
"그런데 왜 국가는 예산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하죠?"

예산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정부 정책 발표
 

국회의 예산 결산 심사. ⓒ 연합뉴스

 
21세기 대한민국은 나름 발전되고 정형화된 예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산 편성, 집행, 결산, 성과평가, 중장기 계획 등을 통해 국가의 모든 예산 사업이 관리되고 기록되고 평가된다. 그리고 그 공개 수준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전전 정부보다 전 정부가, 그리고 지난 정부보다 이번 정부의 공개 수준은 더 좋다.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아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정보의 바다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일 심산일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예산 관련 자료는 차고 넘친다. 자료의 양에 심적 부담을 느껴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도 진지하게 예산분석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많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558조원의 돈을 쓰는 과정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전봇대를 하나 세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서류 작성에 하루가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도할 만큼의 절차를 거치고 절차마다 기록이 남는다. 그 기록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나름 정형화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예산 관련 자료와 시스템이 이미 존재하는데, 국가의 정책 발표는 기존의 예산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별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고속철도 레일을 열심히 깔고 그 레일 위에서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과도 같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정부의 화두는 K-뉴딜이다. 이는 디지털 뉴딜, 그린뉴딜, 사회 안전망 강화로 이루어져 있다. 디지털 뉴딜이란 무엇일까?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대전환으로 스마트 사회를 실현"하고자 "100만명 바이오 빅데이터로 희귀 난치병 극복" 등을 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린뉴딜은 무엇일까? "국민생활과 밀접한 공공시설을 제로 에너지화하고, 녹색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한다. 2020년 추경부터 2025년까지 K-뉴딜에 114조원의 돈을 투입하고 일자리 19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사업이라고 하니 가슴이 뛴다. 

보도자료만 보면 가슴이 뛰지만...
 

정부의 그린뉴딜 발표 자료. ⓒ 기획재정부

 
이러한 K-뉴딜을 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국가가 돈을 쓰고자 한다면 예산의 편성, 집행, 결산 등 예산의 전 과정마다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예산 기록은 예산의 분류체계에 맞춰 예산 지출 단계마다 정확하게 작성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예산사업은 세부사업 단위로 구체적 세부내역사업 집행현황, 구체적 예산 금액 산출 근거, 성과 평가, 중기 계획, 외부 지적사항 등의 정보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린뉴딜 관련 보도자료에는 2022년까지 19조6000억원을 지출한다면서도  어떤 예산 세부사업을 다 더하면 19조6000억원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예산 세부사업명 리스트만 제공하면 이미 존재하는 예산·집행·결산·성과평가 자료를 통해 그린뉴딜을 쉽고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때문에 정부가 말하는 그린뉴딜 사업이 기존 예산사업명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리스트를 만들려면 상당한 '노가다'가 필요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예산 관련 자료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렇게라도 해서 정부의 정책을 분석해봐야 한다.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을 분석한 결과, 2021년 예산안 기준으로 약 8조원의 지출로 이루어져 있고 그 8조원의 사업은 총 202개 예산 세부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예산 세부사업으로 정부 정책의 리스트를 만들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이를 목적에 따라 정렬 할 수 있다. 정부가 제공한 보도자료만을 읽으면 보도자료의 폰트의 크기에 따라 중요 사업이 강조되지만, 이를 예산 리스트로 바꾸면 금액순 등으로 정렬 할 수 있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202개 예산 세부사업을 금액순서대로 나열한 상위 21개 사업의 21년 예산안 금액 총합은 5조7000억원이다.
  

그린뉴딜 202개 사업 중 가장 금액이 큰 상위 21개 예산 세부사업 리스트.(단위 백만원) ⓒ 이상민


이렇게 예산 세부사업으로 정렬하면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으로 그린뉴딜을 분석해 볼 수 있다. K-뉴딜 관련 정부 보도자료는 정부 담당자 리스트만 5페이지에 이르는 대서사시다. 그런데 그 대서사시에 있는 그 많은 형용사로 채워진 사업 설명보다 이렇게 예산 세부사업명이 정확히 나열된 표 하나가 그린뉴딜 사업을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정확한 예산 세부 사업명을 알면 그 사업을 설명하고자 존재하는 예산사업설명서, 성과평가서, 결산내역 등을 바로 찾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2021년도 그린뉴딜 사업 중, 상위 4개 사업은 이미 존재하는 사업에 그린뉴딜이라는 이름만 덧붙인 사업이다. 전기차보급 예산은 "미세먼지 해결에 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미세먼지 저감 예산에도 중복으로 들어가고, 기후위기 예산에도 중복 포함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기차 예산은 미세먼지 저감 예산이나 기후위기 대응 예산이라기보다는 전기차 산업 육성 예산으로 파악한다. 

오해는 마시라. 산업 육성 예산이기 때문에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산업을 키울 필요는 있다. 다만 정말 미세먼지 저감이나 기후위기 대응용이라면, 전기차보급 지원 예산 1조1000억원보다 더 효과적인 사업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차라리 주행 시간에서 큰 차이가 나는 승용차 대신 택배 화물차에 전기차 지원금을 몰아서 주는 것이 미세먼지 저감에는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현재 전기차 지원금은 하루 평균 1시간 정도만 운행하는 승용차에 몰려 있다.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 세부사업명 리스트
 

지난해 9월 10일 추석 민생안정 대책 등을 브리핑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올해 우리나라 중앙정부 총지출은 558조원이다. 그런데 일자리 예산은 30조6000억원이고, R&D예산은 27조2000억원이다. K-뉴딜예산은 21조3000억원이다. 저출산고령화 예산은 71조원이고, SOC 예산은 26조5000억원이다. 여기에 보건복지 예산(200조원), 교육(71조원), 일반지방행정(85조원), 국방(51조원)만 더하면 583조원이 된다. 총지출보다도 금액이 커진다.

이렇게 세부 사업 예산을 다 더하면 총지출보다 더 커지는 이유는 중복 계상되기 때문이다. 어떤 저출산 연구에 1조원을 쓴다면, R&D예산도 1조원이 늘고, 저출산예산과 복지예산이 각각 1조원이 늘게 된다. 어쩌면 일자리 예산도 1조원 증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중복 계상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예산 액수를 뻥튀기 하고자 중복계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본질적인 비판이 아니다. 일자리 사업을 관리하자면 여기저기 다른 예산 항목으로 흩어져 있는 일자리들을 모아서 분석하고 관리할 필요는 있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위한 그린뉴딜이라는 정책 목적을 위해 기존에 다른 예산 항목으로 흩어져 있는 사업을 모아서 전체를 관리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그린뉴딜 사업은 재탕 사업이라며 기존사업이 70%를 차지한다는 비판은 그리 핵심적인 비판은 아니다. 

다만, 도대체 어떤 예산사업이 얼마나 포함되었는지를 일관된 기준으로 파악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예산 세부사업은 주민등록번호처럼 이미 일관된 코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도, 저출산·고령화 정책에도, 그린뉴딜 정책에도 정확한 예산 세부사업명 리스트는 발표되지 않는다. 

정책 발표에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정부의 정책은 결국 돈과 규제를 통해 발현될 수밖에 없다. 돈은 예산, 재정시스템을 통해 이미 일관된 코드번호와 세부사업명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기록된다. 규제도 법, 시행령, 시행규칙 등 일관된 법령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 발표는 예산과 법규라는 이미 존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온갖 형용사와 장미빛 미래만을 제시하고 있어 진지하고 구체적인 비판이 너무 어렵다. 

정부가 무엇을 추진하겠다는 계획 자체만 가지고는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정부가 언제, 어떻게 그 정책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지침만 바꾸어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건지 알기 어렵다. 전체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 건지, 그 예산 사업이 기존사업을 증액하겠다는 건지, 신규사업을 만들겠다는 건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아무리 좋아 보이는 정책도 실현 방안에 따라 정책 효과는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관련 법 제 45조 제 2항을 바꾸는 방식으로 구현할지, 아니면 시행령 23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구현할지에 따라 실현 가능성과 정책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이에 구체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정부가 작성하는 모든 정책 보도자료에는 반드시 표 두 개가 포함되어야 한다. 하나는 정확한 예산 세부사업명으로 표현된 예산증감액 리스트이고, 또 하나는 법·시행령·시행규칙·지침 등 신구대조표다.

아무리 길고 잘 쓴 정책 설명서보다 이 표 두 개만 있으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예산 금액 변화도 없고 법규 변화도 없으면 아무 것도 안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이 현재 정파적 편 가르기에 지나지 않는 아레나(Arena, 원형경기장)를 아고라(Agora, 공론장)로 바꿀 수 있는 손쉬운 방법 아닐까?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